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지는 밤>은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는 버스를 타고 막 무주에 도착한 해숙(김금순)의 행적을 따라간다. 꾀죄죄한 차림새로 음산한 소리를 중얼거리는 해숙의 정체는 묘연하다. 해숙은 한 폐가에 도착하고, 머지않아 그 폐허가 해숙과 죽은 딸 영선(안소희)이 살던 집이며 해숙이 무당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해숙이 혼령을 부르는 의식을 치르자 집 어딘가에 고여 있던 영선의 유령이 나타난다. 해숙과 영선은 무당과 유령이라는 경계의 존재들로서, 미처 애도되지 못한 상실처럼 폐허 속에 잔존하며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영역을 내보인다.
1부에서 무주가 죽음과 삶을 매개하는 초현실의 시공간이었다면, 2부의 무주는 떠남과 돌아옴이 분주히 교차하는 마을 공동체다. 그 중심에는 민재(강진아)가 있다. 민재는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지만 무주로 돌아와 혼자가 된 엄마와 함께 살며 담담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죽음을 비롯한 어떤 ‘떠남’들이 일상에 숨길 수 없는 자국을 남긴다. 민재의 엄마는 남편의 빈자리 속에서 공허한 얼굴을 짓고, 오랜 고시 생활로 지쳐 보이는 경윤(한해인)은 화장실에 간다는 말을 남긴 채 사라진다. 영화는 이들의 사연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어느 날 태규(곽민규)가 민재에게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봤다며 털어놓는 환상적인 경험 하나가 이들의 쓸쓸한 얼굴과 중첩되면서 영화에 유령의 기운을 불러들일 뿐이다.
각각 1부와 2부의 연출을 맡은 김종관과 장건재 감독은 두편의 중편영화가 병렬적인 옴니버스가 아닌, 서로를 참조하며 하나의 장편영화가 되는 기획을 시도했다. 초현실과 일상, 겨울과 여름이라는 절묘한 대비를 보여주는 두 영화의 접합은 기이한 에너지를 자아낸다. 흥미로운 것은 두 영화가 하나의 제목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의 영문 제목인 “vestige”는 잔재를 의미한다. 떠남과 죽음은 반드시 어떤 자국을 남긴다. 1부가 그 잔재 속에서 산 자와 죽은 자가 교차하는 경계의 시공간을 발견한다면, 2부는 그 잔재를 마음 깊숙이 파묻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관찰한다. 2부의 선연함은 1부의 발견 없이 나타날 수 없고, 1부는 2부의 관찰 속에서 비로소 의미를 갖춘다는 점에서 상호침투적이다.
카메라가 새벽녘의 거리를 천천히 유영하는 1부의 첫 장면은 2부의 끝에 이르러 유령들이 한데 모여 어디론가 걸어가는 앞모습이 나타날 때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어쩌면 1부의 첫 장면이 2부 마지막 장면의 리버스숏이자, 유령들의 시점숏이었던 것은 아닐까. 장건재 감독은 이 유령들이 누군가를 마중 나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 누군가는 관객일지도 모른다. 유령들을 마주친 우리는 어떤 표정일까.
"긴 겨울이 지나고 나면 죽음을 감싸고 잎이 돋고 꽃을 피우는 날이 있는 거지. 그래도 죽은 건 죽은 거지. 그래도 그 꽃이 참 예쁘다." 해숙의 독백. 그런데 이 말은 이상하다. 나무의 죽음을 단정 지으면서도, 나무가 다시 살아나 꽃을 피울 가능성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마찬가지로 유령은 죽음과 삶의 대립을 초과하는 무언가다.
CHECK POINT
<해안가로의 여행>(2015)<달이 지는 밤>의 1부와 2부 사이, 그 어딘가쯤에 <해안가로의 여행>을 가져다 둘 수 있을 것 같다. 미처 아물지 못한 상실이 유령을 불러들인다는 점은 1부를 닮았고, 유령이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에서는 2부를 닮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