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인터뷰] ‘프린세스 아야’ 이성강 감독, “새로운 세대가 편견을 극복하는 법”
2022-09-29
글 : 이자연
사진 : 오계옥

연리지 왕국은 예부터 동물로 변하는 저주에 걸린 아이들을 깊은 숲속에 버렸다. 짐승의 모습을 띠는 게 저주일까, 날 때부터 소외될 운명인 게 저주일까. 신비한 팔찌로 자신의 비밀을 간신히 지켜낸 아야 공주는 이웃 나라 바리 왕자와의 정략결혼을 위해 바타르로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저주에 걸린 또 다른 이들을 마주한다. <마리이야기> <천년여우 여우비>에 이어 <프린세스 아야>의 세계를 구축한 이성강 감독은 “영화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극장에 있는 동안 관객이 현실을 잠시 잊는 것이다. 작품에 몰입하며 우리는 크고 작은 고민을 미루게 된다”며 이야기가 선사하는 안온함을 전했다. 세상이 만든 편견과 낙인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저주를 자신의 잠재력으로 전환시키는 아야를 보며 우리는 현실의 문제를 잠시 잊는다. 그리고 어느덧 어디로도 도망치지 않는 그의 용기를 건네받는다.

-‘동물로 변하는 저주를 받은 아이’라는 중심 소재가 인상적이다. <프린세스 아야>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전작 <천년여우 여우비>는 짐승으로 변하면서 주변인으로부터 배척받은 여우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플롯을 좀더 발전시켜보고 싶었다. 그런데 인간이 저주를 받아 동물이 되는 설정은 이미 많기 때문에 그 방향성을 명확하게 정해야 했다. 동물이 되어 오히려 능력을 발휘할 것인가, 아니면 주변으로부터 소외된 외로움을 그려낼 것인가. 사회에 고착된 편견을 직면하지만 자기만의 방식으로 극복하는 서사를 보여주고자 후자를 택했다.

-아야는 고향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얼굴도 모르는 왕자와 결혼을 결심할 만큼 강단 있지만 동시에 ‘이런 나라도 사랑받을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는 연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아야의 외형과 성격 모두 매력적으로 그려내고 싶었다. 그래서 매력적인 성격이란 어떤 성격일지 계속해서 고민했다. 누가 봐도 공감할 만한 아픔을 지녔지만 이겨내려는 의지가 강하고, 자신의 비밀을 들킬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상황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당찬 모습이 떠올랐다. 한데 아야는 강인한 면모를 지녔지만 여전히 자기 중심에 있는 비밀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바리 왕자가 진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반응할지 걱정하기도 한다. 이런 입체성을 통해 아야가 관객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면서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중심을 잡았다.

-동물로 변하는 저주의 근원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의도적인 장치인가.

=판타지에서 너무 많은 것을 구구절절 설명하려 하면 실패하기 딱 좋다. (웃음) 허구를 위한 허구가 불어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동물로 변한다는 저주가 이해하기 어려운 설정은 아니기 때문에 굳이 이유를 덧붙이지 않았다. 사실 다른 인물의 입을 빌려 배경을 넣어볼까 생각해봤지만 그러면 도입부가 너무 길어지더라. 그래서 과감하게 생략했다.

-<프린세스 아야>에는 ‘운명’이라는 키워드가 자주 언급된다. 하지만 아야의 운명이 완전히 뒤바뀌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야의 정체를 알게 된 바리 왕자가 왜 더 빨리 말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아야가 이렇게 말한다. “이건 네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운명이란 이미 정해진 것이다. 정해진 삶은 바꿀 수 없다. 아야가 아무리 발악해도 동물로 변하는 저주에서 벗어나긴 어렵다. 다만 ‘이 저주를 내 삶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할 것인가’라는 관점으로 보면 인물마다 그 결괏값이 모두 다르게 나타난다. 남들은 이 현상을 계속 저주라고 말하지만 아야는 오히려 ‘이게 정말 그렇게까지 저주인가?’라고 의문을 품는다. 심지어 동물이 될지언정 ‘그게 뭐 어때? 필요하면 해야지!’라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다른 이들과 달리 아야가 운명을 용인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빌런 야수는 저주 때문에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사실에 사로잡혀 오로지 복수할 생각만 한다. 이 맥락은 ‘누가 야수를 악마로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으로 연결된다.

