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헌트' '비상선언'의 이모개 촬영감독을 만나다
2022-08-25
글 : 김수영
사진 : 백종헌
정리 : 윤현영 (자유기고가)
“제약을 두지 마라, 카메라는 어디에든 위치할 수 있다”

이모개 촬영감독이 2020년 촬영한 <비상선언>과 2021년 촬영한 <헌트>가 올해 8월 일주일 간격으로 개봉했다. 사상 초유의 항공 테러를 다룬 <비상선언>과 안기부를 배경으로 한 첩보 액션 영화 <헌트>는 관객을 긴박한 상황과 특정한 공간에 몰입시켜야 한다는 공통의 과제가 있었지만 풀어나가는 과정은 달랐다.

- <비상선언>과 <헌트>는 각각 어떤 목표를 가진 작업이었나.

= 두 영화는 감독이 각자 지향하는 바가 뚜렷했다. 두 감독 다 레퍼런스를 준비해서 보여줬다. 한재림 감독의 레퍼런스는 기존의 영화 이미지가 아니라 실험영상이나 광고영상 등 파격적인 이미지가 많았다. <헌트>는 배경이 80년대 초반이라, 그 시절을 다룬 한국영화가 꽤 있는데도 이정재 감독은 그런 영화를 레퍼런스로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정재 감독이 보여준 레퍼런스는 대부분 한국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잘 만든 외국 영화의 깔끔한 이미지들이었다. 그 이미지를 80년대에 반영하는 게 가장 큰 과제였다.

- <비상선언>은 실험영화나 광고 이미지를 레퍼런스로 썼다고 했는데,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초반부터 끝까지 등장하는 헐레이션(halation, 피사체의 하이라이트 부분이나 광원 주변에 지나치게 산란된 빛 때문에 생기는 안개 같은 뿌연 현상)이다. 최근 한 극장에서는 영사 사고가 아니라는 공지가 나오기도 했다.

= <아저씨>의 이정범 감독이 영화를 보고 전화했다. 잘못된 것 같은데 확인해보라고. (웃음) 헐레이션은 필름 룩의 질감을 만들어내기 위한 하나의 요소였다. 라이트가 있어야 헐레이션이 들어오기 때문에 헐레이션을 계속 유지하는 게 어렵다고 판단했는데 이성환 조명감독이 해외에서 루비큐브라는 조그마한 소형 라이트를 사왔다. 처음엔 정말 엔지 화면처럼 보였지만 테스트 촬영의 질감을 한재림 감독이 마음에 들어 했다. 소형 조명의 광량과 색감을 조절해가며 전체적인 룩의 베이스를 만들어나갔다.

<비상선언> 촬영 현장. 사진제공 손익청 스틸 작가

- 공간에 따라 헐레이션 빛 색깔이 다르다. 아파트에서는 푸른색이고 공항에서는 붉은색이다.

= 기술적인 이유 때문이다. 야외에서 작은 라이트가 힘을 발휘하려면 최대한의 광량이 필요하다. 그러면 빛이 파래질 수밖에 없다. 일광 자체가 푸른빛이라 분위기에도 맞다고 판단했다. 초반 공항 신부터 테러범이 죽는 장면까지의 주된 키워드는 긴장감이었다. 바이러스 같은 이상한 빛이 계속 화면에 있는 게 관객에게도 낯설고 불편한 느낌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 다큐멘터리적인 이미지를 얻기 위해서 영화 <플라이트 93>을 컷별로 분석했다고. 다큐적인 이미지는 기존 영화 촬영의 컷과 어떻게 다르다고 판단했나.

= 굉장히 달랐다. 영화의 경우 한숏을 만들 때 배우나 공간을 돋보이게 세팅한다. 다큐의 경우 있는 그대로 촬영해야 실재감이 사는데 그걸 영화에 그대로 적용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실제 상황을 촬영하는 게 아니라 실재감을 영화를 통해 전달해야 했다. 보통은 카메라 포지션이 정해지고 배우들이 동선을 맞춰서 촬영하지만 이번에는 카메라를 멀리 두고 배우를 포착하는 방식이었다. 거의 망원렌즈를 활용했고 배우들은 카메라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때도 있었다.

