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부산국제영화제]
#BIFF 1호 [인터뷰] 강소원 와이드앵글 프로그래머, “상영하고 싶은 다큐멘터리가 넘쳐나는 예외적 한 해”
2022-10-06
글 : 이우빈
사진 : 최성열
부산국제영화제 강소원 와이드앵글 프로그래머 인터뷰

영화 매체의 최전선엔 언제나 다큐멘터리가 있다. 인간의 내밀한 속내부터 세간의 거시적인 사건까지 아우르는 내용을 다채롭게 추구하거니와 신선한 영상 언어를 선보이려는 형식적인 도전도 끊이질 않는다. 그러니 영화제에 방문할 만큼 영화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다큐멘터리 작품을 소상히 살펴보는 것만큼 보람찬 경험은 없을 테다. 특히 “경쟁 부문에 선정하고 싶은 영화가 넘쳐나는 매우 예외적인 한 해였다.”란 강소원 프로그래머의 말에 따르면 올해 와이드앵글 섹션은 필히 주목할 만하다. 게다가 특별 기획 프로그램으로 마련된 ‘21세기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시선’에선 극장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21세기의 다큐멘터리 걸작이 즐비하다.

- 한국 다큐멘터리가 평소보다 더 많은 것 같다. 중견·신진 감독들의 조화가 눈에 띈다.

= 맞다. 경쟁과 쇼케이스 부문을 합쳐 총 12편이나 있다. 한국 다큐멘터리의 쿼터 비율을 이례적으로 높이기까지 했다. 영화제 내부적으론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그만큼 개성이 다양하고 수준 높은 작품이 터져 나왔다. 김태일, 주로미 감독은 10년 넘게 선보인 ‘민중의 세계사’ 프로젝트의 마지막 작품 <또 바람이 분다>를 선보이며 중견 감독의 저력을 보여줬다. 감독 부부의 자녀들이 성장하는 과정이 압축적으로 펼쳐지면서 프로젝트의 주제를 포괄하고, 가족 영화로서의 감동까지 선사한다. 재작년에 <셀프-포트레이트 2020>으로 부산을 찾았던 이동우 감독의 <사갈>은 개인적으로 지지하고 싶을 만큼 흥미로운 영화다. 전작에 이어서 아주 특이하고 문제적인 사람이 등장한다. 감독과 우연히 만난 사채업자인데 빚도 많고, 잦은 도박에 시달리면서 살아간다. 사채업자의 삶을 세세히 보고 있으면 “이걸 왜 봐야 하지?”란 의문이 들 정도로 가슴이 답답해진다. 아마 이동우 감독이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느낀 고민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다. 촬영 대상의 삶이 조금이나마 나아지길 바라면서 영화를 찍지만,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리라 걱정하는 감독의 회의감이 잔뜩 느껴진다. 깊은 울림이 있는 영화다. 왕민철의 <생츄어리>도 전작 <동물, 원>보다 한발 더 나아간 관찰 다큐멘터리다. 영화 속 인물들의 활동을 면밀히 관찰하는 카메라의 태도에서 감독의 선한 성품이 느껴질 정도다. 보고 나면 모두 왕민철 감독에 대한 신뢰를 얻을 것 같다. 김보람 감독의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은 감독의 미래가 기대되는 작품이다. 모녀간의 굉장히 내밀한 대화가 벌어지는데 “대체 이걸 어떻게 카메라로 찍었지, 어떻게 이만큼 근원적인 심리에까지 카메라가 개입했지?”란 놀라움이 들었다. 황윤 감독의 <수라> 역시 전작들을 넘어서는 감독의 가장 중요한 영화가 될 것 같다.

- 해외 작품들도 주제가 아주 다양해 보인다.

