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듀나 평론가가 본 조던 필 감독 신작 ‘놉’: 새로운 시대의 (UFO) 영화
2022-08-25
글 : 듀나 (영화평론가·SF소설가)

조던 필 감독의 세 번째 영화 <놉>은 그가 왜 지금 가장 주목받는 감독 중 한 사람인지 증명한다. 흑백 차별 문제를 건드린 <겟 아웃>(2017), 미국의 계층 모순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어스>(2019)에 이어 이번에는 할리우드영화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 쇼 비즈니스 산업의 매혹과 중독에 대해 탐색한다. 호러와 스릴러를 기반으로 다층적인 의미를 심어둔 영화는 그야말로 해석의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영화광들이 열광할 만한 이야기지만 동시에 호이터 판호이테마 촬영감독의 카메라와 아이맥스 필름 등이 더해져 영화의 원초적인 쾌감, 스펙터클의 위력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조던 필의 야심은 어디까지 확장될 것인가. 마침내 당도한 ‘나쁜 기적’, 미확인 비행물체처럼 파고파도 여전히 미지의 매혹을 지닌 작품. 새로운 시대의 (UFO) 영화에 대한 듀나 평론가의 해석을 전한다.

UFO의 최근 공식 명칭은 UAP이다. 미 국가정보국장실에서 처음 사용한 이 용어의 뜻은 미확인 공중현상(Unidentified Aerial Phenomenon)이다. 유사과학적이라는 편견을 벗고 이 현상을 과학적으로 연구해보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실제로 UAP에 대한 연구는 ‘우주선을 타고 지구에 온 외계인’의 서사에 머물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UAP라는 용어는 조던 필의 신작 <놉>에서도 언급된다. 히스토리 채널의 <고대의 외계인들>까지 진지하게 챙겨보는 UFO 음모론자 캐릭터 앤젤을 통해서인데, 이 사람은 이 용어가 UFO에 대한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한 정부의 음모라고 믿는다. 하지만 <놉>은 의외로 UAP 영화에 가깝다. UFO 장르 영화를 이루는 장르적 장치에 충실하지만 익숙한 UFO 서사를 따르지 않는 점에서 그렇다.

영화 속 UFO 서사의 변천사

일단 UFO 영화라는 장르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하자. 이 장르는 1940년대 말 비행접시 열풍이 일면서 시작됐다. 그러니까 케네스 아널드가 수상쩍은 비행물체를 목격하고, 로스웰에서 역시 수상쩍은 물체가 추락한 직후다. 상당수는 다큐멘터리고 영화 대부분은 극저예산이며 장르는 SF 중에서도 호러에 가깝다.

외계인 침략이 나오는 SF는 이전에도 많았다. 하지만 UFO 장르는 단순히 허구의 외계인을 창작하는 대신 신문과 방송을 통해 인기를 끈 비행접시 목격이라는 현상을 SF적 재료를 통해 설명하려는 시도였다. 프레드 F. 시어스의 1956년작 <지구 대 비행접시>는 이중에서 가장 표준적인 영화다. 심지어 원작은 논픽션이다. 도널드 키호가 쓴 책 <Flying Saucers from Outer Space>가 그 원작인데, 당연한 일이지만 영화는 논픽션 책의 흐릿한 결론을 따르지는 않는다. 레이 해리하우젠이 예쁘장하게 만든 비행접시는 멸망해가는 행성에서 온 외계인들이 탄 우주선이고, 이들은 지구를 정복하려고 하는 동안 유명한 명승지를 때려부순다.

50년대 UFO 영화를 보다보면 이들이 생각보다는 정통 SF에 가깝다고 느끼게 된다.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이 아직 외계인 음모론의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레이 외계인도 없고 맨 인 블랙도 없고, 외계인과 지구인의 혼혈도 없고, 고대의 외계인도 없고, 역공학 기술로 전자레인지와 CD를 만들려 시도하는 과학자도 없다. 외계인의 모양, 동기 등도 UFO 열풍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아 요새 관객은 이들이 등장하는 후반부에서 실망하기 마련이다. 지금은 UFO 열광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이 신화는 그 뒤 수십년을 걸쳐 UFO 팬과 SF 양측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서서히 만들어졌다.

70년대, 80년대로 넘어가면서 이 장르는 조금씩 정교해진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와 <E.T.>는 UFO와 외계인을 디자인하고 사건들을 만드는 데에 실제 목격담과 전문가의 연구를 심각하게 참고한다. <커뮤니온> <파이 인 더 스카이>처럼 실제 외계인 접촉 경험을 바탕으로 한 영화도 나온다. 그 뒤에 UFO와 관련된 모든 음모론을 총망라한 <엑스 파일>이 나왔고 그게 UFO 열풍의 마지막 정점이었던 것 같다. UFO의 목격담은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대중의 반응은 이전보다 심드렁하다. 드론과 CG의 시대에 하늘에 떠다니는 흐릿한 무언가의 사진은 이전만큼 큰 감흥을 주지 않는다.

