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오진우 평론가의 <놉>, OJ는 살아 돌아왔을까
2022-09-07
글 : 오진우 (평론가)

<놉>에 관한 해석들이 미친 듯이 쏟아지고 있다. 영향받을까봐 쳐다도 안 보고 나의 영화 체험에서 출발해 글을 썼지만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다.

두 번째 관람하기 전까지 <놉>의 마지막 장면을 OJ(대니얼 컬루야)가 살아 돌아온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나의 왜곡된 기억이 영화를 약간 다르게 접근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어 다행이었다. 영화에 OJ가 등장하는 숏(이하 ‘OJ 숏’) 다음으로 돈 되는 영상, 일명 ‘오프라 숏’이 등장한다. 그것은 폴라로이드 필름에 인화된 하늘에 떠 있는 외계 생명체의 모습(이하 ‘오프라 숏’)이다. ‘오프라 숏’이 마지막을 장식하면서 ‘OJ 숏’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영화가 ‘OJ 숏’을 다분히 사진처럼 구성하기 때문에 두숏은 비교될 수밖에 없다. ‘저 너머 먼 곳’이란 문구가 적힌 사각의 문 프레임 안에 말 ‘럭키’를 타고 서 있는 오빠 OJ의 모습은 동생 에메랄드(키키 파머)의 간절한 믿음을 바탕으로 인화된 희망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OJ 숏’은 그가 살아 돌아왔다는 증거라기보다는 살아 돌아올지도 모르는 가능성의 상태다. 이는 인간의 눈을 의심해보는 것인데 <놉>의 세계에서 인간의 눈은 기계의 눈보다 신뢰성이 낮다.

오프닝은 누구의 시선이었나

<놉>은 인간의 눈으로 기록된 세계의 신뢰성을 교묘하게 무너뜨리며 시작한다. 영화와 무관한 다른 영화의 예고편인 줄 알았던 <놉>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눈여겨볼 것은 ‘서 있는 신발’이다. 신발과 더불어 난데없이 터지는 풍선 그리고 살인을 한 흥분한 침팬지 ‘고디’까지 살육의 현장이 된 녹화 스튜디오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에 의해 장악된 것처럼 보였다. 이때 카메라의 시점은 관객의 눈과 일치한다. 영화는 관객을 물리법칙이 통하지 않는 살육의 스튜디오에 위치시킨다. 우리는 침팬지와 짧지만 강렬하게 눈맞춤을 한다. 이후 등장하는 ‘고디’라는 챕터에서 이 오프닝 시퀀스를 자세히 보여주면서 우리가 보았던 장면이 주프(스티븐 연)의 시점인 것을 알게 된다. 또한 미지의 존재가 만든 상황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도 깨닫게 된다. 우리 앞엔 통제할 수 없는 대상인 침팬지 고디만 있을 뿐이다. 주프는 이 사건의 생존자로서 사건을 기록하는 카메라와 같다. 하지만 그는 그날의 기억을 왜곡해 기록한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력을 어기고 서 있는 신발과 고디와의 주먹 인사다. 하지만 고디와 신체적 접촉은 없었고 인사하려는 도중에 고디는 총을 맞고 죽는다. 이때 주프는 웃기 시작한다. 그는 과거의 트라우마를 왜곡해 받아들이고 극복한 제스처를 취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주프는 자신을 선택받은 자로 신화화하기에 이른다. 외계 생명체와 마주했을 때 그는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여 연결짓는다. 외계 생명체에게 말을 제물로 바치는 쇼를 진행하며 주프는 스스로 제사장이 된다. 외계 생명체가 주프의 주피터 파크를 빨아들이며 초토화하기 시작할 때 주프는 비로소 신의 선택을 받아 승천한다고 여기는 표정을 짓는다. 이는 스스로 최면을 건 것이지 과거와 정면으로 마주해 극복하는 방식은 아니다. 주프는 아역배우로 출연해서 겪은 참사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다시 과거로 빨려들어간 꼴이다. 그 모습은 <겟 아웃>의 침잠의 방향을 역전시킨 것과 같다.

