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아파트 계단을 오르는 한 남자(윤제문)의 느리고 초연한 보폭으로부터 시작한다. 홀로 지내고 있는 남자는 외로움이 이미 관성이 되어버린 사람처럼 보인다.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했다가 괜히 위장이나 버렸다는 핀잔도 그에게는 별 타격이 없다. 곧 떠날 사람처럼 삶의 흔적을 정리하던 그에게 대학 친구 철수의 부고 문자가 도착한다. 남자는 홀린 듯이 철수의 죽음 주변을 배회한다. 영화의 전반부는 철수의 장례식장에 동행할 사람을 찾는 남자의 동선을 따라간다. 우여곡절 끝에 세 사람이 모였다. 남자와 남자를 형이라 부르며 따르는 후배(김태훈), 그리고 남자의 전 연인 은주(김지성)가 함께 차를 타고 광양으로 향하는 로드 무비가 영화의 남은 절반을 차지한다. 이들의 여정은 도착을 지연하려는 것처럼 매끄러운 고속도로를 자꾸만 이탈한다.
이 영화에서 죽음을 언급하는 말들은 가장 시답잖은 농담처럼 가볍게 스쳐 지나간다. 그게 그 말의 무게를 견디는 유일한 방식이라는 듯이. 또한 이 영화에는 주인공 남자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빈번하게 호명되는 것은 영화에서 얼굴을 볼 수 없는 ‘철수’라는 죽은 자의 이름이다. 철수는 이름이 있으나 얼굴이 없고, 남자는 얼굴이 있지만 이름이 없다. 남자의 외로움과 철수의 죽음은 서로를 불완전한 거울처럼 비춘다. 영화는 이 비대칭의 교환 속에서 남자가 스스로의 장례식으로 향해 가는 듯한 유령적 감각을 자아낸다. 따라서 세 사람이 장례식장을 우회할수록 이상한 희망의 완력이 느껴지는 것일 테다. 팬데믹의 풍경을 애써 감추지 않는 영화의 선택은 거리두기가 벌려놓은 마음의 간격을 조용히 드러내 보인다. <경주> <후쿠오카>의 장률 감독이 영화의 제작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