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인터뷰] ‘글리치’ 노덕 감독, “무엇을 믿을 것인가”
2022-10-20
글 : 김수영

- <글리치>는 영화보다 긴 호흡의 시리즈물이다. 소재와 스케일도 외계로 한껏 확장됐다. 작품의 기획서만 보고 연출을 결정했다고 들었다. 어떤 지점에 끌렸나.

=영화 <연애의 온도>(2012)를 마치고 새로 영화를 기획했는데 <글리치>와 상당히 비슷한 내용이었다. 서울의 연쇄 실종 사건을 배경으로 3명의 친구들이 실종 사건을 쫓는 모험담인데 여기에 외계인이 관계되어 있다는 설정이었다. 당시에는 이 이야기를 끝까지 풀어내지 못했고 언젠가 다시 해봐야지 하고 마음속에 품고만 있었다. <글리치> 기획서를 보고 그때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 디테일은 다르지만 톤 앤드 매너나 당시 내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지점들이 비슷해서 <글리치>는 내가 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 비주얼이 흥미로웠다. 글리치라는 편집 효과와 외계 신호를 연상시킨 점도, 지효(전여빈)가 외계인을 볼 때마다 스크린에 나타나는 코믹한 ‘짤’도 재미있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어떻게 구현해나갔나.

=오홍석 미술감독님이 미팅 당시 들고 온 비주얼 컨셉아트가 있었다. 글리치가 일상 속 유리나 휴대폰 화면 등 다양한 스크린에 접목되고 파생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그게 이야기를 구현할 때 영향을 많이 미쳤다. 공포스러운 장면을 어떻게 전형적이지 않게 보여줄지 고민을 많이 했다. 화면 속 ‘짤’이 귀엽고도 새로운 접근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영화였다면 이렇게 표현하진 못했을 거다. 러닝타임도 길고 나에게 할애된 시간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시도해봤다.

- 시리즈물이라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또 무엇이 있었나.

=지효와 보라(나나)가 처음 만나는 카페 앞 장면도 풀숏을 많이 썼다. 영화였으면 중요한 만남의 순간을 이렇게 길게 풀숏으로 뺄 수 있었을까? 더 쪼개서 클로즈업하고 타이트하게 갔을 것 같다. 풀숏도 과감하게 쓰고 원테이크로 가보고 싶은 장면도 쭉 가봤다. 작업을 하면서 내가 소심한 편이라는 걸 깨달았고(웃음) 의식적으로 과감해지려고 노력했다.

- 극중 하늘빛들림교회에서는 VR로 예배를 본다. 보이지 않는 걸 믿는 게 신앙인데 이 교회에서는 믿는 게 눈앞에 나타나는 셈이다.

=사이비 종교를 통해 어떤 믿음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겠다 싶더라. VR로 예배를 본다는 설정은 작가님이 생각해냈다. 기계장치나 보이는 예배를 통해 하늘빛들림교회가 외계인이나 우주를 믿는 종교라고 설득할 수 있겠다 싶었다. 취재를 통해 실제 우주인을 믿는 종교가 있고 다양한 예배 형태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어느 정도 리얼리티를 가져갈 수 있는 장치였다. 종교 취재를 하면서 이들의 믿음 자체를 가볍게만 볼 수 없겠다고 느껴서 극중에서도 믿음과 종교는 무게감 있게 다루려고 했다.

- 직전에 작업한 <시네마틱드라마 SF8: 만신>도 믿음을 다룬 판타지물이다. 관심사가 SF쪽으로 향한 까닭이 있나.

=어떤 사람은 우주의 수명이 다했다, 멸망을 앞두고 있다고 하고 누구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외계에 관해 지금으로선 무엇 하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없다. 알면 알수록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만 알게 된다. 이 지점이 재미있다. 확실한 진리가 없다는 것은 결국 무엇을 믿을 것인가, 라는 믿음의 문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믿음의 테마는 영화 <특종: 량첸살인기>(2015)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졌다. 진실은 결국 무엇을 진실이라고 믿느냐가 핵심일 수 있다는 게 <특종: 량첸살인기>의 기획 의도이기도 했다.

- 전여빈, 나나 배우의 캐릭터도 좋았지만 이들을 둘러싼 인물들도 흥미롭다. 개성 있는 서 실장이나 조연 3인방은 물론이고 지효 주변의 인물인 남자 친구(이동휘), 경찰(류경수)도 인상적인 캐릭터로 다가왔다. 자칫 평범할 수 있는 캐릭터인데도 범상치 않게 담아냈다.

=영화는 두 시간짜리 플롯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해서 캐릭터들을 하나하나 돌보긴 어렵다. 처음 드라마를 한다고 마음먹고 나서 가장 하고 싶은 게 바로 이거였다. 시간에 굴복하지 않고 여러 캐릭터를 돌봐주는 역할을 해야겠다고. <글리치>는 극단적으로 비현실적인 인물이 등장하는 드라마다. 처음부터 작품 속에 일상과 비일상이라는 테마가 있었다. 드라마에 일상을 충분히 드러내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도 흥미로워야 한다. 일상의 소소한 재미를 잘 표현해줄 수 있는 배우들을 캐스팅했고, 각 캐릭터의 매력을 살릴 수 있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 <연애의 온도>로 입봉했지만 그 이전부터 영화 현장에서 일해왔다. 쉽게 엎어지는 게 반복되고 한 작품 한 작품 긴 시간이 소요되는 이 일을 계속해나가는 동력은 무엇인가.

=작품 하나를 끝내면 10년은 늙은 기분이다. (웃음) <연애의 온도> 때나 지금이나 영화를 만드는 일은 거기에 나의 뭔가를 담아내는 일이다. 메시지일 수도 있고 심상일 수도 있는데 그게 내가 알지 못하는 제3의 인물에게 가닿게 되잖나. <연애의 온도> 때도 모든 관객을 만족시킬 수 없지만 단 한명의 관객은 이 이야기에 동의해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고 <글리치>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나 드라마, 매체의 구분을 넘어 누군가에게 이야기가 가닿는 것 자체가 아름답고 이런 믿음이 내가 작업을 하는 원동력이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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