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부산국제영화제]
#BIFF 5호 [인터뷰] ‘약한영웅 Class 1’ 박지훈 , 얼굴로 연기하기
2022-10-10
글 : 조현나
사진 : 최성열
<약한영웅 Class 1> 배우 박지훈 인터뷰

박지훈을 여전히 “내 마음속의 저장~!”을 외치던 모습으로만 기억한다면, 이제 그 위에 새로운 레이어를 덧댈 차례다. 웨이브 오지리널 시리즈 <약한영웅 Class 1>의 주인공 시은(박지훈)은 전교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는 수재다. 공부 외엔 아무것도 없던 시은의 삶에 수호(최현욱)와 범석(홍경)이 스며들면서 상황은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간다. 생기 없는 저음에 어두운 표정. 싸울 때만큼은 눈에 이채가 어리는 시은을 통해 박지훈은 배우로서 한 단계 성장했음을 영리하게 증명해냈다.

- <약한영웅 Class 1>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어 출연을 결심했나.

= 상위 1%의 모범생이라 하면 부모님께 효도하고 공부만 열심히 하는 인물일 거란 고정관념이 있는데 시은이는 공부만 잘하는 게 아니라 좋은 머리를 이용해 싸움도 잘한다. 그렇게 정글과 다름없는 남고에서 살아남았다는 게 신선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 장르가 다르긴 해도 드라마 <연애혁명>도 있었고, 학원물이 처음은 아니다. 학생 역할에 다시 도전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

= 그렇진 않았다. 또 해도 괜찮을까, 교복이 잘 어울릴까에 대한 걱정을 할 시간에 시은이에 대해 공부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다만 시은이가 웹툰의 주인공이다 보니 어떻게 해도 외형을 100% 완벽하게 구현할 순 없을 것 같아서 원작 팬들이 어떻게 보실지 걱정되긴 했다.

-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부터 <연애혁명> <멀리서 보면 푸른 봄> <약한영웅 Class 1>까지 원작이 있는 작품에 주로 출연해왔다. 이럴 경우 원작을 충실히 읽고 반영하는 편인가.

= 원작을 그렇게 자세히 들여다보진 않는다. 웹툰과 드라마의 결이 다르다 보니까 원작은 기본적인 틀 정도만 참고하고 드라마 텍스트를 더 깊게 들여다보는 편이다.

- 들여다보니 시은은 어떤 인물이던가.

= 굉장히 성숙한 친구. 과시하는 걸 싫어하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은 묵묵히 확실하게 해내는 친구. 무뚝뚝하면서도 귀여운 면이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 시은이를 보면 친구들을 일부러 멀리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벽을 치고 절대 곁을 주지 않는 달까.

= 감독님과 시은이란 캐릭터를 구축할 때 서로 나눈 말은 어린 시절부터 그런 벽이 이미 견고하게 형성된 친구라는 것이었다. 하굣길에 범석이 어느 학원 다니냐고, 자기도 그 학원으로 가고 싶다고 말하자 순식간에 시은이의 눈빛이 귀찮다는 식으로 변한다. ‘나한테 왜 질척대지, 서로 갈 길 가면 되는데’라는 마음이 그런 사소한 데에서까지 드러나는 거다. 시은이는 자기가 굳이 다가가지 않고, 그만큼 남도 자신에게 다가오길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맨날 에어팟을 끼고 혼자 공부만 하며 살아온 거다. 하지만 8부까지 촬영을 끝내고 나선 어쩌면 은연 중 시은이도 친구가 있다면 좋겠다고 바라지 않았을까 싶었다.

- 시은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필사적으로 한다. 그렇게까지 공부에 매진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봤나.

= 사실 공부를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상장을 받았을 때 표정을 보면 그렇게 기뻐하지도 않는다. 내가 내린 결론은 부모님의 사이가 안 좋아지면서 시은이가 의지할 곳은 공부가 유일했다는 거다. 또 공부할 때만큼은 아무도 자기를 신경 쓰지 않고 방 안에 혼자 있어도 되니 너무 편했을 거다. 거기에 익숙해져서 공부는 시은에게 그냥 일상이 된 거라고 받아들였다.

