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SF]
[이경희의 오늘은 SF] 모든 것, 모든 곳, 모든 투덜
2022-11-17
글 : 이경희 (SF 작가)

얼마 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보았다. 영화에 대한 감상은 차차 이야기하기로 하고, 솔직히 영화를 예매하는 것부터가 곤혹이었다. 여보님께 영화 보러 가자고 말할 때마다 영화 제목이 외워지질 않았다. 10월 내내 일정이 꼬여 여러 번 이야기를 꺼냈어야 했는데, 그때마다 “영화 볼래? 그 에브리… 어쩌고.” “에브리씽 에브리… 아무튼 양자경 나오는 영화 있잖아.” “그… 저번에 말했던 양자경 영화” 하며 매번 자신없이 중얼거리다 결국 “에브리 그거”까지 단어가 줄어들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문단의 첫 문장을 쓸 때도 구글에서 제목을 검색해 Ctrl+C, Ctrl+V로 붙였다. 혹시나 실수할까봐.

도대체 왜 이런 식으로 제목을 짓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냥 ‘모든 것, 모든 곳, 모두 한꺼번에’라고 지으면 안되는지? 줄여서 ‘모모모’라고 부르기도 좋지 않은가. 물론 이렇게 지어도 외우기 어렵긴 하지만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보단 백번 나은 것 같은데.

혹시 영화 <익스트랙션>의 ‘Extraction’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는지? 영어 사전을 찾아보면 ‘(어떤 과정을 거쳐) 뽑아냄[얻어냄], 추출’(?), ‘이를 뽑음, 발치’(??) 같은 의미만 나온다. 하지만 여기서 Extraction은 군사 용어 침투(Infiltration) 작전의 반대말이다. 대충 탈출 작전 정도? 사전을 찾아서는 당최 알기 힘든 정보다. 나는 지금도 <엣지 오브 투모로우>나 <이퀄리브리엄>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 아. 방금 쓰면서 혹시나 검색해봤는데, 충격! <이퀼리브리엄>이 맞는 제목이다. 우와, 19년 동안 철자를 틀리게 쓰고 있었다.

흥미가 생겨 이것저것 검색하다보니 <미지와의 조우>도 극장 개봉할 당시에는 <크로스 인카운터>라는 제목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클로즈도 아니고 크로스는 뭐지? 여하튼 영어 발음대로 제목을 표기하는 전통은 꽤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모양이다. <곤 위드 더 윈드>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래도 여기까진 이해해줄 만하다. 도대체 <컨택트>는 누가 어떤 맥락으로 제목을 결정한 걸까? 원제인 ‘Arrival’에서 의미가 너무 멀리까지 오지 않았나?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어 퓨 굿 맨>은 쓸 때마다 기분이 이상해진다. 진짜 저렇게 띄어 써야 하다니. 그리고 이건 진짜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인데 한국어에는 ‘너 나 안 본 지 두달 다 돼 감’ 같은 기괴한 문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지? 후후… 당신은 방금 저주에 걸렸다. 이제 앞으로 무슨 글을 써도 띄어쓰기를 잘못한 것처럼 어색한 느낌이 들 것이다.

뭔 쓸데없는 소릴 이렇게 길게 늘어놓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신을 놓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사이에 원고 분량의 절반을 헛소리로 채워버렸다. 어떻게든 수습해서 원래의 주제와 이어붙여 보자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도 딱 이런 영화였다. 하려던 얘기를 하다 말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는 수다쟁이 영화. 전통 가족 코미디와 마니악한 SF 농담과 B급 화장실 유머와 홍콩 무협과 재패니즈 뮤직비디오와 마블 코믹스식 우주 영웅 서사를 난잡하게 동시다발적으로 난사하면서도 어떻게든 한 덩어리로 굴러가게 만들어낸 기이한 영화. 매 순간의 아이디어가 너무나 눈부시고 강렬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제대로 해석하기 어려운데도 어느새 15번쯤 울먹이고 있는 기묘한 영화.영화의 중심을 지탱하는 기둥은 주인공 모녀의 강렬하고 보편적인 감정선이다. 영화는 성소수자인 딸과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를 내세우지만 조금 깊이 들여다보면 둘 사이의 갈등은 단지 그뿐만은 아닌 듯하다. 다른 시대와 다른 문화적 맥락 속에서 살아온 부모와 자식이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일상적 충돌의 단면. 세탁소 우주의 에블린을 매개로 무한히 평행우주가 확장되기 시작하는 1부에서 관객은 무수한 버전의 에블린의 모습에, 그리고 조이의 모습에 이입하며 각자 다른 지점에서 개인적인 맥락의 감정을 자극받는다. 나의 삶, 나의 버려진 가능성을 돌이켜본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그 어떤 영화보다 상호텍스트적이다. 관객마저 각자의 우주 속에 따로이 존재하는 신비로운 영화.

마지막으로 조금만 투덜거려보자면, 그래서 아쉽다. 마치 세탁소 우주의 서사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모든 우주의 맥락들이 도구적으로 종속되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어서다. 마치 성공한 우주의 에블린과 실패한 우주의 에블린이 구분되는 것만 같은 착시. 하지만 필시 각 우주의 에블린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각기 다른 형태의 아픔과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영화가 모든 버전의 에블린을 깊이 다루었다면,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그들 각자의 문제를 동시에 모조리 해소하는 형태의 엔딩을 완성했더라면. 그걸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의, 모든 종류의 삶과 힘듦을 은유해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야말로 에브리싱에 대한 이야기를 말이다. 물론 그러려면 지금보다 열배는 각본의 난이도가 올라갔겠지. 남 일이라고 참 속 편하게 떠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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