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는 본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되어 병을 얻었고 병이 난 지 수일 만에 죽었는데 (중략) 그 얼굴빛을 분변할 수 없어서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과 같았다.” <인조실록> 23년 6월27일. <올빼미>의 상상은 이 미스터리한 문장에서 시작되었다. 낮엔 아무것도 볼 수 없으나 밤이 되면 희미한 시력을 되찾는 맹인 침술사 경수(류준열)는 어느 날 밤 소현세자(김성철)가 독살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보다’는 결국 ‘알다’와 같은 말일까? 아는 자를 색출해내려는 음모와 억울한 누명과 죽음을 밝혀내려는 움직임이 팽팽한 접점을 만들며 영화는 빠른 속도로 질주한다.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본 자’만이 답할 수 있다.
-밤에 물체를 보기 어려운 야맹증처럼 낮에 시력이 떨어지는 주맹증을 중심 소재로 삼았다. 이 독특한 소재를 어떻게 차용하게 되었나.
=영화사 담담의 백연자 대표에게 처음 소재를 제안받았다. 처음엔 ‘주맹증에 걸린 주인공이 궁에 들어가 비밀을 목격한다’라는 아주 간단한 로그라인만 있었다. 워낙 소재가 흥미로워서 제안에 응했고 평소 좋아하던 스릴러 장르를 활용해 이야기를 덧대나갔다. 먼저 주맹증으로 중심을 잡고 그다음에 침술사와 인조 이야기를 가져왔다. 사실 맨 처음 설정은 침술사가 아닌 악사였다. 근데 악사는 활동적이지 않고 주인공으로서 궁궐을 활보할 가능성이 적었다. 좀더 왕가의 내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도록 침술사로 변경했다.
-경수는 남들이 보기 어려운 어두운 상황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워진다. 주인공이 타고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방식이 이색적이다.
=궁 사람들은 경수가 아무것도 못 본다고 믿고 있지만 경수는 사실 거의 모든 걸 다 지켜보고 있다. 또 관객이 모든 걸 보고 있을 때 정작 주인공은 빛이 밝아 아무것도 못 보는 경우가 있다. 상호적으로 정보 공백을 두어 상대적 서스펜스를 만들어나가려 했다.
-촬영하면서 시나리오와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현장에서 시나리오 디테일을 많이 바꾸었다. 크랭크업 이틀 전까지도 시나리오를 계속 고쳤다. 잠을 거의 못 잤다. (웃음) 그중 순서가 바뀐 부분이 있다. 시나리오에서는 우물가에서 경수가 원손을 만나고 나중에야 그게 원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영화에서는 그 반대로 순서를 조정했다. 관객에게 먼저 정보를 제공해야 원손과 경수의 관계나 이야기 흐름을 잘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주맹증’과 ‘목격자’는 나란히 두기에 상반된 느낌이 강하다. 두 단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어떤 점을 가장 신경 썼나.
=인터넷에서 주맹증에 대해 찾아보니 의학적 정의 말고는 정보가 거의 없었다. 주맹증 환자에게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지 공부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깜깜하게 보이는 걸까, 아니면 환하게 보이는 걸까. 이 지점을 모른 채 시나리오를 쓸 수 없어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초반엔 의료인을 먼저 섭외했는데 이들도 주맹증의 시야가 어떻게 보이는지는 잘 모르더라. 그래서 주맹증을 겪는 당사자를 만났다. 그 덕분에 구체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눈이 너무 부셔서 낮에는 거의 안 돌아다니고, 외출이 꼭 필요한 경우엔 선글라스를 낀다고 했다. 증상의 정도나 시력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 어떤 분은 시력이 가장 좋았을 때 어두운 곳에서 뛰어다니기도 했다고 해서 영화에 적용 했다. 경수는 잘 보이는 편의 주맹증을 기준으로 설정한 것이다.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또, 상상인가.
=<인조실록>에 따르면 소현세자를 처음 청나라로 보낼 당시에는 인조가 추위를 많이 타는 아들을 위해 방을 따뜻하게 해달라고 청나라 사신에게 부탁하고, 헤어지기 직전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8년이 흐르면서 청나라와 조선 사이에 중재자 역할을 하게 된 소현세자가 인조 눈에는 청나라 편처럼 보였을 거다. 인조는 반정으로 왕권에 올랐다. 원래 왕이 될 사람이 아니었다는 의미와 같다. 아마 그 점으로 인해 열등감과 불안감이 심했을 거다. 자신이 무력으로 이 자리에 도달했던 것처럼 누군가 무력으로 왕좌를 찬탈할지 모른다는 압박감을 늘 안고 지낸 것이다. 부자 사이의 심리적 어긋남을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조금씩 변형해갔다.
-주연으로 류준열과 유해진 배우를 낙점한 이유가 궁금하다.
=류준열 배우는 기술적으로 뛰어난 배우다. 사실 경수는 밖으로 표현하는 캐릭터가 아니다. 항상 속으로 생각하고 안에 있는 것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내면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게 중요했는데 준열씨가 섬세한 표현을 잘해냈다. 또 유해진 배우는 불안과 의심에 가득 찬 인조의 모습을 잘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인간적인 약점을 그려내는 왕이니 정석보다 거꾸로 가고 싶었다. 한번 유해진 배우를 떠올리고 나니 더 생각할 게 없었다. 직진이었다.
-<왕의 남자>(2005)에서 조연출을 맡았다. 그 경험과 시간이 <올빼미> 제작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나.
=이준익 감독님으로부터 사극을 대하는 태도를 많이 배웠다. 특히 맥락을 해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주맹증, 침술사, 용의자와 목격자 등 다양한 키워드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인조가 소현세자와 세자빈 가족을 미워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맥락을 지키려 했다. 사극이 현대극에 비해 더 많은 공부와 사전 조사가 필요한 만큼 공백을 만들지 않게끔 많은 것을 준비하면서 빈틈을 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