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부산국제영화제]
#BIFF 8호 [인터뷰] '한 남자'이시카와 케이 감독, "모든 순간이 진실일 수도 있다"
2022-10-14
글 : 송경원
사진 : 최성열
<한 남자> 이시카와 케이 감독 인터뷰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히라노 게이치로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한 남자>는 과거를 지운 남자가 급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남겨진 이들의 그의 정체를 밝혀 나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하지만 이것은 미스터리를 밝히는 수사극이 아니다. 영화는 오히려 또 다른 정체성의 갈등을 겪고 있는 재일교포 변호사 키도(츠마부키 사토시)의 고뇌에 집중한다. 타인의 상황을 통해 일상이란 핑계에 무뎌진 질문을 마주한 끝에 영화는 다시금 우리에게 질문을 돌린다. 장편 데뷔작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2016)으로 베니스영화제 오리종티에 초청된 이후 꾸준히 본인만의 색을 선보인 이시카와 케이 감독은 또 한 번 자신을 증명했다.

- 히라노 게이치로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 히라노 게이치로 작가의 소설은 늘 좋았지만 근래 정체성에 관한 작품들이 눈에 띈다. 깊이 있는 만큼 다소 어렵다는 평도 있는데 최근에는 장르적인 구성이 더해지면서 쉽게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을 자주 쓰신다. <한 남자>도 그런 측면에서 눈길이 갔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사랑이란 무엇인가.’ 살면서 가장 자주하게 될 질문을 미스터리한 구성으로 담아낸 작품을 보며 이건 충분히 깊이 있는 이야기를 펼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 원작 소설과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 기본적으로는 원작에 충실한 가운데 키도(츠마부키 사토시)에 좀 더 무게를 싣고자 했다. 소설은 리에(안도 사쿠라)와 아들 유토의 사연으로 마무리 된다. 키도는 어찌보면면 이야기를 듣는 역할인데, 반대로 그런 키도이기 때문에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더 깊숙하게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엔딩은 소설과 다른 방식으로 끝맺는다. 내가 누구인지, 정체성을 찾는 여정의 중심에 있는 키도를 놓고, 그의 이야기로 마무리를 짓기 위해 고심한 엔딩이다.

-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 르네 마그리트의 <금지된 재현>를 보여준다. 한 남자가 거울을 보는데 자신의 얼굴이 아니라 뒷통수가 보이는 그림은 이 영화를 고스란히 상징한다.

= 소설에도 언급되는 그림이다. <한 남자>는 키도가 다이스케의 과거를 쫓고, 관객은 키도의 과거를 상상하는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를 대표할 수 있는 이미지라고 생각해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 배치했다. 간혹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인 것처럼 할 때가 있지 않나. 누구나 일상 속에서 한번쯤 경험했을 그런 감각을 이번 영화를 통해 공유할 수 있길 바랐다. 영화는 X로 명명된 한 남자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준다. 여러 각도에서 관찰된 한 인물의 조각을 맞춰가는 구성이라고 해도 좋겠다. 공간적으로도 여러 각도에서 촬영해 다양한 시점을 표현하려 했다. 누군가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정돈하는 게 아니라 어떤 순간을 잘라서 보여준다는 점이 중요하다. 부분의 합이 전체가 되지 않길 바랐다. 과거를 숨기고 신분을 바꾸었다고 본질도 바뀌는 건 아니다. 모든 순간이 진실일 수도 있다.

- 안도 사쿠라, 구보타 마사타카, 츠마부키 사토시 세 배우가 출현하는 것만으로 이미 작품의 톤이 잡힌다. 캐스팅 과정이 궁금하다.

= 츠마부키 사토시 배우는 벌써 세 번이나 함께 했다. 일이 아니더라고 자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관계다. 이번에도 캐스팅 제안 훨씬 이전부터, 각본이 완성되기도 전에 키도라는 인물에 대해 어떻게 그리면 좋을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같이 만들어나갔다. 함께 해주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배우다. 안도 사쿠라 배우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훌륭한 배우다. 일본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이렇게 표현력이 뛰어난 배우는 찾아보기 힘들 거라고 생각한다. 리에는 작품 전반에 등장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작품의 톤을 잡아주는 역할이다. 특히 초반 30분은 리에의 시점으로 진행되는데 안도 사쿠라 배우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이스케(구보타 마사타카)의 경우 반대로 순간순간 번뜩이는 예리함이 필요한 배역이었다. 구보다 마사타카 배우는 데뷔 초기 마치 흉기를 품은 것 같은 연기를 보여준 걸 기억한다. 최근에는 TV드라마를 통해 부드러운 이미지를 많이 선보였지만 다시 한번 예전 같은 날선 에너지를 보여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안했다. 세 명의 주연배우 외에도 일본 명배우 쇼케이스라고 해도 좋을 많큼 정말 좋은 배우들이 많이 나온다. 그들의 사실적인 연기를 감상한 끝에 자신을 돌아보는 작은 선물 같은 시간을 안고 돌아갈 수 있길 바란다.

