나이도 직업도 다른 여섯 사람이 정체불명의 큐브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투한다. 무슨 경위로 큐브에 갇히게 되었는지 누가 큐브를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 그저 큐브의 각 면에 설치된 6개의 문 중 하나를 통과해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사실만 분명하다. 문제는 두 가지다. 문을 열면 또 다른 큐브가 나타난다는 것. 그리고 어떤 큐브에는 살인 장치가 은폐되어 있다는 것. 함정이 설치된 몇개의 큐브를 지나야 밖으로 나갈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각자의 사연을 숨긴 채 여섯 사람은 갈등하고 협업하며 함정이 설치된 큐브를 피해 바깥으로 향할 방법을 모색한다.
영화는 1997년에 개봉한 빈센조 나탈리 감독의 <큐브>를 리메이크했다. 원작은 미지의 공간과 주변 인물이 견인하는 공포를 극대화해 저예산 스릴러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았다. 특히 탈옥수, 경찰, 의사, 수학과 학생, 자폐증 환자 등 특색이 강한 인물이 각자의 방식으로 큐브의 덫을 헤쳐나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부각했었다. 시미즈 야스히코 감독은 그런 원작의 캐릭터 및 서사 구조를 부분적으로 차용하면서도 다른 전략을 취한다. 큐브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탈출의 기술을 선보이기보다 한 인물의 사연에 주목하길 택한 것이다. 상처를 지닌 고토(스다 마사키)의 서사를 전체 내러티브 중심에 배치하고, 그가 과거의 기억을 마주하게 될 때 치솟는 감정의 격동을 작품의 중요한 동인으로 삼았다. 문제는 스릴러의 장르적 문법과 고토의 사연이 내포한 일본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문제가 매끄럽게 결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생존 자체보다 고토의 감정적 호소로 초점이 이동하면서 스릴러의 장르적 성격이 미지근한 온도로 변하고 만다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