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인터뷰] ‘욘더’ 이준익 감독, “불멸은 과연 아름다운가”
2022-10-19
글 : 김수영
사진 : 오계옥

기억으로 구성된 가상 세계에서 재회하는 부부의 이야기 <욘더>를 두고 이준익 감독은 “한편으론 지독한 이기주의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자신의 기억을 ‘욘더’에 저장하고 떠난 아내의 선택이 이기적이지 않으냐는 거다. “하지만 그 선택이 자신에게는 진심이었던 거다. 나쁜 마음으로 재현을 욘더로 불러들인 게 아니라 정말 그의 진심이었다. 그래서 <욘더>는 자신의 진심을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나와 당신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욘더의 세계관과 인물들의 행동은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고 오늘의 관객에게 계속 묻는다. 이준익 감독이 삶과 죽음을 마주 보고 빚어낸 질문들이 인물의 대사에 고스란히 담겼다.

-<동주>의 일제강점기, <사도> <자산어보>의 조선 시대를 거쳐 이번에는 미래로 갔다.

=영화가 끝나면 그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다. 옆집으로 가면 자꾸 옆에서 지나간 걸 들춰보게 된다. 사극을 찍을 수 있는 물리적 장소는 한정되어 있어서 같은 장소에서 인물과 제목만 바꿔서 찍고 있는 기분이 든다. <사도>는 250년 전 이야기이고 <자산어보>는 200년 전 이야기이기에 유사하잖나. 첫째로는 자기 반복을 하지 않으려고, 둘째로는 자기 반복을 하지 않으려는 과도한 의지 때문에 도랑에 빠지거나 발목 잡힌 경험이 있어서 요만큼도 관련 없는 쪽으로 가려고 한다. 멀리 가려고 <욘더>로 왔는데 이거 끝나면 앞이나 뒤로 더 멀리 갈 거다.

-10년 전에는 완성하지 못한 이야기였다. 어떠한 변화가 완성하게 했나.

=50대 때만 해도 죽음은 개념적이고 추상적이었지만 60대가 되니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가까운 친지들을 뵙고 나면 20년, 30년 후 내 모습이 너무 현실로 다가와서 삶의 시간들이 금쪽같이 느껴졌다. 삶에서 선택이 더 분명해졌다.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만큼 삶을 제대로 인식하는 방법도 없더라. 10년 전 시나리오에는 사이보그가 나오고 차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미래 풍경이 있었다. 할리우드영화에 익숙하다보니 미국 SF의 스펙터클을 상투적으로 떠올린 거다. 과감하게 시나리오를 접고 인간의 내면과 심리 중심으로 이야기를 다시 썼다. 원작의 큰 설정은 그대로지만 주인공 재현(신하균)의 1인칭 심리극을 가운데 놓고 주변 인물과 상황을 많이 쳐냈다.

-욘더라는 가상 세계를 이미지로 구현하는 데 메타버스 개념이 도움이 되지 않았나. 오픈월드 게임이 연상되기도 했다.

=10년 전만 해도 욘더의 개념을 설명하는 게 불가능했다.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이야?” “전설의 고향이야?” 하는 질문이 되돌아왔다. 저장된 이미지들로 구현된 유니버스라고 설명하면 이제 사람들이 쉽게 메타버스 공간을 연상한다. 편해졌다. 하지만 그보다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르크 개념처럼 현대인이 이전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이미지로 인식한다는 점을 염두에 뒀다. 요즘 사람들은 실물보다 모니터나 디바이스를 훨씬 많이 본다. 시각정보는 가공된 것이고 실제가 아닌 이미지들이잖나. 인간 뇌에 저장된 가공의 이미지들도 일종의 기억인 셈이다. 구글 같은 선도적인 디지털 기업은 이미 인간 기억이나 뇌를 연구하고 있다는데 이런 게 안드로이드나 휴머노이드의 베이스가 되지 않을까 싶다.

-원작 소설 <굿바이, 욘더>에 담긴 질문 중에 무엇이 가장 흥미로웠다.

=불멸에 관한 질문이다. 나중에 닥터K의 대사만 모아서 보면 알 수 있다. 지난 수천년 동안 인간은 죽어서 천국에 간다고 생각해왔는데 천국은 종교가 발명해낸 개념이다. <욘더>에서는 종교적 발명품을 과학이 대신한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의학은 인간의 수명을 연장했고 과학은 죽은 자의 기억과 산 자를 만날 수 있게 했다. 구글의 로레타(Loretta) 광고만 봐도 그렇다. 백발의 할아버지가 구글 어시스턴트 기술을 활용해 세상을 떠난 아내의 사진과 생전의 말들을 되새기는 내용이 담겨 있다. 관혼상제에서 제례에 해당하는 삶의 종점마저도 기업의 디지털 미래 먹거리가 된 셈이다. (웃음) 불멸은 아름다운 것일까? 모든 자연은 소멸을 통해서 생성된다. 나는 진정한 행복이 불멸이 아니라 소멸에, 기억이 아니라 망각에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불행은 소멸되지 않으려고 한다는 데서 온다.

-누구나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있지 않나. 감독님이 오랫동안 붙들고 있는 기억은 무엇인가.

=나는 모든 기억을 지우려고 노력한다. 영화를 한편 찍고 나면 머리를 텅 비운다. 15편의 영화를 찍었는데 다 기억하고 저장하려고 하면 어떻게 되겠나? 4TB짜리 뇌에 16TB를 넣으려는 꼴이다. 감각만 남기고 기억은 빨리빨리 지운다. 기억의 회로가 정교한 사람은 현상에 집중하지 못하고 기억의 의지에 집중한다.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보고 싶은 대로 본다. 저건 나쁜 거야, 잘못된 거야. 자기 기억의 감옥에서 요만한 창문으로 보는 세상이다. 그래서 나는 기억의 감옥을 해체하고 무의식을 확장하려고 노력한다. 이건 세상과 타인을 보는 관점을 바꾸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그러면 온 세상에 슈퍼마리오 아이템처럼 흥미로운 게 널려 있다. 이야기가 차고 넘친다.

-그럼 감독님은 욘더에 가지 않으시겠다.

=가지. 남의 기억이 궁금하니까. 100번 가지. (웃음) 거기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얼마나 많겠나.

-욘더를 처음 경험한 재현은 세이렌에게 “사람 약점 건드려서 장사한다”고 일갈한다. 사실 마음을 흔드는 광고나 이야기들은 죄다 우리의 약점이나 결핍을 자극하는 것들이다. 감독님은 무엇에 마음이 흔들리나.

=나는 실패자의 안타까움을 소중하게 여긴다. 이제껏 무용담을 영화로 만든 적이 없다. <라디오 스타>의 안성기, 박중훈이 성공했나? <왕의 남자>에서 장생과 공길도 올라갔다 떨어졌다. 죄다 비극이고 환희에 찬 결말이 없다. 윤동주, 송몽규도 안타깝고 창대도 안타깝지. 그렇다고 비굴하진 않아. 나는 안타까움을 사랑하는 시선으로 본다. 안타까움을 당한 사람들의 가치를 높이 친다. 이런 이야기에 흔들린다. 무수히 흔들리지만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을 뿐이다. 이야기를 다 하고 나면 비우고 다음으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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