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영웅 Class 1>의 한준희 크리에이터는 <D.P.>에서 함께 작업했던 홍경을 두고 “연기 괴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긴 호흡으로 자기 옷 같은 캐릭터를 만났을 때” 보여줄 폭발력을 기대하며 그를 범석 역에 추천했다. 이전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다가 시은(박지훈)과 수호(최현욱)가 다니는 학교에 전학을 오게 된 범석은 <약한영웅 Class 1>에서 가장 복합적인 캐릭터 중 하나다. 겁이 많지만 동시에 충동적이고, 또래 친구들을 동경하며 보다 강해지고 싶은 치기 어린 욕망에 사로잡히는 복잡다단한 인물이다. <결백>의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정말 먼 곳>의 성소수자 시인, <D.P.>의 군 가혹행위 가해자 등 변화무쌍한 스펙트럼을 보여줬던 그의 필모그래피에서도 <약한영웅 Class 1>의 범석은 우리가 처음 만나는 홍경의 얼굴이다.
-올해 영화제에서 가장 열렬한 반응을 견인하고 있는 작품 중 하나가 <약한영웅 Class 1>인 듯하다. 개막식 레드카펫부터 오픈토크까지 영화제 관객과 다양한 방식으로 만났다.
=기본적으로 영화제는 관객을 위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스크린을 통해서만 볼 수 있던 창작자를 직접 만나고 싶어 오는 분들이 많을 테니까. <약한영웅 Class 1>과 배우들을 보러 온 관객들과 한 번이라도 더 눈을 마주치고 스킨십하고 소통하는 과정이 우리에게도 정말 좋은 경험이 된 것 같다.
-젊은 나이에 비해 의외로 교복을 입은 필모그래피가 많지 않다. <약한영웅 Class 1>에서 학창 시절을 연기해보니 어땠나.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심정이 어땠는지도 궁금하다.
=원래 작품을 볼 때 장르나 나이대를 따지진 않는다. 도전할 만큼 충분한 가치가 있는지, 매혹적인 작품인지가 더 중요하다. <약한영웅 Class 1>은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지 두려움이 컸던 작품이다. 대본을 읽으면서 절반은 알겠는데 나머지 절반은 잘 모르겠더라. 그래서 유수민 감독님과 한준희 크리에이터님을 만났을 때 “제가 할 수 있을까요?”라고 걱정스럽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캐릭터의 액션 스타일이 그 인물의 성격을 보여준다. 초반부 범석이 보여준 액션은 예기치 않게 몸을 날려 패싸움을 막는 신 정도지만, 이 역시 그가 어떤 인물인지 보여주지 않나.
=솔직히 말씀드리면 (박)지훈이랑 (최)현욱이가 대본 리딩 할 때부터 액션 스쿨을 열심히 다닌 것과 달리 나는 별로 한 게 없다. (웃음) 범석 캐릭터가 체계적인 액션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일 것이다. 시은의 액션이 영리하고 수호의 액션이 여유롭다면 범석의 경우 감정이 앞서서 나오는 충동적인 움직임이 많다.
-범석이 시은과 수호에게 갖는 감정은 어떤 것이었다고 생각했나.
=학창 시절, 친구가 선망의 대상이 되고 사소한 행동마저 따라 하고 싶은 시기가 있지 않나. 그러다가 자아가 자리 잡으면서 각자 취향을 발견해가고 말이다. 범석은 시은과 수호를 보면서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처음에 그들에게 끌리고 친해지고 싶었을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내 생각보다 상대의 감정을 신경 쓰는 심리가 있지 않나. 자아가 정립되기 전에는 이런 경향이 훨씬 강한 것 같다. 호오가 불분명하고 매 순간 자기 주관이 뚜렷하지 않은 범석은 시은과 수호의 반응을 무척 의식한다. 이런 지점을 염두에 두고 초반부를 연기했다.
-범석은 무척 복잡다단한 변화를 보여주는 캐릭터로 알려져 있다. 그가 보여줄 다양한 스펙트럼의 행동과 감정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것이 배우에게 주어진 과제다.
=대본에 다 나와 있다고 생각했다. 작은 것도 크게 받아들일 수 있는 예민한 시기, 범석이 그런 일을 하게 된 계기가 충분히 설명되어 있었다. 원래 사람은 한 가지 모습만 갖고 끝까지 누군가를 대하지 않는다. 범석이 보여주는 다양한 행동과 감정도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범석뿐만 아니라 모든 캐릭터가 후반으로 갈수록 처음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초반부와는 또 다른 에너지가 시은, 수호, 범석의 관계 안에서 펼쳐진다. 각자에게 크고 작은 변화들이 있을 것이다.
-박지훈과 최현욱, 홍경 세 배우가 그간 밟아온 길이 너무 달라서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아이돌 출신 배우 박지훈, TV 드라마로 인지도를 쌓은 최현욱과 달리 영화 중심으로 필모그래피를 쌓았고 그중엔 독립영화도 있다.
=셋 다 너무 다른 방식으로 연기한다는 이야기를 스태프들이 많이 했고 우리끼리도 느꼈다. 이 친구가 어떻게 반응할지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마치 캐치볼을 하는 것처럼 상대의 대사를 잘 듣고 반응해야 했다. 어디로 튈지 예측할 수 없는 쪽이 더 재밌고 신선하지 않나. 예상되지 않는 액션과 리액션이 부딪칠 때 오히려 충동적인 에너지가 나올 수 있다. 서로 어떻게 연기할지도 사전에 얘기하며 조율하지 않았다. 각자 생각한 대로 준비한 뒤 신 안에서 만났을 때 나오는 결과를 봤다. 테이크마다 다른 합이 나오는 게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최근 TV 드라마나 영화 가운데 젊은 신인 배우들이 중심에서 이끄는 작품이 많지 않았다. 그러다 OTT 플랫폼들이 다양한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면서 <약한영웅 Class 1>처럼 10대 주인공을 내세운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배우들에게도 고무적인 기회가 됐을 것이다.
=10~20대를 다룬 작품이 지금보다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춘의 밝은 면만 조명하기보다는 <죄 많은 소녀>나 <파수꾼>처럼 우리가 다소 외면하고 싶었던 부분까지 다루는 작품들이 다양하게 나와야 사회가 건강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10대 이야기는 10대가, 20대 이야기는 20대가 제일 잘할 수밖에 없다. 실제 그 시간을 살고 있는 장본인이니까. 젊은 사람들이 만드는 청춘 이야기를 더 많이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