= 먼저, 사회적으로 논쟁적인 문제를 다루는 영화가 언제나 있다. 미얀마 영화집단의 <미얀마 다이어리>는 미얀마의 국가적인 위기를 민중의 익명적 시선으로 포섭한 영화다. 다양한 촬영 소스로 구성돼있어서 화질이나 포맷이 씬 단위로 바뀌는 등 굉장히 불균질한데도 현실에 뛰어드는 카메라의 힘이 강력하게 느껴진다. 샤우낙 센 <숨쉬는 모든 것>은 그동안 많은 인도 다큐멘터리에서 봐온 인도의 정치적 현실, 여성 인권의 수난, 처참한 사회 문제를 살짝 벗어난다. 다친 솔개들을 돌보는 형제의 자취를 천천히 좇는데 일반적인 환경, 생태 영화로 분류되기는 어렵다. 형제의 사회적 활동이 점차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과정에서 만족감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감동적인 이야기다. 선댄스영화제에서 상영됐고 칸 영화제에선 다큐멘터리 대상 골든 아이를 수상했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다. 또 단순한 재미로 따지면 비나이 슈클라 감독의 <우리가 지켜보는 동안>을 들고 싶다. 인도의 간판 앵커 라비쉬 쿠마르가 인도 총리의 반대파 진영에서 국가주의에 반발하고 경계하는 보도를 이어간다. 그러면서 생명의 위협도 받고 여러 실패도 겪는데 그럴 때마다 영웅적인 주인공의 면모가 빛난다. 흥미로운 대목은 카메라가 극영화에서나 가능할 만큼 가까이에서 사람들을 찍는데 아무도 카메라를 경계하지 않는 부분이다. 그래서인지 다큐멘터리지만 극영화처럼 매우 드라마틱하고 박진감 넘친다. 인도에선 다큐멘터리 영화 중에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 특별 기획 프로그램인 ‘21세기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시선’에 반응이 뜨겁다.

= 처음 다큐멘터리 특별 기획전을 선보이게 됐다. 21세기를 대표할만한 작품들로 골랐는데 특정한 경향이나 스타일로 묶기에는 힘들다. 개괄하면 전통적인 다큐멘터리에 포섭되지 않는 논쟁적이고 독특한 영화들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에서야 가능해진 고프로 촬영의 <리바이이던>이나 픽션의 요소가 강하게 가미된 <에브리씽 윌 비 오케이>, <나의 위니펙>이 있다. 또 극영화의 방법론을 끌고 와 매력적인 <성스러운 도로>는 숏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아름답다. 꼭 극장에서 봐야 한다. 올해 칸 영화제에서 화제였던 <인체해부도>는 감상 기회가 아주 드물 테니까 이번에 챙겨보길 권한다. 장르적으로 SF나 공포영화에 가까운 무척 독특한 접근법의 영화다.

- 특별 상영하는 <지석>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하다.

= 김지석 프로그래머의 타계 이후 곧바로 시작한 프로젝트다. 완성된 지 꽤 지났는데 영화제가 정상화된 올해에야 공개하게 됐다. 김지석이란 개인에 대한 영화이면서 부산국제영화제의 역사, 함께 성장해 온 아시아 영화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자파르 파나히, 모흐센 마흐말바프처럼 이제 거장이 된 감독들이 대거 참여한다. 하지만 단순 인터뷰로 인물을 회고하는 방식이 아니라 편지로 헌사를 보내거나 직접 찍은 영상을 보여주는 등의 연출이라서 형식적으로도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첫 상영에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비롯한 많은 영화인이 자리할 예정이다. 이후에는 아시아의 여러 영화제에서도 소개하려고 한다.

- 단편 영화 상영작의 선정 기준은?

= 과거엔 단편 영화를 감독 개인이 작게 만들어 출품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요즘엔 단편 영화에도 제작사와 배급사가 체계적으로 제작에 관여하는 편이다. 단편 영화가 어떤 아마추어리즘의 경향을 벗어나서 감독 필모그래피의 중요한 시작으로까지 여겨진다. 하지만 여전히 단편 영화의 선정 기준은 다양성과 독창성이다. 이상하다고 여겨질 정도의 새로운 장르, 주제, 형식을 시도하는 작품을 선호한다. 만약 겉보기에는 영화제에 상영될 만큼의 완성도가 아니라고 느껴질 정도더라도 특정 관객의 취향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 같다면 선정하게 된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