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로부터]
[송길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Please, be kind
2022-12-01
글 : 송길영 (Mind Miner)

<주말의 명화>를 손꼽아 기다리고, 시린 손을 비비며 단관 개봉 극장의 영화표를 줄 서 예매하던 추억은 이제 까마득하다. 요즘 유행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은 지상파, 종편, 케이블, OTT 중 도대체 어디에서 볼 수 있나 찾아보아야 할 정도로 볼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요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이다. 십수년 전 지상파 예능에서 대본 없이 (혹은 대본 없는 것처럼) 예능인들의 일상을 보여주던 리얼리티 쇼가 비방송인들로 대상을 확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스타 가족들의 삶을 보여주는 육아 프로그램에서 시작해 아마추어 뮤지션이나 댄서들의 성장기를 보여주던 오디션이 각광받았다. 그래도 이들 프로그램은 연예계라는 범주의 생활인들과 지향점이 연예인을 꿈꾸는 후보자들이라 일반인이라 말하긴 어렵다.

최근에는 짝을 찾는 프로그램들이 관심을 받고 있다. 청춘 남녀가 풋풋한 설렘으로 상대를 찾던 예전의 짝짓기가 이제는 높은 연령대 출연진의 현실적인 고민으로 확장된다. 그다음으로 이전 연인과 함께 출연해 새로운 상대를 찾는 아슬함을 보여주기도, 이혼 이후 새로운 기회를 찾는 출연진만으로 구성해 시대의 공감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외로움과 욕망을 보여주는 다양한 시도들이 수십개의 포맷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영화 <트루먼 쇼>의 지구상 모든 관객처럼 “훔쳐보기”의 끝은 우리 주변의 나와 같은 이들의 삶이 아닐까?

인기를 끄는 출연진은 ‘연반인’(연예인+일반인)이라 불리며 프로그램 밖 사생활도 주목받는다. 그만큼 위험성도 크다.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그리고 싶은 제작진의 욕심은 현실의 맥락을 모두의 시각으로 온전히 담아내기 어렵다. 출연진이 프로그램 밖의 삶에서 대중과 접점이 있다면 오해를 설명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제공되지만, 상대적으로 개인에게 주어진 교류의 채널은 제한될 수밖에 없기에 때로 억울한 오명을 얻기도 한다.

<트루먼 쇼>의 마지막 장면이 기억에 선명하다. 가상의 세트를 용감하게 박차고 나온 트루먼의 선택으로 쇼는 끝난다. 이 극적인 엔딩을 눈물을 훔치며 바라보던 시청자는 곧바로 다음엔 또 뭘 볼까 하며 채널을 돌린다. 이처럼 나의 삶이 누군가에게 깊은 감동을 줄지라도 상대는 곧 잊고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오해와 댓글로 출연자들의 상처는 깊게 새겨져 오랫동안 잊지 못할 수도 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혼란스러운 삶을 부드럽게 대처하며 살아온 웨이먼드의 대사가 가슴에 남는다. “Please, be kind. Especially when we don’t know what’s going on.”

타인의 삶도 들여다볼 수 있는 세상으로 향하고 있다. 누군가의 삶에 몰입했다면 그만큼 그에게 친절하게 대했으면 한다. 우리 모두의 삶은 불완전하고, 불완전한 우리는 서로 무수한 오해를 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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