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주상숙(라미란)과 박희철(김무열), 봉만식(윤경호)의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코미디의 농도는 짙어진다. 세 사람은 전편에서 이어온 관계성을 토대로 <정직한 후보2>에서 더욱 밀도 높은 유머를 장전한다. ‘진실의 주둥이’는 사회 풍자의 통쾌함과 더불어 가까운 관계 속에서 오랫동안 소화되지 않은 감정들을 분출시키며 공감과 경쾌함을 안긴다. 비서실장 박희철마저 진실의 주둥이를 갖게 되면서 두축의 유머 코드는 배가되고 자연스럽게 봉만식의 수난은 커졌다. 계산대로 두배의 유쾌함을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김무열, 윤경호 배우는 이렇게 고민했다.
김무열 <정직한 후보> 때부터 의외의 행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결이 다르긴 하지만 그동안 블랙코미디에도 출연했고 진지한 작품에서도 나름 위트를 발휘해왔다. 뮤지컬도 기본적으로 코미디를 깔고 가는 장르잖나. 무대 경험까지 통틀어보면 나에게 코미디는 익숙한 장르다. 물론 남을 웃겨야 한다는 부담감과 압박감은 아직까지도 극복하지 못했다.
박희철도 ‘진실의 주둥이’를 갖게 됐다. <정직한 후보> 때의 라미란 배우 연기를 참고했나.김무열 <정직한 후보>를 여러 번 봤다. 촬영하면서도 많이 봤다. 계산을 뛰어넘은 본능적인 미란 누나의 연기를 보면서 어떻게 하면 저런 연기를 할 수 있을까 갈망하고 고민했다. 나로서는 정말 최고난도의 연기였다.
윤경호 나에게도 고민을 많이 털어놨다. 무열이가 나한테까지 이런 얘기를 하네 싶어서 그냥 듣고 넘길 수가 없었다. 사실 나는 현장에서 기대가 컸다. 김무열이 이제 진실의 주둥이를 갖게 됐는데 과연 어떻게 보여줄까. 스스로 얼마나 난감해하면서 즐길 것인가. 평소 무열이 가진 장난기와 말투가 있다. 데이터에 근거해 팩트 폭격을 한다. 말을 뭉뚱그려하지 않고 정확하게 얘기한다. 그래서 항상 ‘그래 너 잘났다’고 생각하는데(웃음) 내게는 그런 모습이 영화 속 박희철의 모습 그대로였다.
윤경호 배우가 어떤 도움을 줬나.김무열 어떤 장면이 어렵다고 얘기하면 그 장면을 촬영하는 당일까지 부재중 전화가 와 있다. 문자로 대사를 써서 보내주기도 했다. 전화하면 ‘들어봐, 대사’ 이러면서 본인이 박희철이 된 양 수화기 너머로 연기를 해보이기도 했다. 거기서 일부 차용한 것도 있고 쓰지 않은 것도 있는데 이 자체가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 모른다.
윤경호 지금도 ‘차용’이라는 단어를 쓰잖나. 이런 게 별로다. (좌중 웃음)
김무열 배우가 라미란 배우와 함께 본격적으로 코미디를 담당하고, 박진주 배우가 여동생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에서 봉만식의 캐릭터를 어떻게 잡아갔나.윤경호 봉만식은 리액션이 궁금한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통쾌하게 당할수록 재미가 커지기 때문에 전편에도 리액션 위주로 고민을 했다. 이번에는 상숙과 희철 둘 다 진실의 주둥이가 되어 봉만식에게도 새로운 롤이 생긴다. 단순히 코미디를 넘어 이들이 좌충우돌할 때 함께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봉만식이 모자라고 철없는 사람만이 아니라 나름 인간미 있고 사명감 있는 캐릭터로 확장됐다고 느꼈다.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라미란 선배님과 서로의 캐릭터 롤을 충분히 공유하고 있는 김무열 배우와 함께여서 케미만 잘 살아도 충분히 빛날 거라고 생각했다.
배우간의 좋은 합과 에너지가 오늘 현장에서도, 영화 속에서도 느껴진다.김무열 믿고 받아주는 상대 배우와 감독님 덕분에 현장 분위기가 편안했다. 어떤 잡생각도 없이 촬영하는 순간을 즐기고 놀이하듯 게임하듯 연기할 수 있었다.
윤경호 서로 모니터를 많이 해줬다. 다들 연극 베이스가 있어서 그런지 앙상블 개념에 친숙했다.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 내 공간을 찾아가고 서로 추임새를 주고받으면서 티키타카해나갔다. 전편에서 관객이 좋아하는 포인트나 캐릭터의 지점을 이해하고 있어서 애드리브도 할 수 있었다. 감독님이 대본에 열려 있는 편이라 ‘캐릭터가 놓치지 않아야 할 키워드나 상황은 이거다, 생각나는 대사가 있다면 얼마든지 해도 좋다’고 하셨다.
김무열 형이 준비를 많이 해온다. 대사 한두 마디인데 애드리브를 이만큼(손으로 큰 동작), 진짜 10개 가져온다. 나중에는 ‘그래서 그거 말고 다른 거 없어?’ 하면 ‘아, 다른 거?’ 하면서 버전별로 보여주곤 했다.
윤경호 그건 걱정이야, 걱정. 현장에서 감독님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는데 마지못해 오케이가 되는 것만큼 씁쓸할 때가 없다. 나중에 관객에게 회자돼도 나는 부끄럽게 느껴진다.
