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 유통 그리고 금융이라는 세 가지 틀은 대부분의 경제활동을 설명할 뿐 아니라 문화, 특히 영화산업에 어느 정도 들어맞는다. 물론 현실에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도 파는 것에 관련된 마케팅 활동을 전혀 안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극장은 만드는 사람인가, 단순하게 파는 사람인가? 영화를 본다는 점에서는 판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극장에서의 관람 행위라는 매우 독특한 서비스의 특징을 본다면 생산 행위로 볼 수도 있다. OTT와 비교하면 극장은 자본재와 기술이 더욱 많이 투입되는, 생산의 특징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단순하게 분류하기가 쉽지 않다.
어쨌든 좋다. 고전적으로는 영화에서 작가, 감독 그리고 배우들이 생산 영역에 속한다. 음향, 미술, 조명 등 스탭들과 후반작업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생산이다. 그리고 영화가 만들어진 다음에 극장과 마케팅 등 다양한 활동들이 판매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일들을 감싸고 있는 또 다른 행위가 금융이다. 보통은 투자자라고 부른다. 이 모든 요소들이 합쳐져서 영화 한편이 만들어진다.
이 모든 것들을 요약해서 보여주는 것이 영화 크레딧이다. 고전 중의 고전인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다시 보았다. 줄리 앤드루스가 주제가 <Sound of Music>을 부르고 나서 감독인 로버트 와이즈의 이름이 나오고, 연이어 작곡가인 리처드 로저스와 극작가인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의 이름이 나온다. 연이어 영화 타이틀이 나오고, 주연배우인 줄리 앤드루스와 크리스토퍼 플러머 이름이 나온다. 주요 배우와 중요 스탭들의 이름이 나온다. 영화 뒤편에는 제작사와 21세기 폭스가 ‘The End’ 타이틀과 함께 간략하게 나오고, 주요 배역들의 크레딧이 나온다.
영화 <모가디슈>처럼 고전적으로 영화 크레딧을 다루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영화들은 관객은 전혀 관심이 없는 공동투자자의 이름을 크레딧 앞에 보여준다. 그러다보니 감독이나 배우들 이름은 맨 뒤로 가는 경우가 많다. 크레딧의 순서는 현실의 힘을 나타내지만 그게 과연 관객을 위해서나 영화의 흥행을 위해서나 좋은 방법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코로나19 이후 극장에 다시 모인 관객이 투자자 이름을 보려고 어렵게 극장으로 오겠는가?
생산이나 유통에 비해서 금융이 갖는 힘의 관계는 잘 알겠지만 결국은 영화라는 문화 상품을 얼마나 잘 만들 것인가, 이게 핵심이다. 투자자와 제작자 사이의 힘의 관계를 정비하기는 쉽지 않지만 영화 크레딧이라도 관객이 보고 싶은 방식으로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투자의 관점으로 봐도, 한명이라도 더 많은 관객이 영화를 보는 게 결국 이익이 되는 일이다. 영화 시작하는 몇초 동안 어떻게든 관객의 시선을 잡아끄려고 제작진은 몇년씩 고민하는데, 그 몇초를 의미 없는 투자자 이름들로 도배를 해서 날려버리는 것은 영화 현장의 모순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걸 해결하는 데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다. 관객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먼저 보여주는 것, 그게 상업 활동의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