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인터뷰] ① '수리남' 황정민을 사이비 목사로 만든 이유는? 윤종빈 감독이 말하는 실화와 허구
2022-09-22
글 : 임수연

윤종빈 감독의 첫 시리즈 연출작 <수리남>은 사실 그가 <군도: 민란의 시대>(이하 <군도>)를 끝냈을 때 한번 거절했던 영화 프로젝트였다. <수리남>을 제작한 퍼펙트스톰필름에 있던 하정우가 윤종빈 감독을 추천했지만(강명찬 퍼펙트스톰필름 대표는 수리남의 마약상 조봉행에게 속아 마약을 운반하다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던 주부의 실화를 다룬 <집으로 가는 길>(2013)의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이하 <범죄와의 전쟁>)와 비슷한 종류의 범죄물을 또 만들고 싶지 않았던 그는 연출을 고사했다. 하지만 다시 윤종빈 감독에게 돌아온 <수리남>은 주변 사람들이 설득했듯이 그가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이야기였다. 특히 그가 관심을 보인 부분은 국정원과 공조한 평범한 일반인 K씨의 사연이었다. 개인의 미시사와 한국적 디테일에서 시작해 인간 본성과 한국 사회를 조망했던 윤종빈의 엄정한 감각은 낯선 수리남으로 무대를 옮긴 후에도 무뎌지지 않는다.

- <수리남> 연출을 다시 제안받았을 때 어떤 이유로 마음을 바꿨나.

= <공작>을 찍은 이후였다. 실화가 워낙 재미있어서 아까운 시나리오라며 다시 제안을 받았다. 역시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이 비슷하게 녹아들어갈 것 같아 다소 부정적으로 생각했는데, 주변에서 “감독님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소재인데 왜 안 하냐”고 부추기는 거다. 국수란 영화사 월광 대표도 재밌다고 했다. 내 영화를 좋아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맨날 “감독님, <범죄와의 전쟁> 같은 거 언제 또 만들어줄 거예요?”라고 묻는다. 정작 범죄물을 한편밖에 안 찍은 감독에게 범죄물을 가장 잘 만드는 사람이라고 한다. (웃음) 사람들이 내게 보고 싶어 하는 것이 범죄물이라면 영화가 아닌 시리즈로 다채롭고 풍부하게 풀어내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됐다.

- 첫 시리즈 연출이었지만 기존 한국 드라마의 구성과 호흡을 완벽히 체득한 이의 작품 같았다. 매회 러닝타임이 60분 정도로 거의 비슷한데 엔딩도 절묘한 지점에서 맺더라.

= 넷플릭스에서도 엔딩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계속 전했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 보통 넷플릭스 시리즈는 40~50분이면 한 에피소드가 끝나는데 나는 애초에 호흡이 그렇게 안되는 것 같다. (웃음) “끊어갈 곳이 여기밖에 없는데?” 하고 마무리하면 거의 60분 즈음이 됐다.

- 각색 과정에서 어떤 허구를 더하고 어떤 사실을 제했나.

= 큰 틀에서 두 가지 정도를 각색했다. 첫째, 실화에서 주인공 강인구에 해당하는 K씨는 친구가 아닌 카센터 손님을 통해 홍어 사업을 제안받았다. 그리고 수리남에서 영향력 있는 한국인의 집에 거주하면서 홍어를 한국으로 수입했다. 그 한국인이 바로 2009년 체포됐던 수리남 마약 밀매상 조봉행이었다. 처음부터 코카인 밀수를 위해 계획됐던 사기였던 것이다. 나는 이 그림이 영화적으로 재미가 없었다. 같이 사는 사람이 마약상이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는 전개가 관객에게 설득력이 있을까? 그래서 마약 대부가 무조건적인 믿음을 줄 수 있는 직업을 표면적으로 갖고 있다고 설정했다. 전요환(황정민)을 사이비 목사로 만든 이유다. 둘째, 실제 국정원은 범죄인 인도 조약이 체결되어 있지 않은 수리남에 사는 마약왕을 잡기 위해 3년을 공들였다. K씨가 3년 동안 조봉행의 신뢰를 얻으며 가까워진 후 그를 제3국으로 빼돌려서 체포했다. 이 또한 3년이란 시간이 지지부진해서 극적인 재미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국에 마약을 팔면 마약단속국에 체포될 수 있다는 논리를 만들어 각색한 것이다.

- 극중 맹목적인 믿음을 추동하는 사이비 종교와 마약중독의 속성이 병치되어 묘사된다. 구체적으로 어떤 유사성에 주목했나.

= 살다 보면 좋은 사람인 줄 알았던 인간이 알고 보니 나쁜 사람이고, 나쁜 사람인 줄 알았던 인간이 좋은 면도 갖고 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수리남> 첫회에서도 나쁜 놈처럼 보였던 단란주점 손님들이 사실은 범죄를 단속하는 경찰이었기 때문에 강인구에게 문제가 생기고, 수리남 현지에서 억울한 일을 도와줄 줄 알았던 목사가 사기꾼이라 감옥에 가게 된다. 전요환은 정말 악한 인물이지만 그가 강인구와 함께 사업을 잘해보려고 한 마음은 진심이었다. 별 볼 일 없는 주변 인물들과 달리 강인구는 임기응변에 능하고 남성적인 매력도 있다.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진실된 순간이 한번은 있을 수 있다. 맹목적인 믿음과 사람에 대한 인식, 기망의 문제를 <수리남>의 중요한 테마로 가져가고 싶었다.

