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김세인 감독, “모녀 관계에도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2022-11-10
글 : 조현나
사진 : 오계옥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김세인 감독이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연구과정에서 제작한 영화다. 엄마인 수경(양말복)이 운전하던 차가 딸 이정(임지호)을 치며 본격적인 서사가 전개되는데, 차가 급발진한 것이냐 아니냐를 두고 모녀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가장 가깝고도 먼 존재, 엄마와 딸의 관계를 집요하게 묘사하면서도 둘 사이의 균형감을 잃지 않는다. 신인감독의 첫 장편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노련하고도 대범한 결과물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부터 지금까지 여러 영화제를 통해 국내외 관객을 만났다. 개봉까지 확정되면서 한창 바쁜 시간을 보냈겠다.

=며칠 전 바야돌리드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스페인에 다녀왔다. 한국과 다르게 이 영화를 블랙코미디로 받아들이는 관객이 많아 새삼 문화적 차이를 실감했다. 그 밖에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의 조연출을 맡았던 친구가 현재 장편 촬영 중이라 연출팀 소속으로 일을 돕고 있다. 각본집도 나올 예정이다. 이 작품을 완성하고 또 관객과 만나며 느낀 것들을 적은 에세이가 함께 실릴 텐데 아직 완성하진 못했다. 개봉까지의 여정이 생각보다 훨씬 바쁘더라. (웃음)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관해 먼저 묻고 싶다. 이들은 저마다 개성을 지녔지만 특히 수경이 눈에 띈다. 여타 캐릭터와 달리 레드 컬러를 부여한 이유가 있나.

=컬러를 잘 사용하지 못하면 안 쓰느니만 못하지 않나. 그렇지만 수경 자체가 워낙 과감하고 돌진하는 캐릭터라 그에 한해선 도전해보고 싶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수경이 여러 사건을 겪으며 마모되는데, 그 또한 색감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자세히 보면 처음엔 손톱에 강렬한 반짝이가 칠해져 있지만 점점 벗겨져간다.

-수경 캐릭터에 공을 많이 들인 것 같다.

=이 작품을 통해 성취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열정적으로 돌진하는 중년 여성 캐릭터를 선보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경에게 마음이 좀 기운 면이 없지 않아 있다. 내가 처음 시나리오를 쓸 당시와 달리 다채로운 중년 여성 캐릭터를 다룬 작품이 많아지고 있어 이 흐름이 반갑다.

-중간중간 스릴러로 장르가 변환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수경이 좌훈을 하며 자신의 수술 흉터를 만지거나 아파트에서 자신이 놓친 스카프를 주워 드는 순간들이 이에 해당한다.

=대개 수경의 감정 상태에 따라서, 수경이 자신의 지침이나 불안을 온전히 드러낼 때가 그러하다. 그걸 일일이 현실적인 에피소드로 그리고 싶진 않았다. 이정이 나름의 힘듦을 겪는 와중에 수경의 상황까지 그렇게 묘사되면 영화가 꽉 차다 못해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수경 서사에서만큼은 느낌이나 뉘앙스로 표현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영화가 균일하게 가는 것보다 이상한 기운이 감지된 신들이 튀어나올 때가 좋다. 그 어긋남이 영화를 더 흥미롭게 만들고 관객이 집중할 수 있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수경의 데이트 신도 인상적이다. 데이트 상황만 놓고 보면 평화로운데, 교통사고가 일어난 직후여서인지 어딘가 불안정해 보인다.

=데이트 장면 앞뒤로 이정의 신이 붙는데, 이정과 수경의 신이 닿는 그 0.001%의 면들이 이 영화를 완전히 함축해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어떤 의미냐면 수경은 수경의 삶을 즐길 뿐인데 이정과 붙어 있으면 뭔가 잘못한 것처럼 보이지 않나. 그게 이 모녀 관계를 잘 드러낸다고 생각했다. 팬데믹 시기에 촬영을 진행해서 수영장을 찍기 어려우니 빼면 어떻겠느냐는 의견도 들었는데, 모성 신화 등의 이유를 들며 이 장면을 지켜야 한다고 강력하게 피력했다. 지금 와서 보면 그저 이 장면을 찍고 싶어서 그랬구나 하고 이해한다. (웃음) 개인적으로 애착이 많이 가는 장면이다.

-이정은 왜 엄마로부터 독립하지 않았을까. 단순히 경제적 이유만은 아닐 것 같은데.

=다른 것보다 아직 홀로 설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내가 보는 이정은 자기 행복과 감정의 주체를 계속 타인에게 넘기는 사람이다. 그런 캐릭터가 마침에 자기 삶의 주도권을 쥐고 성장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수경이 이정에게 ‘의리 없다’고 말하는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개인적으로 모녀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나. 애정보다 의리로 점철된 관계일까.

=가족 관계는 정말 어렵다. 특히 모녀 관계는 더 어려운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우리가 개별적 존재라는 걸 계속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과 달리 지금 내가 엄마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엄마를 한 개인으로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거리두기가 되니까 오히려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됐다.

-이 영화를 완성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모녀 사이의 감정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개봉을 앞둔 지금, 다음으로 넘어갈 준비가 됐다고 느끼나.

=영화를 편집할 때나 영화가 공개된 초반 시점까진 그렇게 느끼지 못했다. 감정과 고민을 여전히 붙잡는 스스로를 보며 왜 해소하질 못하는지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꽤 지난 지금은 확실히 달라졌다고 체감한다. 영화를 개봉하는 것이 관객과의 만남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영화와 이별하는 과정이기도 한 것 같다. 그래서 이 시기를 잘 통과하고 나면 앞으론 좀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구체화된 차기작이 있나.

=확실히 정해진 것은 없다. 다만 중년 여성에게서 영감을 많이 받는 편이라 앞으로도 다양한 중년 여성 캐릭터를 다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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