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런트 라인]
윤종빈 감독의 전작들에는 있고 '수리남'에는 없는 것
2022-10-05
글 : 송형국 (영화평론가)
거울은 어디에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2005)와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2, 이하 <범죄와의 전쟁>)는 일종의 연작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만의 독특한 남성성이 탄생하고 성장하고 발현하는 양상, 남성성이라기보다 수컷성이라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할 인물의 본성이 그들만의 질서로 규범화하는 모양을 윤종빈은 성찰해왔다. 그는 늑대나 영장류 등 무리생활종(種)의 수컷 개체들에서 쉽게 관찰되는 서열과 군림의 질서, 알파 개체의 자원 점유와 권력 유지 과정에 동반하는 유무형의 폭력 양태를 장르적으로 꿰뚫곤 했다. 장기간 군사 집권기를 지낸 한국의 병영 문화가 권력기관의 규범을 형성해왔으며 이것이 수컷들의 특성으로 범벅된 조폭 문화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 또한 단단한 기본기를 갖춰 발언해왔다. 극중 남성들이 서열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표정을 관조하는 클로즈업은 누군가에겐 자성을, 어떤 이에겐 쾌감을 전했다. 주인공이 야만의 세계에 물드는 과정을 압축하는 유려한 몽타주 시퀀스들은 평범한 인물이 수컷 체제에 물들어가는 경로를 족집게처럼 요약해줬다. 데뷔작에서부터 명백했던 윤종빈의 관심은, 한 인물이 다른 세계의 구조적 질서에 편입되는 과정을 거울을 비춰 살피자는 데 있었다. <용서받지 못한 자>의 승영(서장원)과 <범죄와의 전쟁>에서의 최익현(최민식)은 분명 그랬다.

<수리남>

답습일까 연장일까

<공작>(2018)과 <수리남>(2022)은 흥미로운 연작이 될 수도 있었다. 윤종빈은 인물이 다른 세계에 침습해가는 설정에 관심을 잃지 않았다. 두 작품의 공통된 작전 설계를 보자. 민간인 주인공이 독백으로 자신의 전사(前史)를 읊으며 이야기를 연다. 안기부/국정원 공작에 투입된 주인공은 호랑이굴 한가운데로 들어가 사업을 위장해 작전에 나선다.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권력자의 본거지에서 주인공이 상대의 의심과 그 해소 사이를 넘나드는 살얼음판이, 관객과 공유하는 작품의 공간적 배경이다. 인물과 인물 사이, 관객과 인물 사이의 정보 격차가 서스펜스를 작동시킨다. 말과 말 사이에 오가는 진실과 거짓, 속고 속이는 가운데 싹트는 불안의 교차는 여느 격투 장면 못지않게 박진감 있다. 그걸 전화 통화만으로 해내는 장면들도 있다. 그러니까 <수리남>과 <공작>은 같은 골조로 지은 집이다. 여기에다 브라질 국경에서 약 1분30초간 이어지는 총격 롱테이크 등 <수리남>의 몇몇 액션 장면들은 윤종빈의 필모그래피에 기술적 성취를 한 단계 쌓아올린 것들이기도 하다. 넓게 보자면 <수리남>은 ‘사나이 성찰 연작’으로서 윤종빈 세계관의 확장 또는 연장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성찰 연작’으로 보자면 <공작>에서는 안기부 간부 최학성(조진웅)이 열쇠 인물이다. 대기업 광고 프로젝트를 위장해 영변 핵시설 촬영을 도모하려는 공작이 번번이 부딪히는 장애물은, 다름 아닌 안기부의 북풍 몰이다. 남북 갈등을 고조시켜 수구 세력에 유리한 선거 국면을 형성하려는 상위 공작이 극중 주요 인물들이 추진하는 하위 공작을 자꾸만 방해한다. 최학성은 하위 공작을 주도하면서도 선거 때마다 기획되는 상위 공작에 눌려 자가당착에 빠진다. 겉으로는 평화를 말하면서 밑으로는 분열을 조장해 갈등의 떡고물을 주워 권력을 유지하려는 자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빠져들고 마는 자가당착의 한반도 역사가 <공작>에는 있었다. 이처럼 윤종빈의 힘은 남성성 가득한 세계에서 발견되는 모순을 다각적 국면/다양한 앵글로 포착해내는 데 있었다. <범죄와의 전쟁>의 한 장면(사진1)을 보자. 깨진 거울의 조각들은 각각의 각도 차이로 인해 피사체를 뒤틀어지게 비춘다. 얼핏 왜곡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거울 조각들에 비친 상 가운데 어느 하나 실체가 아닌 것이 없다. 이게 실체다. 각기 다른 국면/앵글이 한꺼번에 보이는 것일 뿐이다. <공작>에서도 흑금성(황정민)을 비추는 거울 장면(사진2)은 그의 이중 생활과 한반도 상황을 겹치는 방식으로 반영했다. 윤종빈은 종종 의도적으로 우리를 비추는 거울을 깨뜨리거나 구부린 다음 인물의 다층적인 면을 동시에 보여주려 애써왔다. 영화만이 해낼 수 있는 입체의 동시 상영. 우리는 그래서 윤종빈에 주목해왔던 것이다.