- 초반 30분은 리에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아들과 아버지를 잃은 여성의 상실감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줄 수 있는데, 안도 사쿠라가 눈물 흘리는 순간을 롱테이크로 담는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뒤의 내용을 보지 않아도 ‘이 영화를 좋아할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감사하다. 소설에는 리에가 아이를 잃고 어떻게 아버지의 문구방을 이어받아 살고 있는지 사연이 자세하게 묘사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렇게 많은 분량을 할애할 수 없기에 축약할 수 밖에 없었고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을 선택했다. 배우에게 큰 부담이 준 셈인데 안도 사쿠라였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접근이었다고 생각한다. 다큐멘터리 연출 경험 때문인지 상황을 설명하는 것보다 상황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픽션의 경우 각본을 쓸 때 상황설명이 길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내 경우엔 다큐멘터리처럼 상황의 공기, 리액션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걸로 충분하다고 느껴진다. 사건을 펼쳐놓고 스토리를 설명하는 것보다는 신문기사를 읽는 감각이라고 할까. 몇 줄의 기사를 읽으면서도 행간에서 다양한 감정을 읽을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때문에 좀 더 친절하게 설명해달라는 프로듀서와 종종 부딪친다.(웃음) 영화는 공감의 미디어다. 설명 없이도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최대한으로 넓히고 싶다.

- 공감이란 말이 정확한 것 같다. 신원을 바꾼 남자의 과거를 쫓는다는 설정은 익숙하지만 이 영화는 남자의 비밀을 캐내는데 집착하지 않는다.

= 신분을 바꾸어 살아야만 했던 남자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키도는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되돌아본다. 이 부분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조심했다. 마찬가지로 되도록 설명보다는 쌓여가는 순간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예를 들면 공항에서 키도의 전신을 스캔하듯 빛이 실루엣을 만들어내는 장면이라던지 긴 터널을 홀로 걸어가는 장면 등 키도 주변을 이루고 있는 순간들이 쌓이다 보면 어떤 윤곽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소소한 순간들이 결국 중첩되어 마지막 엔딩으로 이어진다.

- 키도는 재일교포다. 때문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개인적인 질문은 사회, 정치적인 의미로 확장된다.

= 일본영화가 재일교포를 다루는 방식은 두 가지다. 첫째는 이를 사회 문제로 포착하여 호소하는 영화다. 다른 하나는 이들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전혀 다루지 않는 영화다. 이번에 작업하면서 민감한 문제는 굳이 넣지 말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거야말로 대중영화에서 피해선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재일교포는 일본사회 어디에나 존재한다. 재일교포임을 밝히는 건 우리가 고향을 숨기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지만 때로 그들은 투명인간처럼 삭제될 때가 있다. 그런 부자연스러운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정치적인 메시지로 강하게 끌고 가는 것도 바라지 않았다. 당연한 걸 당연하게 말하면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고 싶었다.

- 만약 다이스케가 누구인지 묻는다면 초반 30분 리에와 행복하게 살았던 순간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신분을 위장했다고 해서 있었던 일들이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감독님은 ‘이게 나다’라고 설명할 수 있는 순간이 있나.

= 아마도 그것이 내가 계속 영화를 만드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실제 나의 삶 속에서 ‘이것이 나’라고 느끼는 순간은 많지 않다. 그런데 묘하게도 영화를 만들고 있을 때, 내가 만든 영화 속의 내용을 볼 때 거기서 오히려 리얼함을 느낄 때가 적지 않다. <한 남자>를 만들면서 특히 그런 생각을 자주 했다. 이 영화 곳곳에 ‘내’가 묻어있다. 관객들도 부디 스크린이란 거울을 통해 자신을 마주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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