- 전요환의 사기 행각을 보면 한국인의 눈에는 너무 뻔히 보이는 거짓말인데 현지인들은 속아넘어간다.

= 실제 에피소드에 다 있던 내용이다. 조봉행은 가짜를 진짜로 바꾸는 데 굉장히 능숙했던 인물이었다. 한국 전통문화를 모르는 외국인 입장에서는 자개장이 새롭게 보이니 중요한 문화재라는 설명에 혹할 수 있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알 수 없다는 것이 <수리남>의 테마였고, 실화에서 흥미를 느꼈던 부분이다.

- 보통 이런 이야기는 ‘마약왕’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마약왕을 잡는 이들의 시점으로 극을 구성한 이유는 무엇인가.

= 수리남에 한국인 마약상이 있었다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사실 세상엔 더 유명한 마약 거물이 많지 않나. 조봉행 사건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민간인이 국정원 작전에 투입됐다는 점이었다. 대부분의 언더커버물은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이 주인공인데, 이 사건은 카센터와 단란주점을 운영하는 민간인이 활약한다.

- 그동안의 작품에서 익숙했던 부산이 아닌 미군 부대가 있는 동두천을 강인구가 자라온 곳으로 설정한 이유가 있나.

= 강인구의 아버지는 베트남전에 참전해 번 돈으로 살았고, 강인구는 미군 옆에 기생하며 살아온 소시민이다. 결정적으로 미국 마약단속국의 도움을 받아야만 마약 밀매상을 잡을 수 있다는 설정이 맥락적으로 이어지게 하고 싶었다.

- 강인구가 수리남으로 넘어온 후에는 서로 속고 속이는 심리전의 텐션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인 작품이다. 6부작 시리즈는 2시간짜리 영화와는 또 다른 층위의 고민이 필요했을 텐데.

= 긴장감을 주는 패턴이 반복되면 안되니까 이를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 고민을 많이 했다. 예를 들어 전화 통화로 심리적인 긴장을 주는 신이 있었다면 다음 장면에서는 액션을 더 보여주거나 드라마를 다루는 식으로 밸런스를 잡았다. 언제부터인가 통화 신이 많이 등장하는데, 잘못 찍으면 너무 길고 재미없을 것 같았다. 그때 여러 테크닉적인 변주를 줬다. 어떨 때는 사운드만 들리게, 어떨 때는 얼굴만 보여주고, 어떨 때는 리액션을 찍는 식으로. 강인구의 내적 갈등을 실감나게 묘사해 시청자를 헷갈리게 하는 것 또한 핵심이었다. 특히 군사 구역으로 묶어둔 비밀 공간을 보여주며 총괄 이사 자리를 제안할 땐 그가 전요환에게 넘어가는 것이 아닐까 하며 시청자가 의심하게 만들고 싶었다. 실제로도 먹고사는 게 중요한 인구는 흔들렸을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을 배신하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이라고 봤나.

= 비 오는 날 최창호(박해수)와 통화할 때 어린 꼬마가 도망치다 붙잡혀온 것을 봤을 때, 강인구는 전요환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 다시 각인했을 것이다. 꼬마만 한 자식을 키우는 아빠로서 그런 인간에게 동조할 순 없다는 게 선하다고만 볼 수 없는 그가 가진 마지막 휴머니즘이다.

- 적절한 순간에 등장하는 액션도 보는 재미를 충족시킨다. 특히 총기 액션은 난생처음 찍은 거 아닌가. 의식하지 못한 사람도 있겠지만. (웃음)

= 마치 범죄영화를 한편 찍은 내가 범죄영화를 많이 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웃음) <공작>도 총을 들 뿐이지 정작 총격 신은 없다. 개인적으로 총기 액션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작품에 액션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 같다. 실제로 <수리남>은 총기 액션이 안 나올 수는 없는 작품이다. 강인구가 어린 시절 유도를 했다는 설정은 필연적으로 넣을 수밖에 없었다. 전문 훈련을 받지 않은 그가 액션 신에서 어느 정도 주인공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특히 마지막 회를 위해서 필요했다.

- 또 다른 국정원 요원의 정체가 드러난 후 <수리남>을 처음부터 다시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많은 시청자가 놀랐을 것이다.

= 누가 언더커버가 되는 것이 가장 말이 되느냐를 생각했을 때, 그 캐릭터가 가진 배경이 가장 논리적으로 자연스러웠다. 역으로 시청자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겉보기에는 가장 아닌 것 같은 인물처럼 보이게 했다. 아마 시리즈를 다시 보면 또 다른 맥락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은 그가 국정원 요원이라는 단서를 신별로 넣어놨다.

*인터뷰 ②에서 이어집니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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