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이번주 원고를 써야겠다’ 다짐하며 키보드 위에 손을 얹자마자 후회가 몰려왔다. 내가 대체 왜 지난번 칼럼을 이어서 연재하겠다는 약속을 한 거지? 그때 화가 좀 많이 쌓였었나? 두렵다. <씨네21>을 애독하는 일백만 스필버그 기 살리기 협회원들이 이 글을 읽고 분노해 내 얼굴 사진을 붙인 허수아비를 ‘용아맥’(CGV용산아이파크몰 아이맥스관)앞 광장에서 불사르기라도 하면 어쩐단 말인가. 안 그래도 요즘 그 동네 분위기 많이 어수선한데. 살짝 변명을 깔고 들어가자면, 스필버그에게 딱히 악감정은 없다. 내 인생 첫 극장 관람 영화는 <쥬라기 공원>이고,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도 명절마다 두근거리며 즐겼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결말이 좀 그랬지만 앞 부분은 무척 재미있게 보았다.
<레디 플레이어 원>이 못 만든 영화라는 뜻은 아니다. 재미도 있고 기술적으로야 당연히 훌륭하겠지, 스필버그인데. 하지만 이 영화는 ‘존중’에 대한 영화란 말이다. 덕질에 대한, 서브컬처에 대한, 자신만의 세계에 몰입해 살아가는 수많은 취미인들에게 존중을 바치는 이야기. 하지만 <레디 플레이어 원>의 어느 구석에서도 그런 존중의 시선은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컨테이너 빈민가에 모여 사는 사람들이 가상 세계 ‘오아시스’에 접속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들이 가상 세계에 접속하는 이유는 그곳에서 아이템을 획득해 판매하는 것만이 그들의 유일한 생계 대책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오아시스는 직업이다. 대개는 지루한 반복 노동일 것이다. 게임 노동자들의 삶이 대체로 그러하듯이. 하지만 영화는 가상 세계와 현실을 교차해 묘사하며 이들의 모습을 희화화한다. 마치 환각에 빠진 중독자처럼. 혹은 충동을 절제하지 못하는 아동으로. 주인공 소년을 때리는 이모의 애인과 폭력을 용인하는 이모의 모습은 청소년영화 속 전형적인 마약 중독자나 도박 중독자의 클리셰를 그대로 가져다 붙였다. 총기 난사 사건의 원인으로 게임을 지목하는 부류의 시선과 이 장면들이 무엇이 다른지. 작중에서 풀어야 할 이스터 에그의 난이도가 허탈할 정도로 쉽다거나(통상적으로 하이엔드 게이머들은 엄청나게 똑똑한 기인들이다), 무제한적인 PK를 허용하는 등의 기본 설정에서도 제작진의 게임 문화에 대한 무지가 느껴진다. 무지라기보단 무관심일지도. 사람을 죽이면 돈으로 바뀐다니. 이런 아이디어를 낸다는 것 자체가 비디오 게임에 대한 비뚤어진 편견이라 생각되진 않으신지? 나만 그렇게 느끼나? 게임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혹은 조금만 열심히 자료 조사를 했더라면 절대 이런 식의 설정은 하지 않을 것이다. <리니지>나 <WOW>(<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한달만 플레이해도 이게 뭐가 이상한지 금방 알 수 있단 말이다.
영화는 은연중에 현실이 가상 세계(취미 세계, 서브컬처 세계)의 상위 차원이라는 무의식적 편견을 기저에 두고 있기에, 주인공 파시벌이 방구석 오타쿠 할리데이의 흔적을 추적하며 그의 삶을 긍정하고 존중하는 스토리 라인과 끊임없이 괴리를 일으킨다. 이러한 모순이 낳은 가장 끔찍한 촌극은 여주인공 아르테미스와 관련한 장면에서 터진다. 아르테미스의 현실 모습인 사만다는 자신의 외모에 콤플렉스를 느껴 가상 세계에 몰두하는 인물이다. 외모 콤플렉스 설정도 구리지만, 어쨌든 소녀에겐 극복해야 할 서사가 주어졌다. 하지만 영화는 이 문제를 더 구린 방식으로 풀어낸다. 무려 주인공 소년에게 ‘확인’받는 방식으로. 도피처인 오아시스에서 벗어나 현실에 귀환하는 식으로. 저기요. 이 영화 2018년 개봉작이거든요? 주인공 커플이 “내 얼굴 보고 실망했니?” “얼굴에 흉터 있는 게 뭐 어때서? 나는 실망 안 했어.” 이 따위 대사를 치게 만드는 거, 이거 맞나요? 사만다는 자신의 외모에 대해 누구에게도 확인받을 필요가 없다. 받게 해서도 안되고. 역대급 제작비를 쏟아부었다는 IP들도 가치 없이 낭비된다. 게임, 영화, 애니메이션, 장난감 등 온갖 유명 캐릭터들의 향연도 그저 스쳐가는 카메오일 뿐. 개인적으로 이들의 등장에는 아무런 맥락도, 존중의 의미도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 ‘건담’이 등장하는 장면이 그랬다. 제작진은 <기동전사 건담>을 보긴 했을까? 건담은 길고 긴 일본 로봇애니메이션의 계보에서도 가장 그 장면에 어울리지 않는 로봇일 것이다. 결말에 이르러 영화는 주인공의 입을 빌려 결국 본심을 드러내고 만다. 일주일에 이틀은 가상 세계 말고 현실에도 좀 나가서 살라니. 어처구니없는 훈수에 나는 실소를 뱉고 말았다. 이 영화 첫 장면이 뭐였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오아시스에 접속하는 빈민가 사람들 아니었나? 하여튼 덕질도 좋아서 해야 덕질이지.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좋아하는 척 해봐야 곁에서 바라보는 사람만 고역이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