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인터뷰] ② <수리남> 윤종빈 감독, “전요환 저택, 브라질 밀림, 사실은 이곳에서 찍었다”
2022-09-22
글 : 임수연
- 이미 검증된 톱배우들이 포진되어 있다. <범죄와의 전쟁>이 최민식, 하정우를 제외하면 당시에는 신선했던 배우들을 대거 기용한 것처럼 새로운 배우를 캐스팅하고 싶진 않았나.

= 배우를 볼 때 기성 배우냐 신인 배우냐의 관점으로 판단하진 않는다. 역할에 가장 어울리는 배우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기능적으로는 국정원의 언더커버를 찾는 서브 플롯에 긴장감을 주기 위해 나름대로 비슷한 존재감을 가진 배우들을 캐스팅한 것도 있다. 특정 캐릭터에 유독 유명한 배우를 캐스팅하면 그 자체로 유추가 가능할 수 있으니까.

- 2005년 황정민, 하정우와 함께 언젠가 셋이서 꼭 작품을 하자는 약속을 이번에 지켰다. <수리남>에서 모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

= 사실 그동안은 할 만한 게 없었다. <비스티 보이즈>에서 (황)정민이 형이 갑자기 호스트로 나올 수는 없지 않나. (웃음) <범죄와의 전쟁>은 연령대가 맞지 않았고. 사실 <수리남>을 하기로 결심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두 배우와 같이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것이었다.

- 둘 중 누구에게 마약상 역할을 맡길 것인가 고민하진 않았나. 물론 지금의 결과물이 너무 좋지만.

= 전혀. 누가 봐도 정민이 형이 마약왕 아닌가? (웃음) 내가 관객이면 무조건 황정민이 마약왕으로 나오는 쪽을 보고 싶을 것이다.

- 하정우와는 다섯 번째 작품인데 작품 들어가기 전에 어떤 얘기를 나눴나.

= 작품 얘기하자고 모이면 한 시간 반 정도 지났을 때 다른 데로 샌다. 각자 알아서 준비하고 현장에서 보면 되는 거지 뭐. (웃음) 아, 영어를 너무 잘하려고 하지는 말라는 말을 했다. 아저씨처럼 ‘콩글리시’를 투박하게 해달라고. 한국인이고 영어를 유창하게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데, 못하는 사람이 잘하는 척하는 게 더 이상하다. 그리고 <수리남>의 하정우는 처음으로 아버지처럼 보이지 않나? 그동안 (하)정우 형의 작품을 보면서, 아버지로 나올 때 아버지 같아 보이지 않아서 아쉬웠다는 의견을 전했다. 그래서 실제 자식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강인구가 아이를 보는 표정에 아버지의 얼굴이 묻어날 수 있도록 이런저런 얘기를 해줬다. 또 ‘코카인 왕국’을 꿈꾸는 전요환의 제안에 정말 흔들리는 느낌이 났으면 좋겠다고, 실제 나였다면 작전을 포기하고 진짜 고민했을 것 같다는 얘기도 나눴다. 시청자는 아이패드나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를 볼 수도 있으니 평소 영화 연기를 할 때보다 좀더 직접적으로 표현해달라는 요청도 했다.

- 주요 캐릭터 중에 여성이 없다. 한국영화계가 너무 남성 중심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만큼 비중이 큰 여성 캐릭터가 하나쯤 필요하지 않나 하는 고민을 했을 텐데, 지금의 결과물이 나온 이유는 뭔가.

= 실제로 여성 캐릭터를 넣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최창호 역할을 여자로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런데 그 역할이 여자가 되면 강인구와 관계를 풀기가 너무 어려웠다. 현실적으로 여성 요원을 치안이 위험한 국정원 작전에 직접 투입시킬 확률도 떨어진다. 전요환의 고문 변호사 데이빗 박(유연석)이 여성이라면 전요환과 억지스러운 멜로 라인이 생겨야 할 것만 같아서 이 역시 포기했다. 여러모로 밸런스가 무너질 수 있는 상황에서 내가 그나마 만들 수 있는 여성 캐릭터는 강인구의 행동에 중요한 동기를 마련하는 부인(추자현)이었다.

- 거의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수리남은 생소한 국가다. 그만큼 창작자가 상상력을 과감하게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실제 마약사범이었던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불안한 정치 상황 때문에 만들 수 있는 그림도 있을 테고.

