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교차가 큰 완연한 가을이다. 부산국제영화제가 끝나면 계절이 바뀌어 있다는 정설은 올해도 변함없이 증명되었다. 지난주에 이어 1378호에서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번에는 ‘한국영화의 오늘: 비전’ 부문과 ‘뉴 커런츠’ 부문 영화들을 중심으로 신진 한국영화 감독들의 인터뷰를 싣는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수시로 기자들에게 물었다. 어떤 한국영화가 가장 좋았느냐고. 그때마다 거듭 호명된 화제작은 이정홍 감독의 <괴인>, 김태훈 감독의 <빅슬립>, 임오정 감독의 <지옥만세>, 조현철 감독의 <너와 나>였다. <괴인>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영화가 기이한 기운을 품고 있다고 말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올해 부산에서 4관왕을 차지하며 괴이한 호소력을 증명했다. 기자들이 미처 수상을 예상하지 못한 작품으로는 <비닐하우스>가 있는데, 그래서 도리어 영화가 궁금해 이솔희 감독의 인터뷰를 개인적으로 꼼꼼히 읽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수상작인 <초록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를 포함해, 최근 영화제에서 만난 일련의 한국 독립영화들이 다양한 소재와 형식, 미학적 방법론과 스타일을 추구한다는 점이 무척 반갑다. 특정 조류와 계보에서 벗어난, 창작자의 의지가 느껴지는 고집스러운 영화들을 만날 때마다 박하사탕을 입에 문 듯 입안이 화해진다. 첫 영화를 내놓은 감독들의 설렘, 흥분, 열정, 각오가 이번 9명 감독들의 인터뷰에서도 진하게 전해졌는데, 부디 이들이 미래에 큰일을 내주기를 기대한다.
마찬가지로 미래에 큰일 낼 것 같은 풋풋한 청춘 배우들도 만났다. <20세기 소녀>로 뭉친 김유정, 변우석, 박정우, 노윤서는 1999년에 사는 열일곱 소년 소녀가 되어 그 시절 우리의 우정과 사랑의 고백을 아련히 소환하게 만든다. 교복 입은 캐릭터를 통해 각자의 학창 시절에 접속한 네 배우들의 이야기, 배우들이 서로에게 남긴 ‘교환 일기’는 한마디 한마디 아주 말갛고 고왔다. “그럼 다음에 또 쓸게”로 마무리되는 교환 일기의 익숙한 끝인사에서, 유치하게도 추억은 방울방울의 무드에 젖을 수밖에 없었다. (다들 잘 살고 있나요? 제게 ‘17171771’ 남겼던 분들 잘 살고 있나요?)
강추할 기사는 또 남았다. 임수연, 조현나 기자가 부지런히 취재해서 쓴 ‘망 이용료를 둘러싼 10가지 질문들’, 송형국 평론가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평론도 정독하길 권한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팬이라면 다음주 <씨네21>도 놓치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