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부산국제영화제]
#BIFF 3호 [인터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이광국 감독, “감독의 역할은 미지의 배우들을 세상에 알리는 것”
2022-10-08
글 : 임수연
사진 : 최성열
지석 부문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이광국 감독

언제부터인가 이광국 감독에게는 ‘홍상수 감독의 조감독 출신’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일이 뜸해졌다. <씨네21> 신인감독 발굴 프로젝트 당선작 <로맨스 조>를 시작으로 그는 고유한 작가적 아이덴티티를 품고 확장되어 왔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고 형식의 복잡성이 곧 영화의 정체성이 되는 작품을 만들어왔던 그의 신작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은 일견 전작과 다른 궤도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면접 결과를 기다리던 두 친구, 설희(여설희)와 화정(우화정)이 일출을 보며 소원을 빌기 위해 동해 바다로 떠나면서 출발해 인물의 감정을 진득하게 쫓아간다. 작업 과정에서 “구조보다 정서에 마음이 간” 결과물이지만, 특유의 유머와 독창적으로 구조적 개성을 만드는 인장은 여전하다.

- 주인공들의 ‘소원’은 이야기의 출발점일 뿐만 아니라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테마이기도 하다.

= 사람들은 해와 달, 심지어 별을 보면서 소원을 빈다. 추상적인 대상을 놓고 매우 상투적이고 현실화되기 어려운 소원을 비는 행위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다. 가족이 그렇듯이 함께 사는 친구에게 막상 가슴 깊은 곳에 있는 불만을 온전히 털어놓을 시간이 별로 없기도 하다. 여행을 계기로 갈등이 시작되면서 조금씩 진심이 드러나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설희와 화정의 여정을 통해 그들이 진짜 원하는 소원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야기에 접근했다.

- <꿈보다 해몽>의 신동미, 유준상부터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의 고현정까지, 이전에 인연이 있던 배우들과 작업한 적이 많았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은 낯선 신인 배우들이 주연을 맡았다. 캐릭터와 실제 배우의 이름도 일치한다.

= 제작비를 구하지 못하면 영화를 찍을 수 없다. 영화진흥위원회 제작 지원 심사에서 계속 떨어지면서, 아예 작은 규모로 만들 수 있는 다른 시나리오를 써서 개인적으로 작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6년 반 정도 단편 영화 워크숍 강의를 진행하면서 배우로서 가능성을 발견했던 친구들을 떠올린 거다. 처음부터 배우를 정해놓고 “즉흥적으로 동해에 일출을 보러 간다”는 한 줄의 스토리에서 출발해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다. 실제 그 나이대에서 갖는 고민을 다룬 만큼 배우가 가진 개성을 최대한 녹여내고 싶어서 이름도 그대로 가져왔다.

- 주로 베테랑 배우들과 작업하다가 직접 가르쳤던 학생들과 영화를 만드는 경험도 무척 신선했을 것 같다.

= 감독이 해야 할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숨겨져 있는 배우들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로맨스 조>를 찍을 때 당시 막 활동을 시작했던 김새벽 배우에게 좋은 느낌을 받았고, 단편 <말로는 힘들어>의 주인공으로 캐스팅했다. 배우를 발견하고 싶은 욕망은 늘 있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신인 배우를 마음 편하게 쓸 수 있는 작품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이야기에 맞는 좋은 배우가 있다면 신인들과 적극적으로 작업하고 싶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은 단편영화 한두 편 찍은 경험이 전부인 배우들이 주연을 맡았다. 덜컥 주인공을 맡으면서 많이 불안해하기도, 잘하고 싶지만 방법을 몰라서 헤매기도 했다. 전작보다 배우들과 시간을 많이 보냈다. 다른 곳에서 찾아 연기를 하려고 하지 말고 과거 유사한 경험으로부터 감정을 이끌어내라, 내가 실제 이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생각해보라는 말을 많이 해줬다. 그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같이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었다.

- 시나리오를 쓰면서 ‘요즘 20대’의 정서가 무엇인지 고민하진 않았나.

= 그런데 나이만 먹었을 뿐이지 지나고 보면 큰 틀에서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지금 갖고 있는 불안감과 막막함은 20대 때와 똑같다. 디테일한 부분은 배우들과 대화를 하며 찾아갔다.

-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 손님>에 이어 이번 영화 제목도 평범하지 않다. (웃음) 어떻게 나온 제목인가. 영제 < A Wing and a Prayer >는 어떤 의미인가.

= 한곳에 안주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불안하게 떠도는 20대의 정서와 어울리는 관용구라고 생각했다. 영어 제목은 자막 번역을 맡은 달시 파켓이 지어줬다. ‘한 줄기 희망을 품고’ 라는 의미를 담은 관용구인데, 전쟁 중 전투기 한쪽 날개가 망가진 파일럿이 제발 살아서 돌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마음을 묘사한 데서 유래됐다. 극중에도 날개가 등장해서 제목과 잘 어울렸다.

- 영화의 주 배경을 동해시로 선택한 이유가 있나.

=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곳이다. 관광객이 많지 않아 요란하지도 않고 있을 때 마음이 편안해지고…. 내가 사랑하는 공간을 영화에 담아보고 싶었다. 총 22회차 중 서울 촬영 하루를 제외하면 모두 동해시에서 찍었다. 요즘 유행하는 ‘한달 살기’를 한 거다. 크랭크업 하고 다시 돌아오기가 정말 싫었다. (웃음)

- 이번 작품에선 직접 촬영까지 맡았더라. 어땠나.

= 스태프가 많지 않았다. 콤팩트한 시스템으로 만들어보고 싶었던 작품이라서 촬영도 직접 했다.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상황이 바뀌었을 때 설명해야 하는 과정이 줄어드니 덜 소모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현장에서 원래 시나리오와 다르게 바꾸어 찍은 장면도 많다. 하지만 전문가도 아니고, 배우의 연기부터 카메라 앵글까지 기술적인 부분까지 함께 챙기느라 집중력을 많이 발휘해야 해서 어려움이 컸다.

- 롱테이크로 배우들을 따라가며 찍은 대화 신이 많던데.

= 벼랑 끝에 몰리면 다 하게 된다. (웃음) 배우들도 호흡이 긴 신에서 살아있는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 때가 있다. 쇼트를 많이 나눈 촬영으로는 담을 수 없는 생생함이 분명히 존재한다.

- 구조상 앵무새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 몇년 전 뮌헨국제영화제에 갔을 때 공원에서 산책을 하다가 앵무새를 찾는다는 전단지를 본 적이 있다. “새를 찾을 수가 있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럼에도 앵무새를 꼭 찾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생기고. 이상하게 그 전단지가 계속 마음에 남아 있던 중에 이번 작품을 하면서 ‘날아간 새’와 ‘소원’의 연결 지점이 떠올랐다. 소원도 붙잡기 어려운 것이 많으니까 새와 다르지 않다.

- 결국 타인에 대한 공감과 위로는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에 대한 영화로 보였다.

= 타인의 마음을 100%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입장을 바꿔 생각할 수 있는 여지는 있다. 어떤 중요한 일을 겪었던 사람은 자신의 경험 덕분에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약간만 시선을 바꿔도 달라질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그런 일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면서 영화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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