- 캐릭터엔 어떤 식으로 접근하나. 나와 비슷한 점, 다른 점부터 탐구해나가는 편인가.

= 그렇다. 한 번은 방구석에 틀어박힌 채 하루를 살아봤다. 뭐가 그렇게 답답한지, 뭐가 나랑 다른지를 체크해보려는 심산이었다. 또 시은이의 일상은 공부가 전부인데 난 춤추고 노래하던 사람이라 펜을 잡고 연기하려니 너무 어색하더라.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 공부하는지 좀 보려고 집 주변의 스터디카페를 간 적이 있다. 자리를 잡고 음료를 주문하려는데 아르바이트생이 날 알아봤다. 그래서 결국 조금만 앉아있다 나올 수밖에 없었다. 보기와 달리 실제론 애교가 많지 않아서 성격 면에선 시은이와 비슷한 점이 많다. 그런데 몸 쓰는 건 다르다. 어릴 때 복싱을 한 적이 있는데 난 그렇게 분석해가며 움직이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런 차이점들도 눈여겨봤다.

- 작품을 준비할 때 참고한 작품도 있나.

= 말하기 너무 민망한데… 시은이와 비슷한 느낌을 지닌 캐릭터라고 생각해서 엄청 몰입해 본 작품이 있다. (부끄러워하며) 원빈 선배님이 출연하신 <아저씨>다. 얼굴은 절대 따라할 수 없지만 선배님의 눈은 굉장히 집중해서 봤다. 화난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무표정에 침착하면서도 살기가 느껴지는 모습이 시은이와 너무 비슷한 것 같았다. 그래서 여러 번 반복해 보면서 그 눈을 열심히 연구했다.

- 시은의 눈빛이 가장 크게 변화하는 순간은 모의고사 날 아닌가. 자신을 괴롭히고 결국 한 문제를 틀리게 만든 영빈을 무섭게 때리는데, 그런 표정을 지을 줄도 아는구나 싶게 섬뜩했다.

= 영빈이 때문에 한 문제를 틀렸을 때, 그게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고민을 해봤다. 나는 게임하는 걸 정말 좋아하는데 가끔 나도 모르게 자만할 때가 있다. 잘하는 게임을 플레이할 때 뜻대로 안 풀리면 ‘더 잘할 수 있는데 왜 이렇게밖에 못했지?’ 싶어 화가 난다. 물론 게임과 공부는 다르지만, 그렇게 대입해보니 시은이의 감정이 이해가 갔다. 나는 전교 1등과 100점이 당연한 학생인데 얘 때문에 한 문제를 틀려서 상위 1%를 포기하게 된다? 당연히 엄청 화가 났겠지. 그런 식으로 일단 시은이의 감정에 접근을 했고 싸울 때는 거의 ‘너는 죽었다’는 마음으로 임했다. 실제 시나리오에 ‘기선제압을 해야 한다’는 대사가 있다. 그걸 토대로 애매하게 때리는 게 아니라 정말 확실하게 타격해야한다는 마음으로, 1년은 족히 읽어야 할 것 같은 두꺼운 책의 가장 아픈 타점으로 영빈이를 올려쳤다. 안전장치는 다 돼있어도 상대가 직접 맞는 게 보여야 하는 장면이어서 한 번에 끝내자는 마음으로 이 악물고 임했다.

- 자신을 말리는 수호에게 시은은 곧바로 의자까지 던져가며 화를 낸다. 물불 안 가리고 싸우는 장면이라 촬영 과정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 정말 신기한 게 컷하고 나서부터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상대가 다치지 않을 것을 알고 있고 액션 합은 이미 몸에 익은 상태니까 볼펜도 풀 파워로 던지고 의자도 던지고 있는 대로 화를 냈다. 감정적으로 몰입하다보니 진짜 아무 생각이 안 나더라. 그때 감독님도 컷 하고 “어우, 무서워!”라고 하셨다. 그때만큼은 완전히 시은이가 됐던 것 같다.