- <헌트>는 어떤 이야기로 다가왔나.

= 첩보 스릴러와 액션, 두 가지 이야기였다. 프리프로덕션 때 조재상 PD의 추천으로 존 르 카레의 소설을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이런 느낌이 구현되면 좋겠다 싶었다. 액션은 걱정하지 않았지만 첩보가 과제였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보면 컷도 호흡도 길다. 관계와 시선이 쌓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긴 호흡으로 찍은 장면도 있지만 2시간 동안 전부 보여주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액션영화로 관객에게 다가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김상범 편집감독과 이정재 감독의 최종 결과물을 보니 둘 다 어느 정도 살아 있었다.

- 초반에 휘몰아치는 워싱턴 액션 신이 인상적이었다.

= 워싱턴의 경우 두 주인공을 소개하는 신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미국에서 찍을 줄 알았다. 한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계속 미루다 마지막에 촬영했다. 박민정 PD가 여의도의 한 호텔 사진을 보여줬는데 낙엽에 둘러싸인 풍경이 영화에서 본 뉴욕의 가을 느낌이었다. (웃음) 모두가 이건 안될 거라고 했지만 찍지 않을 수 없었다. CG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넓은 숏을 최소화하고 워싱턴의 시그니처가 될 만한 것들을 한두컷에 담았다. 외국 사람들이나 소품을 활용해 배경을 제한했다. 설마 여의도에서 찍었을까 의심하지 않을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 도쿄 장면도 부산역 근처 중앙동에서 촬영했다.

=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퀀스다. 역시 일본에 갈 수 없었고 부산역 근처 일본적인 건물을 활용하기로 했다. 여의도에서 촬영할 수 있었던 것도, 이미 도쿄 시퀀스를 부산에서 찍고 태국 시퀀스를 강원도에서 찍어 스탭간에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웃음) <비상선언> 때 줌렌즈로 구현되는 실재감을 경험했기 때문에 여기서도 줌렌즈를 많이 활용했다. 이곳이 일본이 아니라고 의심하지 않도록 이 거리를 우리가 다 쓴다는 것을 증명하는 요소였다. 그 장면에 카메오가 많이 나온다. 여러 명의 배우가 등장한다고 해서 시선을 뺏기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막상 찍어보니 너무 좋더라. 대사도 없이 가만히 뒤에 있는데도 너무 재미있었다.

<헌트> 촬영 현장. 사진제공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 이전 작품에서도 캐릭터나 관계를 공들여 촬영해왔다. <헌트>에서 서로를 의심하는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반영했나.

=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였다. 취조실의 거울과 유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두 사람이 서로 반사되어 보이는 이미지를 통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가 서로 겹치고 헷갈려 보이도록 했다.

- 80년대 레퍼런스를 쓰지 않겠다고 했지만 역사적 맥락이 있는 이미지가 계속 소환된다.

= 남산 부감은 클리셰 그 자체다. 시위나 몇몇 장면들은 이야기의 맥락을 따라갈 수 있는 정도, 마치 시사 프로그램에서 볼 법한 화면으로 구성하고자 했다. 클리셰 이미지를 활용한다고 해도 광주의 풍경을 담는 일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광주 정신이나 희생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김정도라는 인물을 설명하기 위해서 광주는 필요한 장면이었다. 상황을 크게 벌이기보다는 쨍하지 않은 렌즈를 활용해서 당시 풍경과 유공자들을 흐릿하게 담았다. 캐릭터의 감정 전달을 우선으로 했다.

- 감독이 연기를 겸할 때 현장에서의 장점과 어려움은 무엇인가.