김무열 그 만족의 기준은 어디에 있나.
윤경호 촬영할 때 반영이 되든 안되든 내가 아낌없이 다 준비해왔다, 쥐어짜고 짜서 이게 최선이다 싶은 마음? <완벽한 타인>을 찍을 때 유해진 선배님이 얼마나 노력하고 준비하는지 그의 대본을 보면서 느꼈다.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이게 과연 최선일까, 대본에 빽빽하게 메모되어 있는 걸 보면서 유해진이라는 배우도 저렇게 노력하는데 나는 대본에 있는 대사만 믿고 상황을 안일하게 생각했구나 싶어 크게 반성한 적이 있다.
박진주 배우와 연기할 때 애드리브가 많지 않았나.윤경호 남매 연기할 때 감독님의 애드리브가 많았다. 감독님이 봉만식, 봉만순 커플을 귀여워했다. 남들은 진짜 징글징글하다고 여기더라도 두 사람만큼은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오누이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해서 ‘포니’ ‘귀엽다’ 등 애정 표현을 많이 찾아주셨다. 듣기로는 감독님 남편 분과 그 여동생 분이 굉장히 돈독해서 서로 예뻐하고 멋져하는 모습에서 착안한 캐릭터라고 들었다.
<정직한 후보>의 큰 웃음은 ‘진실의 주둥이’가 맡지만 곳곳의 자잘한 디테일이 주는 웃음도 크다.김무열 그런 디테일의 재미는 전문직 사람들이 전문성을 발휘하며 일할 때 드러나지 않나. 감독님의 성실한 취재와 자료수집 덕분에 만들어진 부분이 많다. 이번에는 직함이 도지사다 보니 국회의원 때보다 활동 범위가 넓고 다양해졌다. 도지사 선거 관련 장면이나 전시 행정을 풍자한 대목도 재미있다. ‘늘공’(늘 공무원) 조태주(서현우)와 ‘어공’(어쩌다 공무원)인 박희철의 묘한 기싸움 등 이번에도 디테일한 재미가 요소요소에 배치돼 있다.
코미디 연기는 상황에 몰입해서 나오는 본능적인 연기처럼 보이지만 얘기를 들어보니 머리를 더 쓰는 연기 같다.김무열 계속 선택해 나가는 순간들이 있다. 결과론적으로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연기했다고 하지만 그 순간에는 어떤 결정이 왜 내려졌는지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대사 치는 타이밍이나 앞에 나온 대사를 깔고 갈 때처럼 분명히 계산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그러다보면 웃겨야 한다는 목적 때문에 이 캐릭터가 가진 절대적인 목표를 놓칠 때가 있다. 이번에 미란 누나랑 작업하면서 누나가 이런 점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알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상황을 끌고 가는 캐릭터인데도 순간순간 터뜨리고 웃기잖나. 그러면서도 캐릭터의 큰 목표는 절대 놓치지 않는다. 좋은 코미디 연기란 이런 것 같다.
윤경호 생생한 연기를 하려면 상대방과 감각적으로 나누고 대화가 많이 필요하다. 그런데 배우마다 기본적인 성향이 다르다. 특정한 상황에서 유머 코드를 녹일 때도 배우 개인의 성향이 많이 반영된다. <클리닝 업>에선 무서운 역할인데 짠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이런 게 내 성향일 거다. 하지만 내 성향을 무기 삼아 상황을 풀어내려고 하지는 않는다. 가끔은 감추고 싶을 때도 있다. 좀더 날카롭고 냉철한 사람이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인간적인 모습이 나올 때면 아직도 내가 열고 닫는 걸 못하는구나 싶기도 하다. 감사하게도 그런 부분을 좋아해주는 분들이 있어서 먹고살고 있다.
코미디 장르의 연기를 할 때 어떤 순간에 쾌감을 느끼나.윤경호 셋이 연극하듯이 대사를 차지게 주고받을 때. 거기서 큰 재미가 나오지 않더라도 호흡이 너무 좋아서 정말 있을 법한 상황처럼 보이는 장면이 있다. 그럴 때 쾌감을 느낀다. <정직한 후보>의 봉고차 신처럼 캐미가 좋아서 뭐랄까. 협업? 매치?
김무열 전문용어로 ‘기깍기’?(앞뒤가 잘 들어맞는다는 뜻의 방송 현장 용어. -편집자)
윤경호 너 오늘 전문용어가 굉장히 저렴하다. (웃음) 하모니라고 얘기할 수도 있잖아.
김무열 하모니랑은 뉘앙스가 다르지. ‘기깍기’는 합이랄까?
윤경호 이렇게 항상 정확한 워딩을 찾으려고 한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피곤하다. 어쩌겠나, 시인인걸.
김무열 코미디 연기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건 어려운 일이다. (잠시 생각) 상황에 맞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 정확한 방법을 찾았을 때 기쁘다. 좋은 장면을 만들어냈다는 느낌은 상황이 그럴싸하게 느껴지고 관객도 보고 괜찮아 할 것 같다는 마음이 들 때다. 하지만 내가 실감나게 느낄 만큼 상황에 빠져 있는 것과 관객이 그만큼 느끼거나 좋아하는 것에는 괴리가 있기 때문에 항상 고민하게 된다.
윤경호 확실한 건, 혼자 찍는 것보다 함께 찍을 때 확실히 쾌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