UFO보다 찍는 행위가 중요하다는 말은

그래도 <놉>은 나름 상승세를 탄 영화다. 앤젤은 UAP가 UFO에 대한 관심을 돌리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최근 몇년의 분위기를 고려해보면 UFO/UAP에 대한 관심은 이전보다 훨씬 높다. 미 정부는 흐릿하지만 인상적인 동영상을 발표하면서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고백했고, 이 영상에 찍힌 틱택 UFO는 새로운 UFO의 표준이 되었다. 전과 달리 나사와 같은 정부기관이 진지하게 이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에 대해 특별히 더 많이 알게 된 건 아닌데, 그와 상관없이 하늘에 떠 있는 무언가에 대해 연구하고 이야기하는 게 이전만큼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도입부에서 <놉>은 정통적인 UFO 영화 장르를 충실하게 따른다. 일단 등장하는 UFO의 생김새가 해리하우젠이 만든 것처럼 고전적이다. (조지 루카스가 <스타워즈>에서 디테일이 잔뜩 들어간 각진 우주선을 소개하기 전까지 할리우드 우주선들은 상당수가 UFO 모양을 취했다. 외계인들이 비행접시 모양의 우주선을 만들었다면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영화는 UFO 영화의 기본 정서를 따른다. 하늘 위에 무언가가 떠다니고 있는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많이 무섭다.

그런데 영화는 중반 이후 익숙한 ‘우주선을 탄 외계인’ 서사에서 벗어난다. 그 결과 <놉>은 아무래도 비교할 수밖에 없는 M. 나이트 샤말란의 <싸인>에서 멀어진다. 샤말란은 실제 UFO 푸티지를 긁어모아 정교하게 모방하면서 아무리 이상하고 말이 안되더라도 일단 UFO 신화 안에서 이를 해석한다. 하지만 조던 필은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공동 창작한 결과물인 UFO와 외계인 신화를 굳이 따를 생각이 없다. UFO에 진심이더라도 어차피 재검토할 이야기고, 새로 문이 열린 UAP 시대엔 완전히 새로운 가설도 검토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놉>의 가설이 엄청나게 과학적으로 말이 된다거나, 너무나도 신선해서 아무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무언가라는 말은 아니다. 원래 UFO 주변에서는 별별 황당한 이야기들이 다 떠돌았고 조던 필이 주워온 가설도 그중 하나다. 단지 필은 호러 장르의 틀 안에서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밀어붙인다. 그 결과물은 허버트 조지 웰스의 <우주전쟁>의 전통을 잇는 고풍스러운 SF이고 우리가 예상한 것과 다른 방향으로 깊이를 가진다. 개봉 첫주라서 스포일러를 깊게 다루지는 못하겠지만 말 조련사라는 주인공의 직업과 제목이 이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말해도 될 것 같다. 조금 더 이야기를 추가한다면 <미지와의 조우>보다 <죠스>에 가깝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E.T.>스럽다고 해야 할까.

<놉>이 새로운 시대의 영화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하나 더. 이 영화는 그 어느 UFO 영화보다 찍는 행위를 중요시한다. 이전까지의 이 장르 영화에서 중심이 됐던 것은 미지의 존재의 정체를 밝히려는 과정, 그 존재로부터 고통받고 거기에서 탈출하고 이들을 격파하는 과정 자체였다. 하지만 SNS와 같은 새로운 미디어, 디지털카메라와 휴대폰의 시대에 찍는 과정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그냥 찍어서 그냥 올리는 것만으로는 진실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촬영감독 앤틀러스 홀스트가 전기가 필요없는 필름 카메라를 들고 등장하는 순간은 UFO광과 영화광의 열정이 기괴하게 충돌하는, 이 영화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다른 두 영화에 비해 이 영화에서는 인종 문제가 그렇게까지 부각되는 것 같지 않다. 에드워드 마이브리지의 유명한 말 사진에 찍힌 기수가 흑인이라는 것, 그 기수의 후손이 아직도 인종차별적 환경에서 힘겹게 가업을 잇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전부인데, 이를 다시 돌아켜보면, 필은 일반적으로 흑인 역사의 일부라고 여겨지지 않는 이야기, 그러니까 초창기 영화 역사나 UFO 역사, 무엇보다 SF의 역사에서 흑인의 위치를 발굴하고 재정립하려는 시도를 한 것 같다. 일단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면 UFO 열광자들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접촉자 중 한명인 바니 힐이 흑인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테니 말이다.

UFO 신화의 재해석 <데스 밸리>

우연이겠지만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시즌10 <더블 피처>의 두 번째 작품 <데스 밸리> 역시 UFO를 다루고 있다. 소재는 겹치지만 이를 다루는 방식은 <놉>과 극단적으로 다르다. <놉>이 UFO 영화 장르의 틀을 유지하며 자기만의 다른 아이디어를 넣고 다른 이야기를 하려 한다면, <데스 밸리>는 이미 고정된 UFO 신화를 극단적으로 캠피한 방식으로 재해석한다. 매 에피소드는 둘로 나뉜다. 전반부는 흑백으로 전통적인 UFO 역사에 말려든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영부인 메이미, 부통령 닉슨이 주인공이다. 후반부는 현대 배경으로 외계인의 실험 대상이 된 네 젊은이가 주인공이다. 마지막회에서 둘은 합쳐진다.

UFO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재미있을 것이다. 로스웰, 51구역, 마릴린 먼로의 죽음, 케네디 암살, 워터게이트 등이 UFO 음모론자의 관점에서 재해석된다. 발리언트 토르와 같은 고정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은 당연하고. 단지 이 수많은 재료들이 총동원되는 동안에도 <놉>에 있는 진지함을 찾기는 어렵다.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의 다른 에피소드들이 그렇듯 이 작품도 역사상 실존 인물들을 멋대로 무례하게 재해석해 옛날 영화의 감수성과 현대의 캠피한 감각에 버무려 낄낄거리는 농담을 만들어내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이들이 가져온 UFO 신화에 대한 존중은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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