<공작>

윤종빈 빼기 성찰=?

‘사내들의 성찰 영화’에서 성찰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 이에 대한 대답이 <수리남>을 요약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개별 작품으로서 ‘사내들의 영화’를 놓고 시행한 벡델 테스트 결과에 그다지 의미를 두는 편은 아니다(한 나라에서 제작되는 전체 영화 중 다수가 그렇다면 문제이므로 벡델 테스트의 통계 수치는 유의미하다). 남자들끼리 치고받는 세상을 그린 영화라면 그 자체로 섬세한 만듦새를 보여주면 될 일이다. 마약계 형사가 살인마를 때려잡는 소재의 작품에 굳이 여성 형사를 배치하기 위해 무리한다면 여성을 구색 맞추기에 동원하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최근 할리우드의 몇몇 스튜디오들이 이와 관련한 딜레마에 빠져 있기도 하다. 얼마나 많이 등장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문제다. 마찬가지로 ‘범죄 액션 오락 시리즈’를 놓고 그 안에 성찰이 있느니 없느니 따지는 일은, 고양이 그림을 놓고 왜 호랑이를 안 그렸냐고 칭얼대는 격이므로 의미 있는 문제제기가 되지 못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수리남>의 감독이 윤종빈이기 때문이다. 그는 <범죄도시>가 아니라 <범죄와의 전쟁>의 감독이다. 그의 작품연보 중 첫 넷플릭스 시리즈에 무엇이 담겨 있고 무엇이 빠져 있는지는 한국영화사의 주요 기록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문제는 다시, 윤종빈표 ‘사내들의 성찰 영화’에서 성찰을 뺀 넷플릭스 시리즈는 여성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다. 이 질문은 다시 말하자면 ‘윤종빈의 작품에서 남성성을 다루는 시선은 어떻게 변했는가’가 될 것이다.

<범죄와의 전쟁>의 한 장면. 최익현이 여사장(김혜은)과 나란히 침대에 누워 있다. 대화 주제는 서열이다. “그라믄 지금 최 사장은 부산에서 몇등인데? 형배(하정우)씨는? 형배씨가 일등 아이가?” 여사장의 물음에 최익현이 발끈한다. “가시나 무슨 소리고? 형배는 내 밑이지.” 여사장은 김판호(조진웅)측에서 건너와 권력의 이동을 나타내는 도구로 등장한다. 그럼에도 이 설정이 과히 밉지 않은 건 서열 짓기에 혈안이 된 사내를 카메라가 내려다보며 거울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최민식의 절묘한 표정과 말투의 뉘앙스가 이 장면의 의도를 설득한다. <수리남>에도 침대를 내려다보는 장면이 있다. 2화에서 전요환(황정민)의 사기에 가담한 사모님(예원)이 누워 있다(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인물명이 이름 없는 ‘사모님’이다). 전요환은 서 있다. 내려다보는 위치에 선 시선은 카메라가 아니라 전요환의 것이다. 남자가 속옷 차림으로 침대에 누운 여자를 내려다보며 돈다발을 툭 던지는 그림. <범죄와의 전쟁>과 <수리남>의 두 침대 장면은, 윤종빈의 전작과 <수리남>의 달라진 태도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국정원 요원 최창호(박해수)가 전요환과 첫 대면하는 장면에서 성접대받는 설정을 굳이 넣으며 이후 빈번하게 등장하는 수영복 차림의 현지 여성들을 소비하는 태도 같은 것 말이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가부장이 삭제한 서사

