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가족이 된 세 사람이 제주4·3평화공원에 함께 방문한다. 어머니에겐 아픈 상처를, 감독과 아라이씨는 경험해보지 못한 역사의 한 부분을 정면으로 마주한 순간이다.
양영희 어머니는 계속 한국에 대한 불신이 있으셨다. 내게 4·3사건에 관해 이야기하실 때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 이야기하지 마라, 큰일 난다”며 여러 차례 당부하셨다. 내가 괜찮다고 하는데도 말이다. 조총련 사람들이 한국과 관련된 소식에 좀 느리긴 하다. 한국에 가본 적이 없으니 어머니도 민주화됐다는 말을 믿지 않으시다가 내가 한국을 오가는 모습을 보고 “나도 한번 가볼까” 하고 말씀하셨다. 제주4·3평화공원이 워낙 잘 조성돼 있고 곧 4·3사건 70주년이니 같이 가봐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2017년 11월에 제주4·3연구소 분들과 인터뷰를 했다. 3시간 동안 진행했는데 전문가시다 보니 어머니의 기억을 엄청 깊게 파고드시더라. 어머니가 너무 소모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정작 어머니는 엄청 후련해하셨다. 4·3사건에 관해 피하고 감추는 게 아니라 직접 전달하는 위치에 놓이니 자부심을 가지신 것 같다. 그전부터 나와 가오루에게 몇십번에 걸쳐 4·3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여전히 상세하게 기억하고 계셨을 것이다. 그 뒤로 제주도에 갔을 땐 알츠하이머병이 꽤 진행된 상태였다. 4·3유적지 투어를 하니 힘들어하시더라. 담당자가 해설을 시작할 때마다 계속 다른 곳에 가자고 하셔서 우린 계속 다른 곳을 돌아다니며 그네도 타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온전히 기억하지 못하시기에 차라리 다행이었는지도 모른다. 자료들이 너무 잔인해서 눈물이 날 정도였으니까. 어머니는 이제 그 기억으로부터 해방되셨으니 4·3 사건에 관해선 우리가 기억할 차례다.
아라이 가오루 4·3때 돌아가신 분들이 1만명이 넘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단순히 숫자로 들었을 때와 실제 현장에서 수많은 묘비와 무덤을 볼 때의 느낌은 상당히 달랐다. 게다가 묘비에 태어난 날은 있지만 돌아가신 날이 표기되어 있지 않은 분들, 묘비에 기록조차 되지 못한 분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일본 관객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영화가 일본에서 개봉한 후 관객과의 대화(GV) 때 여러 감상을 들었는데, 그분들이 끝없이 무덤이 이어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하더라. 영화를 통해 4·3 사건에 대해 처음 알았고 제주도에 갈 때 제주4·3기념관을 꼭 가봐야겠다고 말씀하신 것도 기억에 남는다.
내 가족의 이야기에서 모든 가족들의 이야기로
4·3사건을 애니메이션으로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시퀀스를 보면서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굉장히 다층적인 영화임을 실감했다. 한 가족의 과거와 현재를 다루면서도 필연적으로 한국과 북한과 일본 이야기를 폭넓게 짚을 수밖에 없기 때문인 것 같다. 그만큼 어떤 이야기를 어디까지 다뤄야 할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양영희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을 만들었을 때도 걱정이 많았다.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혹시 피해가 가면 어떡하지 싶었고, 사실 가족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내겐 굉장히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그럼 그냥 그만두면 되는데도 가족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을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고 그런 스스로에게 지친 상태였다. 그럼에도 무엇이 정답인지 계속 자문자답하며 영화를 만들었다. <수프와 이데올로기>가 <디어 평양>의 마지막 장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디어 평양>은 제주도 출신 가족의 이야기인데 그때는 4·3 사건 이야기를 다루지 않았다. 분량상으로도 벅찼고, 그때까진 엄마가 4·3 사건의 생존자라는 것을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부모님이 한국이 아닌 북한의 이념을 따르고 아들들을 북한으로 보낼 정도로 신뢰가 깊었던 데엔 많은 이유가 있지만, 그중 결정적인 역할을 한 4·3 사건에 관해 <수프와 이데올로기>에서 긴밀하게 다룰 수 있어 다행이다. 지인의 가족 중에 4·3 사건의 경험자임에도 한번도 이야기하지 않은 분이 계신다. 그런데 <수프와 이데올로기>를 본 날 밤부터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셨다고, 7~8살 때 본인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말씀하셨다고 들었다. 그분의 가족이 내게 고맙다고 하시더라. 4·3 사건에 관해 말한 뒤 우리 어머니가 해방감을 느끼셨듯이, <수프와 이데올로기>가 다른 분들에게도 좋은 촉매가 되어주길 바란다. 이 영화를 통해 4·3 사건에 대해 새로 알게 된 관객이 있다면 그 역시 기쁜 일일 것이다.
아라이 가오루 개인적인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용기 있는 행동을 한 것 같다. 김일성의 초상화가 걸린 집에 제 발로 들어가다니. (웃음) 여러 소중한 장면들이 기록돼 있기 때문에 내게도 정말 의미 있는 작품이다. 일본 관객이 해준 말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는데, 다른 사람의 가족 이야기임에도 마치 곁에 함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거다. 그리고 또 어떤 분은 영화를 보면서 ‘나는 가족과 이야기를 별로 나눈 적이 없구나, 집에 돌아가서 엄마, 할머니와 많은 대화를 나눠야겠다’고 생각한 분도 있다더라. 관객으로 하여금 그렇게 느끼게 해준 영화라는 게 기분 좋다.
영화가 개봉하는 시점에 에세이도 출간할 예정이라고.
양영희 책의 제목도 <수프와 이데올로기>다. 책을 통해 다큐멘터리의 뒷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지쳐서 가족 다큐멘터리는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끝내려고 한다.… 아마도.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웃음) 극영화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는데 나의 경험과 픽션이 결합된 이야기다. 빨리 써서 영화로 만들고 싶다. 그래서 남편에게도 선언했다. 앞으로 집안일 안 하고 글만 쓸 거라고, 그랬더니 알겠다고, 얼른 글 써서 영화 찍으라고 하더라.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