- 이렇게 과격한 액션은 처음 아닌가. 무대 위에서 몸 쓰는 것과는 또 달랐을 것 같은데.

= 안무 습득력이 빠른 편인데 그래서인지 액션할 때 합도 잘 외우는 편이었다. 감사하게 생각하며 열심히 했다.

- 영화제에서 공개된 3화까지의 내용 중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신을 하나 꼽아준다면.

= 대본을 봤을 때부터 최애였던 장면이 있다. 시은이가 아침에 등교할 때 수호가 항상 뒷자리에서 자고 있지 않나. 처음엔 아랑곳 않고 교실 불을 켠다. 그런데 수호랑 친해지고 나서부턴 절대 불을 켜지 않는다. 친구를 별로 사귀고 싶지 않아했으면서 왜 수호를 신경써줄까. 왜 수호를 생각할까. 지금도 가끔 생각하는 장면이다.

- 듣다보니 시은의 이면을 눈여겨봤던 것 같다. 무뚝뚝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고, 친구를 별로 사귀고 싶어하지 않지만 은연 중 그런 관계를 바랐던 점들 말이다.

= 시은이의 생각을 관객들에게 잘 전하고 싶었다. 시은이의 감정들, 작은 변화 같은 게 대사 없이도 느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준희 감독님도 내게 “남들이 말로 표현할 때 너는 얼굴로 표현을 해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대사 외의 표현 방법들에 관한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평소에 잘 쓰는 표정은 뭐고 잘할 수 있는 표정은 뭔지, 화났을 땐 어떤 표정을 짓는지부터 차근차근 살펴봤다. 거기에서 시작해 시은이다운 것들을 가려내고 살을 붙이는 식으로 준비했다.

- 감독에게 들은 칭찬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

= 감독님과 같이 카메라로 모니터링을 할 때였다. 정확히 어떤 신인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갑자기 “아, 진짜 잘생겼다!”라고 외치는 거다. (일동 웃음) 그게 진짜 누구 들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속에서 우러나온 말이라는 게 느껴져서 깜짝 놀랐고 엄청 감사했다. 그리고 눈에 관한 칭찬도 많이 해주셨다. 정말 빠져드는 눈이라고, 홍경 형도 “네 눈을 보면 다 이해가 된다”고 말해줬었다.

- <약한영웅 Class 1>은 대중들이 배우 박지훈에게서 완전히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 될 것 같다. 본인은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얻었다고 생각하나.

= 내가 아주 남성적인 얼굴은 아니지 않나. 그리고 “내 마음 속에 저장~!” 때문에 나를 귀엽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그 밖의 이면이 있는 사람이란 걸 보여드리고 싶었다. <약한영웅 Class 1>은 그런 이미지 쇄신의 기회이자 터닝 포인트라고 생각하고 정말 열심히 찍었다. 앞으로도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 다른 인터뷰에서도 보니 항상 다양한 이미지를 선보이길 바라는 것 같다. 머리색을 바꾼 건 공개를 앞둔 새 미니앨범 <디 앤서>의 콘셉트 때문인가.

=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건 맞다. 그런데 염색은 콘셉트 준비보다 먼저 했다. 이상하게 작품 하나 끝나면 꼭 염색을 하고 싶어지더라. 검은 머리를 너무 오래해서 그런가. (웃음) 다른 작품이 끝났을 때도 염색부터 했다.

- <연애혁명>으로 <씨네21>과 인터뷰했을 때 어두운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약한영웅 Class 1>으로 어느 정도 충족이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어떤가. 다음엔 어떤 역할에 도전해보고 싶나.

= 시은이는 내가 하고 싶었던 캐릭터의 모습에 제일 부합한다. 어둡긴 하지만 나쁜 역할은 아니고, 제목처럼 히어로다운 면모가 있다. 액션 연기도 해보고 싶던 차에 시은이 같은 캐릭터가 내게 와줘서 너무 감사했다. 시은이를 생각하면 뭉클할 정도로 애정을 느낀다. 해보고 싶은 역할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기회가 된다면 시은이 같은 캐릭터를 또 한 번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