= 이정재 배우를 다른 영화에서 만난 적이 없다. 처음부터 감독으로 만난 셈이다. 처음 촬영하려는데 감독이 안 오는 거다. 보통 아침에 감독과 그날 촬영분을 논의하고 배우가 분장을 마치고 오면 촬영을 시작하는데 감독도 분장을 해야 하니까. (웃음) 하지만 사전에 의논하거나 감독이 분장을 빨리 받는 식으로 시스템을 마련해서 어려운 건 없었다. 감독이 주연배우라 영화나 연기에 관해 직접 말할 수 있어서 편했다.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는데 박평도가 택시 정비소에서 고문당하는 신을 촬영하는 날이었다. 시간이 여의치 않아 액션팀 대신 감독이 직접 하겠다고 종일 천장에 매달렸다. 밤 늦도록 촬영이 이어져 육체적으로 대단히 힘들었을 텐데 좋은 장면을 얻기 위해 끝까지 해내는 모습에 감동했다.

- 20년차다. 촬영감독으로서 추구하거나 선호하는 이야기가 있나.

= 늘 처음 하는 기분이다. 감독마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 완전히 다르다. 어떤 사람은 지옥으로 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천국으로 보기도 한다. 물론 후자는 많이 만나지 못했다. 나는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편이다. 다만 시각적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면 아름다운 것보다는 어둡고 강렬한 것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다.

- 그간의 작품을 수식하는 평을 보면 ‘놀라운 스펙터클’, ‘역동적인 비주얼’이 자주 언급된다. <악마를 보았다>의 택시 장면이나 <아수라>의 카 체이싱 등 액션 장면을 담을 때 특히 장기가 발휘된다.

= 그런 장면들은 모두 하나의 질문에서 나왔다. ‘어떻게 하면 관객이 이 안에 있는 사람처럼 느낄까?’ 배우가 상황 속에서 실제 느낄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서 주변에서 실제 벌어진 사건을 찾아보기도 한다. 어떤 장면이나 느낌이 구체화되면 구현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그때 기존과 다른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고 테스트하기를 반복하는 거다.

- 다른 방법을 찾는 노하우가 있나.

= 기본적으로 많이 본다. 무엇보다 카메라는 부서질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하면 된다. 카메라는 어디에든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는 장비의 크기나 움직임 때문에 어디에나 있기 힘들지만 그걸 염두에 두면 카메라의 포지션이나 움직임이 제한된다. 그건 나중에 해결하자고 생각하고 카메라의 위치나 동선을 상상하면 생각의 범위가 넓어진다. 물론 구현이 안될 수도 있다. (웃음)

- 촬영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시각적으로 자기만의 시선이 중요하다. 자기 시선을 강한 의지와 확신으로 밀어붙이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어느 정도 타협하는 사람도 있다. 감독은 대부분 이야기 속에 완전히 들어가 있다. 오래 작업한 감독일수록 생각이 확고하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 쉽지 않은데 그럴수록 먼저 감독의 생각을 정확하게 알아야 소통할 수 있다. 그 이후 시선의 차이나 방식의 차이는 소통하며 풀어나갈 수 있다.

- 일에 가장 동력이 되는 것은 역시 좋은 영화일까.

= 영화가 제일 재미있다. 각각의 영화가 ‘나는 세상을 이런 식으로 보는데 당신은 어떠한가’ 하고 묻는 것 같다. 최근에 영화 <돈 룩 업>을 재미있게 봤다. <위플래쉬>나 <라라랜드>처럼 고전적인 영화 장치에 새로운 캐릭터로 만든 이야기도 좋아한다. <헤어질 결심>도 너무 좋잖나. 영화가 끝났는데 뭐에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런 것들이 자극이 되고 계속 이 일을 하고 싶게 한다.

이모개 촬영감독 필모그래피

2019 <서복> <나를 찾아줘> <천문: 하늘에 묻는다>

2018 <인랑>

2017 <군함도>

2016 <아수라>

2015 <대호>

2014 <우는 남자> <쎄시봉>

2013 <감기> <집으로 가는 길>

2010 <악마를 보았다> <의형제>

2008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2005 <외출>

2004 <꽃피는 봄이 오면>

2003 <장화, 홍련>

사진제공 손익청 스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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