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인터뷰]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로 한국 찾은 '파이어 아일랜드'의 앤드류 안 감독
2022-11-17
글 : 송경원
사진 : 최성열
행복은 관계 속에 있다

2016년 미국 사회 속 한인 성 소수자의 모습을 그려낸 장편 데뷔작 <스파 나잇>의 앤드류 안 감독이 신작 <파이어 아일랜드>를 들고 한국을 찾았다. 한국계 미국인 앤드류 안 감독은 날카롭고 섬세한 시선과 장르를 넘나드는 연출력으로 주목받는 차세대 작가다. 2022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이하 프라이드영화제)는 앤드류 안 감독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3편의 장편과 2편의 단편을 선보이며 앤드류 안 감독이 걸어온 길을 정리했다. 자전적 경험에 근거한 소수자 내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예민하게 포착해온 앤드류 안 감독은 주제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장르와 이야기로 영역을 확장 중이다. 묵직하고 단단한 드라마에서 화사한 로맨틱 코미디까지 다채로운 색깔이 매력적인 창작자, 앤드류 안의 이야기를 전한다.

-프라이드영화제 마스터클래스로 한국을 찾았다.

=사실 한국 관객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두려움 반 설렘 반의 마음을 안고 왔다. 성 소수자의 이야기라는 소재에서 열광해주는 분과 그렇지 않은 분의 반응이 극명하게 갈리는 걸 이미 잘 알고 있다. 프라이드영화제는 좀더 우호적인 분들이 찾아주시리라 짐작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열정적인 반응에 감사하다. 무엇보다 한국의 퀴어 커뮤니티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는 점이 뜻깊고 고무적이다.

-데뷔작 <스파 나잇>(2016)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인 바 있다. 이번에는 두 번째 장편 <드라이브 웨이>(2019)와 신작 <파이어 아일랜드>(2022)는 물론이고 초기 단편들인 <앤디>(2010)와 <첫돌>(2011)도 상영했다.

=전작을 한 장소에서 다 볼 수 있다는 건 특별한 경험이다. 스스로도 지나온 길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스파 나잇>의 진지하고 다소 무거운 분위기에 비해 <파이어 아일랜드>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가까운 밝고 신나는 영화인데, 그래서인지 “감독님, 이제 더 행복해지셨나요?”라는 관객의 질문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영화의 톤이 밝아져서 점점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해주시는 것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스파 나잇>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 엔딩이었다고 생각한다. (웃음) 상황에 멈추지 않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편이다.

-<스파 나잇>이 이민자이자 성 소수자라는 이중의 이방인으로서 자전적인 경험이 진하게 느껴지는 드라마라면 퇴역군인과 아시아계 이민가정 소년의 우정을 다룬 <드라이브 웨이>나 퀴어 커플의 로맨틱 코미디 <파이어 아일랜드>는 장르적으로 확장된 부분이 눈에 띈다.

=개인적으로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한다. 내 경력에서 <파이어 아일랜드>는 마치 클로이 자오 감독이 <이터널스>를 만든 것과 유사하다. (웃음) 그만큼 야심차고,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시도라고 해도 무방하다. 아름다운 경험을 할 수 있다면 어떤 장르든 관계없다. 다만 하나의 원칙은 있는데 특정 소재나 정해진 이야기 안에서 반복하고 싶진 않다는 거다. 내 영화들은 각각 내 삶의 어떤 지점과 관심사를 반영한다.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작업을 해왔다기보다는 그때 그때 마음을 움직이는 것들을 포착하고 내 삶에 변화를 주는 것들에 대한 반응을 영화로 풀어냈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게 나의 유일한 계획이다. (웃음) 결국 내가 풀어낼 수 있는 건 내 경험과 세계를 기반으로 한다. 현재는 퀴어 아시안 아메리칸의 성장기를 구상하고 있다. 20대의 사랑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한편으로 미국 정부에 대한 강한 불신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나의 불안감을 담은 정치 스릴러를 만들어보고 싶기도 하다.

-<파이어 아일랜드>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서 영감을 받아 이를 성 소수자의 시각에서 풀어냈다.

=동료 조엘 킴 부스터가 파이어 아일랜드에 휴가를 가서 <오만과 편견>을 읽으면서 시나리오를 썼다. 두명의 절친이 휴양지에서 겪는 사랑과 우정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그린 이야기다. 당시 코로나19 봉쇄 기간이라 1년 동안 아무도 만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시나리오를 읽으며 단절된 생활에서 결핍된 것들이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랑과 이별의 감정이나 소통을 향한 욕망 말이다. 세상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 단절을 야기하는 요소가 너무 많다. 그 와중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이어질 수 있는 통로를 찾는다. 행복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거기에 어떤 이름표를 붙일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중요한 건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스파 나잇>의 목욕탕도 매우 상징적이고 정치적이며 이색적인 공간인데, <파이어 아일랜드>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공간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고 봐도 좋겠다.

=보편적인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게 공간이다. 사실 파이어 아일랜드에 대해 들어본 바는 있지만 이번 영화를 찍기 전까지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 파이어 아일랜드는 서퍽 카운티 브룩헤이븐에 있는 섬으로 미국 최초의 게이와 레즈비언 마을이다. 40, 50년대에 커밍아웃하지 않은 성 소수자들이 안전하게 휴가를 즐길 수 있는 장소였는데, 이성애자들의 억압이 사라진 공간인 퀴어 커뮤니티 내에서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억압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렇게 파이어 아일랜드라는 공간은 굉장히 아름답고 마법적인 동시에 어렵고 힘든 공간이 된다. 사실 내가 영화를 만드는 방식에서 공간은 언제나 중심에 자리한다. 시나리오를 쓰다가 막히면 해당 장소에 로케이션을 가서 영감을 받고 글을 쓰기도 한다. <스파 나잇>의 경우 처음에는 오롯이 스파에서 일어나는 일로만 구상했는데 뭔가 답답해서 직접 한인 타운을 돌아다니다가 교회와 식당, 한인 커뮤니티 전반으로 이야기가 확장되었다. <파이어 아일랜드>도 마찬가지다. 그 장소에 가야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고 그걸 최대한 감각적으로 전달하는 게 목표다.

-이민자, 성 소수자 등 비주류 내 비주류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내게 있어 영화는 모험의 기록이다. 친구들과 함께 세상 밖으로 나가서 무언가 신기한 것, 이상한 것, 특별한 것을 발견하고 사람들에게 내가 본 것을 소개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는 많은 이야기가 존재한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다듬어 영화라는 형태로 표현하는 것에 늘 흥미를 느낀다. 물론 가장 중심에는 항상 나의 이야기가 있다. 그걸 누군가의, 우리의 이야기로 확장하는 것이 내가 영화를 찍는 이유다. 물론 재미있게. 언제나 다음이 더 재미있는 영화를 찍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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