<수리남>에서 무엇보다 납득되지 않는 설정은 강인구(하정우)의 아내 혜진(추자현)의 선택이다. 서사가 삭제돼 있다. 혜진은 결혼사진에 스치듯 이름 석자가 등장할 뿐 사실상 이름 없는 ‘아내’와 ‘엄마’로만 나온다. 강인구가 결혼할 결심과 함께 내뱉는 독백. “집을 비울 때가 많으니 집안 꼴이 난장판이었다. 더이상 혼자서는 안되겠다 싶어 나를 좋아한다는 여자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결혼을 하자고 하니 다들 깜짝 놀랐다. 그런데 한 여자가 그러자며 짐을 싸들고 왔다.” 강인구는 결혼할 상대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여성관·결혼관이 얼마나 한심한 인물인지를 보여주려는 대사일까, 아니면 사내들의 드라마에서 나름의 리얼리티를 살리려는 의도였을까. 난장판인 집안 꼴을 자리 잡아주는 성역할로 한 여성을 규정해버린 인식을 강인구의 캐릭터 설정이라고 본다면, <수리남>은 ‘사내들의 성찰 드라마’라는 점을 작품 안에서 증명했어야 했다. ‘사내들의 범죄 액션 오락물’에서 성찰 따위를 찾을 일은 아니라고 한다면, 여성을 저토록 함부로 소비하는 오락물에 대한 관객의 태도는 그간 우리가 윤종빈을 대해온 그것과는 달라져야 할 것이다. 강인구는 집안 꼴이 난장판이라는 이유로 결혼할 결심을 했다. 혜진은 어떤 이유로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결심을 하게 된 걸까. <수리남>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는다. 필시 감독의 구상에는 담겨 있었을 혜진의 서사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10부작에서 6부작으로 줄어들며 지워진 것일까. 그렇다면 혜진의 사연은 왜 우선 제거 대상이어야 했는가. 숱한 중년 남성 서사에서 가장이 짊어지는 삶의 무게를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아내’는 그렇게 타자화하고 만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속 성기훈(이정재)의 아내처럼 말이다.

<수리남>은 강인구를 책임감 있는 아버지로 묘사하려 한다. 안기부도 아닌 국정원 시대의 아버지인 강인구가 집을 내팽개치고 이역만리에서 사업을 벌이려는 건 책임감이 아니라 욕망일 뿐이다. 한 남자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따라가면 될 일을, 가정을 짊어지고 일으키려는 아버지로 그리려니 앞뒤가 틀어지게 된다. 감옥에 갇혀서도 아파트 전세금은 절대로 빼면 안된다는 강인구는 옥중에서 자녀들의 성적표를 본다. 여기서 보이는 하정우의 아빠 미소는,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하더라도 가족과 함께 살아가려는 아버지의 표정이지 목숨 걸고 마약 조직에 잠입하려는 남자의 얼굴이 아니다. 여기서 <수리남>이 윤종빈의 전작들과 연장선에 놓이는 지점이 보인다. 지금 생각하면 그의 부자(父子) 관계 설정은 콤플렉스에 가까워 보인다. <군도: 민란의 시대>(2014)의 조윤(강동원)은 그 절정이고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익현은 다른 가족은 다 제쳐두고라도 자신의 장남만큼은 힘 있는 검사로 키워내려는 욕망으로 뭉쳐 있다. <수리남>의 강인구에겐 전 과목에서 ‘매우 잘함’을 받아오는 장남이 있다. 전화 한통 하기도 힘든 저개발국 교도소에서 굳이 자녀들의 성적표를 우편으로 받아보도록 만든 대목. 체육 영역만 ‘매우 잘함’인 것으로 보아 아빠를 닮은 둘째 딸은 “뭐 하나라도 잘하면 됐지”로 족한 존재인 반면 첫째 아들은 공부로 출세해 자신과는 다른 인생을 살아갈, 욕망을 대리할 2세로 정해져 있다. 귀여움은 딸에게, 인생 역전 욕망은 아들에게.