“기억은 기록이 아니라 해석”이다. <메멘토>의 대사가 자연스레 떠오르기 마련이다. OJ와 에메랄드의 기억은 주프와 다를까? 에메랄드는 ‘진 재킷’이란 이름의 말을 처음으로 조련하려고 했던 옛날이야기를 꺼낸다. 하지만 아버지가 서부극을 계약하면서 그 기회는 오빠에게 넘어간다. 영화는 현재의 에메랄드가 그날을 떠올리며 창문을 내려다보고 역숏으로 어린 시절 OJ를 비춘다. OJ는 지켜보고 있다는 제스처를 에메랄드에게 선보인다. 그녀는 오빠에게 그때 나를 봤던 걸 기억하냐고 묻는다. OJ는 그것에 대해 답하지 않고 서부극이 아니라 영화 <스콜피온 킹>이라고 과거의 기억을 교정해준다. 에메랄드에게 그 기억은 심리 상담을 받을 정도로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외계 생명체를 물리칠 계획을 세울 때 OJ는 에메랄드의 과거를 현재에 기입한다. 외계 생명체의 이름을 ‘진 재킷’이라 짓는다. 오빠의 도움과 희생을 바탕으로 에메랄드는 ‘진 재킷’을 무찌르고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난다. 현재에 서게 된 에메랄드는 저 너머 먼 곳에 OJ가 돌아오길 바라는 희망을 투사한다. 영화의 유일한 미래 시점인 ‘OJ 숏’이 실체로 인화가 되기 위해서는 강력한 증거가 필요하다. 그것은 외계 생명체를 조련했다는 증거다. 영화는 이 부분에 있어서 초반에 충실히 빌드업하다가 후반에 가서 생략하거나 개연성 낮게 서사를 구축한다. 이로 인해 ‘OJ 숏’은 실체에서 미끄러져 희망의 이미지에 가까워진다. 인간의 눈은 기록이 아닌 믿음의 시선으로 남게 된다.

말 조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던 아버지와의 추억이 OJ에게 계속해서 소환된다. 그것은 OJ에게 외계 생명체도 말처럼 조련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제공한다. 그는 광고 촬영에서 자기 눈을 보고 놀란 말을 떠올리며 외계 생명체 역시 쳐다보면 안된다고 생각하며 말과 외계 생명체를 동일시한다. 또한 그는 깃발이 목에 걸려 고생한 외계 생명체 앞에서 다시 깃발을 펼쳐 쫓아오지 못하게 만들며 조련에 성공한다. 하지만 남매가 외계 생명체를 길 가운데에 두고 마지막 인사를 나눌 때부터 영화는 쌓았던 모든 것을 무너뜨리기 시작한다. 일전에 주피터 파크에서 운 좋게 살아남았던 말 럭키부터 고개를 들어 외계 생명체를 쳐다보는 OJ, 깃발이 달린 주프 캐릭터 풍선을 먹는 외계 생명체까지 <놉>은 여러 빈틈을 열어두고 OJ의 생사 여부를 가지고 관객을 시험에 들게 한다.

나쁜 기적이란 무엇일까

이것이 <놉>이 말하는 나쁜 기적일까? OJ의 대사처럼 그런 말이 있기나 한 것인지 영화가 끝나고도 되묻게 된다. 나쁜 기적은 예상치 못한 불행한 일의 전개를 의미할 것이다. 그것이 OJ의 죽음일까? OJ의 죽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에 가깝다. 그가 외계 생명체를 조련할 수 있다는 것은 믿음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터무니없는 낙관주의적인 접근으로도 보인다. 그가 살아온다는 아무런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우린 무엇을 보아야 할까? 영화는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상징적으로 인간의 눈을 멀게 했다. 눈보다 마음으로 보는 믿음의 세계로 영화는 우리를 인도한다. 저 너머 먼 곳에 보이는 럭키와 OJ는 실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OJ가 돌아오길 바라는 에메랄드의 강력한 믿음이 그려낸 희망의 이미지일까? 나쁜 기적은 인간의 눈으로 본 세계를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이미 찾아왔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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