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SF]
[이경희의 오늘은 SF] 그래서 메타버스가 뭐냐고
2022-10-06
글 : 이경희 (SF 작가)

조금 시일이 지난 이야기로, 메타버스를 소재로 한 앤솔러지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분량은 300매. 많지도 적지도 않아서 쓰는 입장에선 의외로 가장 난이도가 높은 볼륨이다. 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계약 조건이 좋았고, 마감 기일도 넉넉했기에 고민 없이 선뜻 제안을 수락하고 말았다. 어쨌든 계약금은 오늘 당장 통장에 들어오는 법이고, 일은 미래의 내가 하는 거니까. 이 선택이 앞으로 어떤 고난과 역경을 불러오게 될지 당시의 나는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고비는 시작부터 찾아왔다. 프로젝트 관련자들이 모두 모인 킥오프 미팅. 묘한 긴장이 감도는 테이블 사이로 어색한 인사와 명함이 오가고, 누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이랬다. “근데요… 메타버스가 대체 뭘까요?” 그 질문에 누군가 이렇게 답했던 것 같다. “그… 러게요? 싸이월드 같은 건가?” 하하하. 그쵸? 호호호. 그러니까요.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그저 웃을 뿐이었다. 단언컨대 그 자리의 누구도 메타버스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근데 이게 마냥 웃을 일이 아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메타버스가 뭔지 설명하라면 아마 못할 테니까. 어쩌면 지구상에는 메타버스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사람의 수보다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사람의 수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 후로 몇달을 공부하고 이리저리 수소문했지만, 나는 메타버스에 대해 속시원히 설명해주는 사람을 단 한명도 만나지 못했다. 메타버스 관련 기사나 논문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아니, 그건 리니지에 이미 있는 거잖아’, ‘그건 그냥 싸이월드 아니야?’, ‘그거 지금 트위터에서 이미 하고 있다니까’, ‘예전에 세컨드라이프라고 망한 서비스가 있었는데 왜 망했냐면…’ 정도의 반응만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메타버스는 아직 오지 않은 세계여서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나갈지 예측할 수 없다’며 당당하게 결론짓는 전문가도 보았다. 부럽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하셔도 되지만, 저는 그걸 소설로 써야 된단 말입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하기로 했느냐면, 그냥 가상현실 게임 소설을 쓰기로 했다. 내가 찾아본 인터뷰에서는 ‘이런 게임 같은 것도 메타버스인가요?’라는 질문에 ‘네, 그것도 메타버스의 일종입니다’라고 답하는 전문가들이 태반이었기 때문에, 아마 내가 소설 속에서 구상한 가상현실 게임도 메타버스의 일종이 맞을 것이다. 아마도.

메타버스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지만, 가상현실 게임 클리셰는 SF 장르에 널리고 널렸다. 적당히 그럴싸하게 조합하면 그럴싸한 소설 한편 정도는 얼마든지 쓸 수 있다. 규격화된 가상현실 탈출 이야기에 진짜/가짜 철학 놀음을 섞고, 평소 하고 싶었던 기후 위기 메시지를 조금 과격하게 끼얹으면… 음, 지금도 열심히 원고를 마무리하는 중이다. 작품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출간 이후에. 어쨌든 나는 그렇게 소설의 줄거리를 구상하며 레퍼런스가 될 만한 자료를 모아나갔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여기서부터인데, 레퍼런스를 체크하던 중 나는 우연히 문제의 작품과 마주하게 된다. 메타버스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말이다. 이 영화, 솔직히 문제가 산더미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감독이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점이다. 그게 왜 문제냐고? 사람들이 이 작품에 너무 많은 권위를 부여하니까. 약간 과장을 보태서, ‘메타버스 세상이 오면 이런 일이 가능해집니다’류의 주장 중에서 3분의 1 정도는 <레디 플레이어 원>에 그대로 나오는 것 같다. 이 영화를 보고 대충 메타버스를 오해한 사람들이 투자 설명회다 뭐다 아는 체 떠들고 다니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될 정도다.

또 어떤 문제가 있냐고? 이 영화는 은근슬쩍 가상 세계를 현실의 아래층에 놓고 있다. 밖에 나가서 여친도 좀 사귀라는 식의 훈수도 짜증나지만, 생계를 위해 가상 세계에 접속한 빈민가 사람들을 마치 도박 중독자처럼 묘사하며 희화화하는 도입부는 정말이지 끔찍하다. 온라인 게임 속 골드를 팔아 생활하는 저개발국가 아이들의 노동 착취 문제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는 실제 현실의 문제란 말이다. 이럴 때마다 할리우드가 그 많은 제작비를 대체 어디에 쓰는지 궁금해진다. 이런 문제들을 자문받는 데 제작비의 1만분의 1만 썼어도 절대 이런 각본이 탄생하진 않았을 텐데.

그리고 이 영화의 여주인공 설정 말인데, 2018년에 나온 영화가 어떻게 그런… 어휴, 말을 말자. 이 영화에 대한 불평은 아직 한참 더 할 수 있지만 여백이 없어 일단 마쳐야겠다. 도저히 분이 풀리지 않아 나머진 다음 연재에 이어서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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