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독자에게]
[이주현 편집장] 영화보다 영화 같은
2022-09-30
글 : 이주현

류승룡, 염정아 주연의 뮤지컬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와 라미란, 김무열 주연의 정치풍자 코미디영화 <정직한 후보2>가 9월28일 나란히 개봉했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중년 여성이 첫사랑 찾기에 나서는 이야기고, <정직한 후보2>는 진실만을 말하게 된 정치인 주상숙(라미란)이 강원도지사로 활약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시한부, 첫사랑, 거짓말을 못하는 정치인은 판타지와 코미디를 위해 동원된 영화적 장치지만, 요즘의 현실은 영화보다 더 극적일 때가 많아서 ‘진실의 주둥이’와 같은 키워드는 그저 귀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인생은 아름다워’라고 외치기에 세상은 너무 위태로워 한숨과 실소, 근심과 한탄에 파묻힐 때도 많다. 대통령의 해외 순방 과정에서 발생한 비속어 논란부터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로 인한 불안한 경제지표, 스토킹 범죄, 러시아의 예비군 부분 동원령, 무솔리니 이후 100년 만에 극우 정권이 들어서게 된 이탈리아, 이란의 ‘히잡 의문사’ 시위 확산 등 세계 곳곳에서도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경고음이 쉬지 않고 들려온다.

영화계의 사정도 좋다고만은 할 수 없다. 지난 주말엔 ‘영화제 지원 축소 및 폐지에 따른 영화인 간담회’가 열려 강릉국제영화제와 평창국제평화영화제에 이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폐지 발언까지 나오게 된 상황에 대한 성토가 있었다. 경제 논리가 우선한 것인지 정치적 판단에 의한 것인지, 영화제의 가치와 존립 이유에 대한 성찰 없이 도지사나 시장의 뜻에 따라 손쉽게 문화예술 정책이 수정되는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의 자리였다. 공교롭게도 올해 예산 지원 중단으로 폐지 위기를 맞은 강릉국제영화제와 평창국제평화영화제 모두 강원도에 기반한 영화제들인데, 강원도 하니 최근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SNS에 올린 <정직한 후보2> 감상평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라미란씨가 국회의원에 떨어지고 강원도지사가 돼서 겪는 스토린데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강원도청 올로케여서 실감났고요, 거짓말을 못한다는 설정까지 딱 제 얘기더라고요ㅋ” 김진태 도지사는 거짓말을 못하게 된 영화 속 강원도지사(라미란)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영화에 깊이 감정이입한 듯하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주목한 것은 문장의 제일 마지막에 마침표 대신 찍혀 있는 ‘ㅋ’이었다. 이 ㅋ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자신이 진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제 입으로 말하는 것이 겸연쩍어 쓴 웃음인가, 아니면 가볍게 웃자고 한 농담이라는 뜻을 슬쩍(ㅋ이 하나다) 흘린 것인가. ‘거짓말을 못하는 정치인’이라는 설정은 충분히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코미디의 소재가 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테니, 김진태 도지사의 저 말을 다큐로 받아치는 것 또한 코미디라는 생각이 든다. 결론은 종종 현실이 코미디영화보다 더 코미디라는 것. 이래저래 언어의 품격을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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