=아야와 야수가 괴로운 이유는 주변 사람들이 자신들을 보고 ‘넌 저주에 걸렸어’라며 비난하기 때문이다. 만약 군중이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지’라는 입장으로 대했다면 어땠을까. 야수도 악마가 되지 않았을 거다. 아야와 야수의 내적 갈등은 외부로부터 배척당하고 낙인 찍히면서 시작된다. 저주 그 자체보다, 저주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가 중요하다.

-아야는 백아연이, 바리 왕자는 박진영이 더빙을 맡았다. 두 사람 다 목소리 연기가 처음이었는데 함께 호흡을 맞춰나가는 과정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작품이 뮤지컬 장르인 만큼 성우의 노래 실력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였다. 그런데 목소리 연기와 노래 모두 가능한 배우를 찾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당시 백아연씨는 뮤지컬을 하고 있었고, 박진영씨는 가수 활동을 하며 배우의 입지를 키우고 있어 눈에 띄었다. 둘의 목소리 조합까지 너무 좋아 자연스레 함께하게 됐다. 다만 더빙은 호흡으로 감정을 묘사해야 하는데 두 사람이 많이 낯설어했다. 이를테면 바리와 아야는 가만히 있는 경우가 거의 없고 계속 뛰어다니거나 싸운다. 이런 행동은 말로 정보를 줄 수 없어 밖으로 호흡을 내뱉어야 한다. 그래서 인물의 행동을 실제로 따라 하면서 녹음해 그런 어려움을 최대한 보완했다.

-<카이: 거울 호수의 전설> 이후 연상호 감독과 두 번째로 만났다. <프린세스 아야>에서 함께 논의한 부분이 있다면.

=작업 초기 시나리오 단계에서 시퀀스를 어떻게 배열해야 더 효과적일지 연상호 감독과 세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처음에 쓴 시나리오는 배경 설명을 건너뛰고 결혼식 장면에서 시작했다. 혼례복을 만들다가 손이 바늘에 찔려 “아야!” 하고 외쳐서 아야 공주가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웃음) 그 뒤에 숲속에서 우연히 야수를 만나는, 시간순에 충실한 구조였다. 하지만 극을 빨리 진행시키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지금 버전으로 바뀌었다. 끝없는 논의 덕에 영화에 속도감이 생겼다.

-애니메이션 세계 최초로 오프닝부터 엔딩까지 스크린X를 활용했다. 삼면에 펼쳐지는 장면이 압도적이다.

=스크린X 작업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삼면을 모두 신경 써야 했기에 작업량이 대폭 늘어났고, 본편 콘티 외에 스크린X 전용 콘티를 별도로 만들어야 했다. 처음에는 전체의 40%만 스크린X로 진행하려 했는데 관객이 완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도중에 전면 스크린X로 변경했다. 작업을 마치고 처음 봤을 때 양 사이드가 펼쳐지면서 마치 내가 작품 속에 있는 듯한 체험적 감각이 들었다. 작품이 확장되는 듯해서 만족스러웠다.

-전쟁을 일으키려는 삼촌(섭정)과 평화를 지향하는 조카(바리), 외부에서 해결책을 찾는 아버지와 자기 안에서 자구책을 찾는 딸(아야). 정략결혼을 중심으로 기성세대와 새로운 세대의 대립이 드러난다.

=새로운 세대의 전환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정략결혼이라는 요소 자체가 가부장 문화의 산물이라 관객에게 어떻게 비칠지 고민이 깊었다. 결혼 자체가 등장할 수는 있지만 인물이 결혼을 받아들이는 태도엔 변화가 필요해 보였다. 예전과 같은 결말이라면 가마에서 내린 아야가 바리 왕자의 손을 잡으며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보수적인가. 여성주인공이 주체성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야가 가마에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그곳에서 빠져나와 자신을 열심히 찾는 바리 왕자에게 “왜 그러고 있어?”라며 놀래킨다. 이 장면엔 많은 의미가 있다. ‘왜 날 찾고 있어? 내가 있는 곳은 여기야, 나는 다른 곳 아닌 이곳에 있어’ 라는 아야 자신의 선택과 용기를 보여준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