= 수리남이 남미에 있지만 실제 비주얼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남미와는 거리가 있다. 실제 로케이션 촬영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수리남에 대해 고정된 이미지가 없기 때문에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동시에 리얼리티가 무너져서는 안되기 때문에 적절한 밸런스를 찾으려고 했다. 수리남에 대해 조사하다 가장 신선하게 다가온 것은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다는 점이었다. 그중 아시아인들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다. 픽션이기 때문에 과장되게 표현한 대목도 있지만, 시청자가 가진 정보가 많지 않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자유로운 영화적 허용이 가능하다는 생각도 있었다.

-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프로덕션에 들어갔다. 국내 촬영을 먼저 소화한 후 상황을 지켜보다가 도미니카공화국에서 필요한 분량을 나중에 촬영했다. 반드시 해외에서 찍어야만 했던 그림은 어떤 것들이었나.

= 일단 수리남에 처음 도착했을 때 수리남의 모습을 한번은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웃음) 어촌 마을의 조그마한 식당, 인구가 일한 홍어 공장, 이런 것들은 한국에서 만들 수 없는 것들이다. 수리남 대통령 궁은 도미니카공화국 산토도밍고 대통령 궁에 현지 제작 가구를 채워넣어 찍었다. 도미니카공화국 현지 촬영이 불가능할 경우 국내에서 모두 찍는다는 옵션도 생각하고 있었다.

- 콜롬비아를 포함해 여러 나라를 답사한 것으로 아는데 도미니카공화국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 직접 가서 보니 생각보다 풍광에 큰 차이가 없었다. 그리고 할리우드영화들이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촬영을 많이 했기 때문에 영화 프로덕션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었다. 정부도 무척 협조적이다. 나라에서 <수리남> 촬영을 위해 대통령 궁을 빌려주고 대통령이 잠시 나가 있었을 정도니까. (웃음)

- 생각보다 국내에서 소화한 신이 많더라. 마지막 회 카 체이싱이 펼쳐지는 대지는 도미니카공화국이지만 전요환 저택이나 브라질 국경의 밀림은 제주도에서 촬영했다. 막상 결과물을 보니 제주도에서 찍었는지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찍었는지 구분이 안 가는 신이 많았다.

= 촬영 1년 전 로케이션 장소를 정하기 위해 남미의 몇몇 국가로 답사를 갔는데, 제주도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반드시 해외에서 찍어야 하는 몇몇 포인트를 제외하면 굳이 남미 촬영을 고집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답사를 가지 않았던 촬영감독과 미술감독에게 제주도에서 촬영하겠다고 하니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반문했다. 그런데 제주도에 열대 식물을 많이 심고 공들여 드레싱을 하니 그럴싸했다. 내가 실제 남미를 가봤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 <범죄와의 전쟁>은 관념적 조폭이 됨으로써 야만의 시대를 기득권이 될 기회로 삼은 아버지 세대를 서늘하게 노려봤고, <군도>의 조윤(강동원)은 금수만도 못한 취급을 하는 아버지에게 적자로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치다 약자를 수탈하는 사이코패스가 된다. 그런데 <수리남>은 기본적으로 아버지를 연민하는 작품이다. 한국에 두고 온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목숨을 건 작전에 참여해야 하는 강인구는 물론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그의 아버지 역시 안쓰럽게 바라보는 창작자의 시선이 녹아 있다.

= 나이를 먹으면서 나도 주변의 또래 남자들도 아버지가 됐다. 평범한 일반인이 돈을 벌어서 가족을 부양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특히 지금 같은 시대에는 더더욱 힘든 아버지들의 모습을 많이 목격한다. 젊었을 때 아버지 세대를 부정적으로 봤던 시선이 <범죄와의 전쟁>이 됐다면, 아버지가 된 지금은 좀더 다른 시선으로 가장을 보게 된다. 시대 자체도 많이 달라졌고.

- 감독으로서, 제작자로서 준비하는 작품들이 골고루 있겠다.

= 영화사 월광에서 제작하는 <승부> <리멤버>는 촬영을 마치고 개봉 준비 중이다. 직접 연출하는 작품도 빨리 하려고 한다. 기러기 아빠가 됐기 때문에 빨리 일이나 하고 싶다. (웃음)

사진제공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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