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당연한 모성은 없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리뷰
2022-11-10
글 : 조현나

이 영화의 제목에 시선이 붙잡혔다면 아마도 ‘같은 속옷을 입는다’라는 두 여자에 대한 설명 때문일 것이다. 연정 관계의 가능성을 가늠해볼 찰나 속옷 빨래를 하는 이정(임지호)의 모습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화장실로 들이닥친 수경(양말복)이 이정에게서 채 마르지 않은 속옷을 낚아채듯 받아가는데 그사이엔 말 한마디 오가지 않는다. 엇갈린 시선에서마저 염증이 가득하다. 엄마와 딸, 내밀한 ‘두 여자’ 사이에 억누른 충동의 기운이 엄습하는 강렬한 오프닝 시퀀스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 커런츠, 넷팩상, 올해의 배우상(임지호) 등 총 5관왕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독립스타상-배우 부문(양말복)을 수상했다. 기세를 이어 올해 무주산골영화제에선 뉴 비전상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발견 부문 대상을 손에 쥐었으며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도 초청됐다. 모녀의 갈등, 중년 여성 캐릭터의 약진이라는 독립영화계의 경향 안에서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의 성취를 해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모녀의 영역을 지키면서도 두 사람을 도드라지게 개별자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기어이 샛길을 뚫고 나가는 작품이다.

엄마도 딸도 독립된 인간이기에

수경과 이정의 갈등은 함께 장을 보러 간 마트에서 결국 터져버린다. 수경의 주먹다짐을 견디지 못한 이정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자 곧이어 수경의 차가 이정을 덮친 것이다. 급발진 사고를 주장하는 수경과 달리 이정은 고의를 확신한다. 딸은 엄마의 폭력성을 고발하며 그의 행보를 더이상 좌시하지 않겠다고 공표한다. 디테일한 설정으로 인해 실화 기반의 이야기가 아닐까 예상케 하지만 김세인 감독은 “대부분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답한다. 다만 서사의 근원엔 엄마가 자리한다. “이전의 단편들을 작업할 땐 주로 청소년의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몰입했었다. 그 이유에 관해 생각해봤는데 그 끝엔 항상 엄마가 있더라.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선 이 화두를 직면하고 엄마와 감정적으로 분리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친구에서 가족으로 초점을 옮긴 장편에서 인물들의 감정이 더 복잡하게 그려진 것은 사실이다. 다만 김세인 감독의 연출적 특성은 유지된다. 감독의 단편 <불놀이> <컨테이너> <햄스터> 등에서 인물들은 감정을 쉽게 발화하지 않고 또한 말로 표면적인 갈등 해결을 꾀하지 않는다는 교집합을 지니는데, 이는 수경과 이정에게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잘못을 인정하길 요구하는 딸과 딸의 요구에 응하지 않는 엄마. 자동차 사고로 인해 가속화된 불화는 그렇게 둘의 유구한 갈등의 역사를 줄줄이 엮어올린다.

그렇다면 영화는 수경을 가해자, 이정을 피해자에 오롯이 위치시키는가. 서둘러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양육자-피양육자 관계인 두 사람을 같은 선상에 두고 논하는 데엔 한계가 존재하는데, 영화는 이를 인지하면서도 수경과 이정을 가능한 한 개별적 존재로서 바라보고자 한다. 이는 다른 영화에서 아이와 갈등을 빚는 엄마를 묘사하는 방식과 차별화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가령 <아이 킬드 마이 마더>의 샨탈(안 도르발)은 후베르트(자비에 돌란)에게 내내 서운함을 내비치는데 그 저변엔 아들의 애정을 갈구하는 마음이 깔려 있다. 수경 역시 딸 이정에게 서운함을 표한다. 하지만 샨탈처럼 자신을 엄마로서 사랑해주길 바라서가 아니라 독립된 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바라봐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케빈에 대하여>의 에바(틸다 스윈튼)는 수경과 마찬가지로 자식에게 큰 애정을 느끼지 못하지만, 아들의 죄를 함께 짊어지며 사회적 의미에서의 모성을 끝내 감내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수경은 에바처럼 모성을 실현해야 하는 극단의 상황에 처하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는 수경이 엄마라는 역할에 매몰되고 싶어 하지 않고 그렇기에 양육 자체를 버거워하는 인물이었음을 후반부로 갈수록 공들여 설명한다. 그러나 이정은 이러한 엄마의 요구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엄마 그럼 나는? 엄마한테 쌓인 그거, 다 나한테 쏟아내면 나는 어떡해?” 자식으로서 사랑받길 원하는 딸과 한 개인으로서 살아가고 싶은 엄마. 두 사람의 욕구는 맞닿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린다. 오랜 기간 쌓여온 서운함은 서서히 서로에 대한 증오로, 폭력과 폭언으로 표출된다.

가족상의 확장

수경과 이정으로 대표되는 부모와 자식 관계는 주변 인물들을 통해 다양하게 변주된다. 회사 동료인 이정과 소희(정보람)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이정이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딸이라면, 소희는 일찌감치 독립해 나온 주체적이고 자기 삶의 영역이 분명한 사람이다. 김세인 감독은 “누구나 처음부터 주체적일 수는 없다. 시기만 다를 뿐 아마 소희에게도 분명 이정과 같은 시기가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이며 이들의 연결점을 짚는다. 애인 사이인 종열(양흥주)과 수경은 둘 다 혼자 딸을 키우는 부모인데 겉으로 보면 종열이 훨씬 딸에게 다정한 아버지상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깊게 들여다보면 종열에겐 가부장적인 면모 또한 공존한다. 요컨대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한 인물의 편을 들거나 하나의 가치가 옳다고 내세우지 않는 영화다. 여러 형태로 존재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아들과 딸의 형상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다양한 가족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양말복 배우가 “촬영하는 동안 나 역시 수경에게 모성애를 기대하진 않았는지 많은 생각이 들었다”라고 전할 만큼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캐릭터를 보여주며 이들을 정상 가족의 틀에서만 바라보지 않았는지 질문한다. 안온한 과정 대신 각자의 이해가 충돌하며 찢기고 폭발하는 상황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방식으로 말이다. 양말복, 임지호, 양흥주, 정보람 등의 배우들은 이 지난한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아주 세밀하게 서사를 쌓아나가면서도 이를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 제시하지 않는다. 수경과 이정의 욕구는 어디까지 이해받을 수 있는가. 부모와 자식이라는 역할 위에서 인물들은 과연 어떻게 개별자로서 존재할 수 있는가. 영화 안에 펼쳐진 다양한 가족상은 그렇게 프레임 밖으로 유연하게 확장된다.

* 이어지는 기사에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김세인 감독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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