<수리남>

OTT 시대 저널리즘의 일

이 글이 <수리남>의 재미있는 중심부는 말하지 않고 변죽만 건드려 트집 잡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겠다. <수리남>의 중심부에서 비평의 언어에 담을 만한 내용을 나는 발견하지 못했다. 이 글이 <수리남> 3화까지를 중심으로 언급한 것도 그 이후의 에피소드들은 정해진 결말을 향해 적당한 액션과 위기와 반전이 배치된 넷플릭스용 시리즈로 보아 넘기면 될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수리남>은 한동안 넷플릭스 TV쇼 부문 톱5 안에 머물 정도의 기술적 완성도를 지닌 작품이기도 하다. 비평의 영역에서 놓치지 않고 지켜봐야 할 지점은, 이처럼 넷플릭스를 거쳐 상대적으로 쉽게 전세계 관객과 만나는 한국 작품들이 어떤 방식으로 주변 인물들을 타자화하는지다. <오징어 게임>이 여러 측면에서 성취를 이뤘으나 중년 남성이 짊어진 인생의 무게를 표현하기 위해 여성 가족을 평면화·타자화한 점이나, 극적 위기 조성을 위해 여성의 성(性)을 대상화한 면은 반드시 기억하고 넘어가야 할 대목들인 것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유력한 한국 감독이 넷플릭스에 납품하면서 이전의 작품들과 확연하게 달라진 면모를 보였다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제작 구조를 바탕으로 그 경로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이 대목은 비평 영역보다는 취재 영역에서 접근하는 것이 한결 적절할 텐데, 안타까운 건 한국의 영화 저널리즘이 제작진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말을 받아쓰는 정도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작품 홍보가 무엇보다 절실한 입장인 감독이 “내가 취재해보니 영화보다 실화가 더 영화 같았다. 개연성 없이 느껴질까봐 실화 내용을 일부러 덜어냈을 정도”라고 말할 때, 이를 제목으로 뽑은 기사는 얼마나 구체적으로 감독의 말을 검증한 걸까.

이와 관련된 담론으로서 한국 영화나 OTT 시리즈 제작 현장에서 프로듀싱이 얼마나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최근의 논의 역시, 비평의 영역보다는 취재 영역에서의 팩트 체크로 접근해 점검할 필요가 크다. 여름 시장에서 극소수 초대형 작품의 이례적인 실패 결과만을 놓고 한국영화 전반에 프로듀싱이 제대로 작동하는가를 책상에 앉아 의심할 일은 못된다는 뜻이다. <범죄도시2> <공조2: 인터내셔날> <정직한 후보2> <안나> 등의 사례를 보면 기획상품 제작 현장에서의 프로듀싱의 개입과 주도는 2000년대 초 기획성 조폭 코미디의 열풍 이래로 여전히 강력한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다 다수의 작품에서 편집권이 감독에게 주어지는 관례를 포함해 제작자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적은 측면은 한국 시스템만이 지니는 장점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수리남>은, 한국영화계에 영향력 있는 중견 감독이 OTT로 넘어가 위와 같은 변화를 보였을 때 기획, 제작, 편집의 프로세스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저널리즘의 층위에서 보다 실증적으로 확인해야 할 중요한 사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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