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의 홍보대사로 활약한 후 올해 코코믹스 음악상 심사위원으로 다시 돌아온 배우 신은수를 만났다. <가려진 시간>의 신비로운 소녀에서 어느새 만 스물. 지니TV 오리지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와 KBS 드라마 스페셜 <열아홉 해달들>의 공개를 앞둔 신은수의 보폭은 한층 넓고 쾌활해졌다.
- 4년 만에 BIAF에 돌아왔다. 홍보대사에서 심사위원으로 다시 참여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나.
= 홍보대사 활동이 무척 좋은 경험으로 남았다. 확실히 애니메이션에 대해 더 잘 알게 된 것 같고, 영화제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애니메이션이 가진 매력에 빠졌다. 이번엔 심사위원이 되어 작품을 더 꼼꼼히 보고 싶어졌다. 지금까지 본 작품들 모두 다양한 국적과 문화, 개성 강한 스타일이 돋보였다.
- 웹툰 원작의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가 11월 공개를 앞두고 있다.
=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인데 이번 현장은 유독 편안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임시완 선배님, 설현 언니 모두 너무나 착한 사람들이다. 진짜로 행복하게 찍었다. 내가 연기한 인물 김봄은 외강내유 캐릭터인데 겉으로는 아주 강해 보이지만 마음이 정말 여리다. 상처받는 게 무서워서 더 방어적으로 굴면서 세 보이려고 하는, 그런 친구다. 처음 작품을 맡았을 때 원작 웹툰을 한번 훑은 후 전체적인 톤과 매너를 파악하고 그 뒤로는 나만의 해석에 집중했다.
- <가려진 시간>으로 처음 데뷔했을 때부터 생김새와 달리 나이에 비해 무척 강단 있고 의연한, 강심장의 소유자로 불리곤 했다. 실제의 신은수는 김봄과는 정반대랄까.
= 나도 긴장하거나 불안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의연하게 굴었기 때문에 비슷한 면도 있겠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의 내게는 훨씬 더 단순한 패기가 있었다. 왜 최고심 캐릭터의 “가보자고!” 같은 기운으로. (웃음)
- 최고심이라니 귀엽다. 평소 취향에 대한 단서를 얻은 기분이다.
= 동글동글한 그림체를 선호하는 쪽이다. 귀여운 게 좋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짱구는 못말려> 시리즈의 열렬한 팬이라는 사실도 예전부터 자주 고백해왔다.
- 지난 9월에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수수께끼! 꽃피는 천하떡잎학교>가 개봉해 박스오피스에서 선전했는데.
= 당연히 나도 극장에서 보고 왔다. 개봉 행사로 나눠주는 메모지, 마우스패드 굿즈도 받았다. 짱구의 발랄함을 정말 사랑한다. 유쾌하지만 그 안에 인생에 대한 깊이도 있고 은근히 교훈적이다.
- 극장에서 애니메이션을 본다는 것, 어떤 즐거움을 발견했나.
= 처음엔 아동 관객들이 많을 텐데 내가 가도 되나? 내심 망설였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막상 상영관에 들어가니까 성인 관객이 정말 많았다. 내 옆으로 성인 남성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서 엄청나게 몰입하면서 보고 있었고. (웃음) 그 풍경 자체가 또 다른 재미였다. 애니메이션의 즐거움에 관해 함께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리고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수수께끼! 꽃피는 천하떡잎학교>은 추리 서사가 중요했기 때문에 극장 환경에서 집중하면서 볼 때 스릴이 배가 되는 것 같았다.
- 올해 토에이 애니메이션의 세계 특별전으로 <디지몬 어드벤처: 우리들의 워 게임!>이 상영된다. 디지몬과 포켓몬, 어느 쪽이었나.
= 아쉽게도 나는 디지몬보다는 포켓몬 파다. 약간의 세대 차이도 있는 것 같다. 포켓몬 중에서는 특히 신비로운 비주얼의 뮤를 좋아했다. 왠지 다른 포켓몬들과는 다른 묘한 매력이 있었다.
- 올해 국제경쟁 부문 장편 애니메이션을 음악적인 기준에서 심사하는 코코믹스 음악상 심사위원을 맡았다. JYP에서 가수 연습생을 거쳤기 때문에 음악에 있어서도 확고한 취향이 있을 것 같다. 요즘 어떤 음악에 꽂혀있나.
= 계속 듣고 있는 가수는 찰리 푸스다. 노래도 그 가수가 가진 서사를 알게 되면 또 다르게 들린다. 천재로 알려진 찰리 푸스가 남몰래 가진 고충과 고민을 담은 이야기를 유튜브에서 보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 그의 앨범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 이번 심사에서 중점적으로 보려는 부분은.
= 애니메이션마다 스토리, 작화, 음악 등 모든 것이 제각각인데 음악이 다른 영화적 요소들과 잘 어우러지는가, 조화로움을 중심으로 작품들을 탐색 중이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플롯이나 스타일 면에서 어떤 반전이 있을 때 눈길이 간다. 장면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톤과 비트의 음악이 나올 때 정신이 번쩍 뜨이는 느낌이다.
- 황순원 작가의 소설이 원작인 애니메이션 <소나기>(2017)에 소녀 역으로 목소리 출연했다. 차분한 저음과 말괄량이 같이 힘 있는 목소리까지 음역대의 폭이 넓은 배우라 더빙 작업에도 적임자가 아닐까 싶은데,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나.
= <소나기> 작업은 처음에는 정말이지 어려웠다. 카메라 앞에서는 몸짓과 표정까지 동원해 표현할 수 있는 부분도 전부 다 목소리로 녹여내야 한다는 게 막막한 순간도 있었다. 그때 시행착오를 거쳐 잘 이겨냈으니 다음번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꼭 도전해보고 싶다.
- KBS 드라마 스페셜2022 단막극인 <열아홉 해달들>도 12월 방영을 앞두고 있다. 이 작품에서도 10대 고등학생을 연기하는데, 어떤 인물인가.
= 어떤 면에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의 봄이와도 공통점이 있을텐데,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어서 일부러 일탈하는 10대 고등학생이다. 불법적으로 돈을 벌고 생애 처음 사랑도 진하게 겪는다. 그동안 어깨 너머로 선배님들을 보고 배우는 현장이 많았다면 이번엔 상대역인 김재원 배우와 한 살 차이다. 현장에 나와 동갑인 배우도 있었는데 이런 경험 자체가 처음이었다. 작품을 만날수록 조금씩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게 매번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