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부산국제영화제]
#BIFF 3호 [인터뷰] ‘유코의 평형추’ 하루모토 유지로 감독, “스스로 마음에 드는 영화를 간섭 받지 않고 만들었다”
2022-10-08
글 : 김철홍 (평론가)
사진 : 백종헌
<유코의 평형추> 하루모토 유지로 감독 인터뷰

수상의 여부가 영화를 평가하는 절대적 기준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새롭고 낯선 이름들 사이에서라면, 상이라는 타이틀은 아주 훌륭한 길라잡이가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가 특별 기획한 ‘일본 영화의 새로운 물결’ 섹션에 선정된 열 편의 영화 중 단연 눈에 띄는 영화는 하루모토 유지로 감독의 <유코의 평형추>다. 이 영화는 2년 전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커런츠 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여러모로 ‘일본영화’의 ‘새로운 물결’을 파악하기에 적절한 영화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직접 모금한 천오백만엔(한화로 약 1억 5천만 원)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그 누구의 간섭 없이 오로지 감독의 직관을 통해 만들어진, 말 그대로 ‘독립영화’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극장 흥행에까지 성공했다는 사실이 이 영화를 물결의 시작점으로 보고 싶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2년 만에 부산을 찾은 하루모토 유지로 감독에게 새로운 물결에 올라탄 소감을 들었다. 그의 태도는 겸손했지만 대답에는 자신감이 느껴졌다.

-뉴커런츠상 수상 후 2년 만에 부산을 찾았다. 그동안 여러 해외 영화제에 초청받고 일본 극장 개봉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는데 소회가 궁금하다.

=늘 신인 감독의 마음가짐으로 영화제에 참석했다. 전 세계의 다양한 관객들이 내 영화를 좋아해 주는 것을 본 뒤에야 내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기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렇다고 스스로를 매우 대단한 감독으로 생각하고 있거나, 뭐 그런 상태는 아니다. (웃음) 극장 개봉은 작년 9월에 했다. 일본에선 대체로 사회적 메시지를 담거나 무거운 테마를 갖고 있는 영화는 흥행이 어렵다는 인식이 있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봐주셔서 감사하다. 무엇보다 ‘이런 영화는 흥행이 어려울 것이다’는 시선과, 독립영화에 대한 크고 작은 편견들을 뒤집은 것이 뿌듯하다. 덕분에 그 후로 좋은 제안을 많이 받았고 다음 작품을 조금 더 큰 규모의 영화로 준비하고 있는 상태다.

-올해 ‘일본 영화의 새로운 물결’ 섹션에 초청을 받았다.

=초청된 다른 9편의 영화 목록을 보고 매우 기뻤다. 이 감독들의 영화 사이에 내가 만든 영화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니. 모두 예전부터 좋은 영화를 만들어 온 감독들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상영작의 이름들을 보고, 선정 위원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 영화들을 선정했고, 이 영화들을 통해 어떤 의도를 전달하고 싶었는지 확고하게 느껴지는 메시지가 좋았다.

-어떤 메시지를 느꼈나.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반드시 흥행적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은 아니다? (웃음) 일단 나를 제외한 9명의 감독 모두 자신의 영화에 작가성을 드러내는 훌륭한 영화를 만드는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모두 흥행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가타야마 신조 감독 같은 경우에는 어느 정도 반응을 얻은 편이지만 아직도 올라갈 곳이 많은 감독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덜 알려진 좋은 영화가 조명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요즘 일본 영화의 흐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유코의 평형추>의 흥행 이후 느껴진 변화가 있는지.

=제작위원회를 통해 영화가 제작되고 있다는 게 일본 영화계의 가장 심각한 문제다. 나처럼 개인이 천오백만 엔을 모금해 영화를 제작하는 일은 잘 성사되지도 않을뿐더러 리스크도 크다. <유코의 평형추>의 흥행 이후 주위에 어느 정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은 하지만 아무래도 단기간 내에 큰 변화가 생기기는 어려울 거다. 내가 영화를 완성 시킬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욕심이 컸기 때문이다. 나는 이십 때부터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일본의 대형 스튜디오에서 조감독 일을 하면서 불만이 많이 쌓였던 사람이었기에, 그런 리스크까지 감내하면서도 일을 진행했다. 그렇게 스스로 마음에 드는 영화를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만들 수 있었다.

-이번 상영을 계기로 본인의 영화를 다시 보았는지.

=물론 다시 봤다. 보면서 반성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웃음) 어쩌면 이 영화는 2년 전이 아닌 현재에 더 어울리는 영화처럼 느껴졌다. 영화에서 다뤘던 성폭력 사건이나 SNS를 통한 집단 매장, 이를 제대로 다루지 않는 언론의 문제들이 과거보다 더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더 하면 더 했지 절대 나아지지는 않은 것 같다.

-말씀한 것처럼 현실에 관한 날카롭고 시의적절한 메시지도 인상적이지만, <유코의 평형추>는 무엇보다 영화 제목처럼 단단하게 평형을 이루고 있는 두 개의 축 구조가 매력적인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기쁘다. 스스로 평가하자면 영화의 구조를 논리적으로 세우는데 좀 더 자신이 있다. 나는 감각적인 비주얼이나 이미지를 구현하는 것보다는 시나리오 상의 로직을 구성하는 걸 더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각본을 쓰는 시간보다 각본을 쓰기 직전 단계인 플롯과 구성표를 작성하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유코가 단서들이 적힌 포스트잇을 벽에 붙여 놓고 이를 배열하여 논리를 구성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내가 구성표를 짤 때 실제로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복잡하지만 정교하게 맞물린 두 개의 축을 통해 극적인 연쇄 반응을 의도했다.

-덕분에 엔딩에서 관객들이 느끼는 충격이 상당한 것 같다. 충격적인 장면도 있고 반전도 있지만 동시에 희망까지 느껴지는 엔딩이었다.

=관객들이 유코가 느낀 감정의 변화들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도록 연출한 영화였기 때문에 마지막을 마냥 비극적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관객 각자가 느낀 감상을 존중하지만 희망을 품고 찍은 장면이 있다. 관찰자였다가 당사자가 된 유코를 보며 관객 역시 자신이 당사자가 될 수도 있다고 자각하길 바랐다.

-엔딩을 비롯한 여러 장면에서 관객들을 휘어잡는 서스펜스가 느껴지기도 했다. 덕분에 153분이라는 러닝타임이 길지 않게 느껴진 것 같다.

=대학교 때부터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와 마스무라 야스조 그리고 다르덴 형제 감독의 영화를 정말 좋아했다. 특히 카메라 워킹은 다르덴 감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말씀해 주신 엔딩 장면은 특히 다르덴 감독 영화의 느낌을 의도적으로 연출한 장면인데 잘 표현된 것 같아 만족스럽다.

-다음 작품 계획이 궁금하다.

=앞서 말한 ‘포스트잇’ 단계는 마쳤고 (웃음),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단계다. 이번 역시 두 개의 축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스타일이고, <유코의 평형추>에서 다뤘던 주제에 버금가는 흥미로운 이야기다. 내년부터 촬영 예정이고 2024년에 새 영화로 다시 부산을 찾는 것이 목표다. 마지막으로 <유코의 평형추>의 한국 개봉 역시 내년 상반기에 예정되어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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