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의 주된 정체성은 아시아 영화인, 창작자들 간의 교류와 성장에 있다. 10월8일 영화의전당 야외무대에서 열린 아시아콘텐츠어워즈(이하 ACA)는 그러한 목표에 더없이 어울리는 축제였다. 올해 아시아 전역에서 두각을 보인 콘텐츠 창작자와 배우들이 한데 모여 섞이는 모습은 팬데믹으로 가라앉았던 부산국제영화제의 활력이 살아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ACA에서 라이징스타상을 받은 배우 링만룽, <인 긱 위 트러스트>로 조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 잠가기, <페어런츠 리그>로 작가상 후보에 오른 베니 라우 감독 겸 각본가까지, 홍콩에서 온 세 사람은 ACA에 참여한 들뜬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 부산국제영화제 ACA에 참여한 소감은?
링만룽 | 이번에 처음 한국에 왔다. 길거리를 지나가는데 <사랑의 불시착>에서 봤던 한국의 모습 그대로라서 정말 놀랐다. (웃음) 게다가 라이징스타상까지 받게 됐으니 앞으로의 배우 생활에도 정말 큰 응원을 받은 느낌이다. 한국, 나아가서는 아시아와 세계까지 활동 범위를 키우고 싶게끔 만들어줬다.
베니 라우 | 부산국제영화제와는 연이 깊다. 2008년에 <미스터 라이트>라는 단편영화를 와이드앵글 섹션에서 상영한 적이 있어 늘 고마운 마음이 있었다. 오랜만에 다시 부산을 찾게 돼 더욱더 기쁘다.
잠가기 | 아시아의 훌륭한 배우, 감독, 제작자들과 얼굴을 맞댄다는 것만으로도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것이다. 예전에 주성치가 더빙했던 <반칙왕>을 보면서 처음 송강호 배우를 알았고, 지금까지 차태현과 함께 가장 좋아하는 한국 배우가 송강호인데 어제 부산에서 그를 직접 만날 수 있었다. 너무 기쁜 경험이었다.
링만룽 | 송강호 배우와 같이 사진도 찍었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웃음)
- 이번 ACA에 <인 긱 위 트러스트>, <페어런츠 리그>라는 작품으로 후보에 올랐다. 작품과 배역을 소개해 준다면.
베니 라우 | <페어런츠 리그>는 유치원을 배경으로 아이들과 그 부모들이 겪는 일을 그린다. 아이를 아주 엄격하게 키우는 부모들과 자유롭게 풀어 놓는 부모들이 싸우고 화해하는 과정을 통해서 누구나 공감할 부모와 아이 간의 사랑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실제로 어린 딸 2명을 키우고 있고 여자 주인공을 맡은 배우도 딸아이를 키우고 있어서 거의 자전적인 서사가 된 느낌이다. (웃음) 홍콩의 영화 시장이 한동안 좋지 않았기에 영화로는 제작하지 못했고, 드라마로 잠시 눈을 돌리게 됐다. 그런데 드라마도 2달에 54일을 촬영하고, 촬영 시간도 길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더라.
링만룽 | <인 긱 위 트러스트>는 홍콩에서는 흔치 않은 미국 시트콤 형식의 작품이고, 여기서 IT 사업가이자 사회성이 부족한 주인공을 맡았다. 홍콩의 젊은이들이 겪는 일상을 코믹하게 그린 시트콤이다.
잠가기 | <인 긱 위 트러스트>에서 링만룽과 반대되는 성격의 인물을 연기했다. 굉장히 세속적이어서 링만룽과 늘 다투지만 결국엔 서로의 결점을 보완해 가면서 화해하는 역할이다. 또 베니 라우 감독의 <페어런츠 리그>에도 출연했는데, 유치원생들이 주인공인 아기자기한 드라마에서 유일한 악역으로 등장했다. (웃음)
- ACA를 발판으로 한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 있다면?
베니 라우 | 물론 ACA에 참여할 수 있어 영광이었지만 작품을 기획하는 단계에서부터 해외 시장을 직접적으로 노리지는 않으려 한다. 먼 미래를 먼저 신경 쓰기보다는 내가 잘 쓸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부터 고민하려는 편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올해 인상적으로 봤던 한국 작품 <우리들의 블루스>나 <비상선언>, 아직도 내 창작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연애 소설>처럼 언어와 문화권의 한계를 넘어서 세계에 통용되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링만룽 | 어떤 배역을 꼭 맡고 싶다기 보다 좋은 작품 안에 잘 스며들고 싶다. 작품의 메시지를 잘 전달하고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꿈이다. 이번에도 그런 마음으로 <인 긱 위 트러스트>에 참여했다. 사실 홍콩에서 인지도가 그렇게 높지도 않고 특출난 외모도 아닌 내가 ACA에서 라이징스타상을 수상하게 됐으니 앞으로도 이렇게 연기하면서 세계로 차차 나가고 싶다. 그리고 또다시 말하지만 어제 만난 송강호 배우의 엄청난 팬이고 다음에 꼭 작품을 같이 하고 싶다. (웃음)
잠가기 | 단편영화를 몇 편 연출하기도 했고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사랑을 전하는 자전적 영화를 꼭 만들고 싶은 인생의 목표도 있다. 하지만 ACA에서 배우로서의 나를 알아봐 줬으니 한동안은 배우 활동에 전념하고 싶다. 그렇게 연기 실력이 늘고 작품 공부도 하고 여러 경험도 쌓다 보면 다시 영화 연출에 도전하게 될 것 같다.
- 한국 관객, 독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베니 라우 | 곧 공개될 차기작은 한국 남자와 홍콩 여자가 20년간 한국과 홍콩을 이어주던 케이팝 문화를 매개로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만약 한국에서 개봉하게 된다면 꼭 큰 관심 가져주길 바란다.
링만룽 | 최근 홍콩의 영화, 드라마계는 우리처럼 젊고 새로운 창작자와 배우들로 세대 교체되고 있다. 그러니 앞으로도 이번 ACA의 사례를 시작으로 홍콩과 한국이 계속 우호적인 교류와 합작을 이어가면 좋겠다.
잠가기 | 최근 한국 영화, 드라마, 예능은 세계에까지 이름을 높이고 있다. 듣기로는 한국의 정부도 이런 콘텐츠 산업에 많은 지원을 해준다고 들었다. 그러니 기회가 된다면 한국 작품에도 꼭 참여하고 싶다. 또 홍콩에 <런닝맨>처럼 큰 규모의 예능 프로그램이 생기면 좋겠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