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대상, 제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장편경쟁 ‘발견’부문 대상 등 지난해부터 국내외 영화제를 휩쓴 <성적표의 김민영>이 마침내 9월8일 개봉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당시의 우정이 영원할 거라 믿는 정희(김주아)와 변화의 과도기를 겪는 민영(윤아정), 수산나(손다현)의 관계는 많은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정희는 “가끔은 미워하고, 늘 좋아했던 김민영에게” 어째서 인생 점수를 매긴 성적표를 건네야 했을까. <성적표의 김민영>이 그리는 스무살의 고민과 우정에 관해 이재은, 임지선 감독과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0 1 수능 D-100, 삼행시 클럽의 해체
“실제로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다. 그래서 사람이 많은 자리에서 센스를 요구하는 삼행시를 지어야 할 때 굉장히 괴로웠고, 따로 삼행시 모임을 만들면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영화 속 세 사람에게도 어딘가 이상해 보이지만 정말 그들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주고자 삼행시 클럽을 만들었다.” - 이재은 감독
“<성적표의 김민영>은 평생 함께할 것 같았던 친구들이 각자 다른 길을 걸으며 멀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다. 때문에 은밀한 추억을 나눈 삼행시 클럽을 해체하는 걸로 시작해 그 뒤로 펼쳐지는 인물들의 여정을 관객이 따라가게 하고 싶었다.” - 임지선 감독
0 2 민영과 정희의 기숙사
실제 4인실 기숙사를 2인실로 개조했다. 2층 침대를 부숴 1층 침대처럼 만들고 커튼도 새로 달았다. 구글에 ‘기숙사’를 검색해서 나오는 건 전부 샀던 것 같다. 책상 위의 홍초, 세제, 라디에이터, 커튼 뒤의 두유까지 전부 다.” - 임지선 감독
“민영이는 멋있는 여자를 동경하고 명언과 같은 글귀에 감동하는 캐릭터다. 그래서 방 한켠에 항상 김연아 포스터를 걸어두고 있으며 잘 보면 거울에도 아이돌 사진을 붙여뒀다.” - 이재은 감독
0 3 정희의 아지트, 테니스장
“원래는 테니스 클럽 분들이 잠깐 휴식을 취하는 텅 빈 컨테이너였다. 여기에 철제 책상을 주문해서 넣고 사무실의 물건들을 전부 가져와 재배치했다. 에너지가 느껴지면서도 정희에게는 편안한 장소라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이다.” - 임지선 감독
“적은 예산에 비해 정말 아낌없이 미술에 투자했다. 서사는 단조로울지라도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너무 촌스럽지도, 너무 트렌디하지도 않은 현실적인 미술을 위해 미술감독님이 정말 공을 많이 들이셨다. 책상 위의 장부나 카드 단말기 같은 것들도 전부 미술감독님의 어머니가 실제 사용하시던 것들이다.” - 이재은 감독
0 4 “아, 끝음 더 내려야 하죠!”
“캐릭터별로 원하는 말투와 억양이 전부 정해져 있었다. 정희의 경우 어떤 일이 있어도 휩쓸리거나 들뜨지 않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런 성격이 말투에서도 드러나길 바랐다.” - 이재은 감독
“끝음을 물결처럼 부드럽게 처리하려 하면 바로 일자로 끝내달라고 부탁했다. 나중엔 배우들이 알아서 말투를 가다듬더라. 패션도 캐릭터 성격을 따라간다. 정희는 나이답지 않게 기능성 운동복을 많이 입고, 민영이는 스무살답게 패션 과도기를 겪는 중이다. 대표적인 게 한여름에 앙고라 반팔을 입고 쁘띠목도리를 두르는 것이다. 수산나도 미국에 유학간 뒤 1:9 가르마에 교포 스타일의 메이크업을 하는 등 한차례 스타일의 변화를 겪는다.” - 임지선 감독
0 5 수영장 대신 빗속의 자전거 라이딩
“배우들 표정은 밝지만 사실 우리 둘은 뒤에서 한없이 심각하게 서 있었다. 원래 원했던 톤은 정말 재앙과 같은 먹구름이 배경에 깔려 있고 비가 사정없이 쏟아지는 거였다. 그런데 날씨가 너무 좋았다.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웃음) 살수차를 동원했는데 금방 다 써서 하천 물을 끌어와야 했고. 우리끼린 ‘이거 다시 찍어야 한다’고까지 말했었는데, 나중에 보니 맑은 게 오히려 영화 톤에 잘 맞더라. 결국 이때 찍은 사진을 메인 포스터로 사용했다.” - 임지선 감독
0 6 콘티는 그림 대신 사진으로, 각도까지 꼼꼼하게
“우리끼린 가상현실(VR) 찍는다고 농담할 정도로 360도로 돌아가면서 다양한 각도의 사진을 찍고,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각도를 찾아 콘티를 짰다. (콘티를 보여주며) 그래서 그림이 아니라 전부 직접 찍은 사진들로 구성돼 있다. 콘티를 만드는 과정에서 재밌는 아이디어가 여럿 나왔고 그게 영화에 많이 반영됐다. 민영이가 운동기구에 기대 있는 장면도 촬영감독님과 자세를 취하다 나온 것이다.” - 이재은 감독
0 7 미션! 3시간 안에 제주도 여행하기
“촬영 일정이 워낙 촉박해서 실제로도 영화처럼 제주도에 3시간만 있다가 돌아와야 했다. 마치 여행 브이로그처럼 촬영감독님과 함께 캠코더를 들고 배우들을 따라다녔다. 앞신이 잔잔한 내용이라 분위기가 대비되게끔 시트콤 톤으로 과장되게 연기해달라고 했다.” - 임지선 감독
“되도록 오디오가 비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사람들이 많아서 부끄러웠을 거고 실제로 배우들이 중간중간 현타를 느끼는 장면을 목격했다. (웃음) 그래도 또래들이라 금방 친해져선 어벤저스처럼 같이 돌아다니고, 너무 귀여웠다.” - 이재은 감독
0 8 아날로그 감성의 MZ세대
“민영이는 손글씨와 같은 아날로그 감성을 멋있다고 생각한다. 스무살 친구이기 때문에 다이어리 등의 요소들을 추가했다. 사실 다이어리도 전부 내가 쓰고 그림도 내가 그렸다. 기교 없이 그저 열심히 그리고 쓴 내 그림과 글씨가 영화와 잘 맞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촬영 전날까지 영화 준비하랴, 그림 그리랴 정신이 없긴 했다.” - 이재은 감독
0 9 김민영의 인생 성적표
“진짜 진짜 고민이 많았던 부분이다. 정희가 민영이에게 느끼는 서운함, 그럼에도 좋아하는 마음 같은 걸 전부 정리해 넣으려고 했다. 처음에는 ‘경제력’이나 ‘패션 감각’과 같은 객관적인 요소에서 시작해 뒤로 갈수록 진심이 드러난다. 내레이션의 말투가 변하고 감정이 드러나는 과정에 신경을 많이 썼다.” - 이재은 감독
“처음엔 민영이에 관한 이야기로 끝내려 했는데 편집 과정에서 아무래도 정희의 이야기로 끝내는 것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희가 보기엔 단단해 보여도 자신의 선택에 불안감을 느끼고, 민영이에 관해 생각하던 끝에 결국 자기 자신까지 되돌아봤을 것 같았다. 그런 정희의 내면을 더 보여주며 끝나는 것으로 후반부를 바꿨는데 여러모로 더 솔직해진 것 같아 만족한다.” - 임지선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