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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 @imagolog 오늘의 영화는 2021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비상한 주목을 받아온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입니다. 두 여자의 이름은 수경과 이정입니다. 엄마 수경이 화사하고 외향적인 것에 반해 딸 이정은 음울해 보일 만한 인상을 가졌어요. 성격이 어긋날 뿐 아니라 수경은 분풀이로 이정을 구타하는 것이 습관화돼 있어요. 우리가 흔히 엄마와 딸로, 몸으로 연결돼 있었기 때문에 갖는 애정을 절대시하잖아요. 감독님께서는 오히려 한몸이었던 사이에서만 생길 수 있는 증오도 있다고 생각하세요?
김세인 @two_underwear 우리가 가족이기 때문에, 나와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더 기대하는 면이 있잖아요? 몸이 연결됐던 경험으로 인해 서로를 개인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그 연결에만 초점이 많이 가 있다면 관계에서 증오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혜리 @imagolog 저는 어렸을 때 가족이 과오를 저지르면 더 화가 나고 미웠는데, 나와 닮은 사람이 잘못했기 때문인가 싶었어요. 수경도 딸 이정에게 어떻게 자신의 나쁜 점만 닮았냐고 말하잖아요. 그런 대사들은 어떻게 쓰셨어요? 감독님이 채집한 것, 그냥 떠올린 것, 전하고픈 의미를 생각하며 만든 것도 있을 텐데요.
김세인 @two_underwear 말씀하신 것처럼 갖가지 루트로 썼어요. 실제로 엄마한테 들은 말도 있긴 하지만, 상당 부분은 아니고요. 가령 ‘너도 너 같은 딸 낳아봐라’라는 말, 사실 많이 듣잖아요. (웃음) 그런 걸 변형해서 쓴 정도입니다. 중년 여성들의 대사 같은 경우, 제가 어렸을 때부터 엄마와 목욕탕을 많이 다녔어요. 그때 주워들은 말들이 영화에 스며들었습니다. 배우 분들이 잘 살려주셨죠.
김혜리 @imagolog 수경을 보면서는 자궁으로부터 아이를 밀어내고 싶어 하는 여자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수경과 이정의 차나 아파트가 자궁스러운 공간이기도 한데, 그렇게 확대해석하지 않더라도 수경은 딸에게 ‘이만 나가!’라고 외치고 싶은 캐릭터 같았달까요. 극중에 잠깐 등장하는 수경의 흉터는 제왕절개 수술 자국인가요?
김세인 @two_underwear 네 맞아요. 말씀해주신 것처럼 자궁의 이미지를 표현해보려고 한 장면도 있어요. 편집상 잘라낸 장면인데, 이정이 동료 소희의 집에 처음 갈 때 복도를 걸어가는 장면이 자궁으로 가는 길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촬영감독님과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김혜리 @imagolog 영화 초반에는 관객이 수경의 문제점을 더 많이 볼 것 같아요. 재밌는 건, 이정이 엄마 집을 떠나 아까 말씀하신 직장 동료의 집으로 가면서부터 이정의 문제가 눈에 들어왔다는 거예요.
김세인 @two_underwear 영화가 이정의 입장에서 시작되었다가 중반부에 수경의 입장으로 가고, 다음으로는 두 여자가 균형적으로 보이는 구조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이정과 수경이 딸이나 엄마로서가 아닌 관계에 놓일 때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정의 동료 소희 캐릭터에게 ‘적당한 다정함’을 부여했어요. 이정은 자기의 감정과 행동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고 그걸 계속 타인에게 미루는 사람이에요. 수경과 있는 장면에서는 이정의 그런 모습이 관객이 이정에게 마음을 더 쓰도록 만들겠지만, 그런 태도가 다른 사람에게 닿았을 때는 어떤 작용이 일어날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김혜리 @imagolog 최근 한국 독립영화에서 중년 여성 캐릭터의 변모와 진화를 보고 있어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를 보면서도 감독님이 수경을 이해하고자 사력을 다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어느 한쪽에 더 무게를 실어주려고 하신 건 아니겠지만, 감독님 마음은 두 캐릭터 사이에서 어떻게 오갔는지요?
김세인 @two_underwear 2016년에 10장짜리 트리트먼트를 쓸 때만 해도 무게추가 이정한테 쏠려 있었어요. 2020년에 다시 트리트먼트를 보면서 이렇게 가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죠. 제게 감정적으로 해소되지 않은 부분이 있었는데, 이정을 보여주면서 너무 자기 연민에 빠지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웠어요. 수경이 과격하게 보일 수 있을지언정 이정이 보지 못한 매력적인 얼굴을 가졌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엑셀에 이정과 수경의 신이 잘 분배되어 있는지 표로 정리하면서까지 균형을 잡으려 했어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와 함께 보면 좋을 작품
남선우 @pasunedame 이정이 이런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열세살, 수아>를 골랐습니다. 수아는 식당을 운영하는 엄마 영주와 단둘이 살며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이런 엄마가 진짜일 리 없어!’ 엄마에게 크게 혼난 어느 날, 더이상 가짜 엄마와 살 수 없다고 결심한 수아는 설영의 콘서트가 열리는 서울로 향합니다. 이때 영화는 움직이는 기차 속 수아를 보여준 뒤 고장 나 멈춰선 버스 속 영주를 보여줘요. 두컷의 연결은, 엄마에게서 벗어나려는 딸의 움직임 뒤엔 딸로 인해 멈춰버린 엄마의 일부도 있다는 걸 말하는 것 같아요. 그 일부가 무엇인지는 수아에게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