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현 감독은 22시간을 자야 하는 희귀병을 앓는 오세의 로드무비 <여정>에 이어 다시 한번 삶과 죽음이 기묘하게 겹쳐 있는 이야기 <우수>를 만들었다. <우수>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지만 마냥 울적하지만은 않다. 친구의 부고를 듣고 장례식장을 향해 가는 세 사람의 여정에 단순하지만 생생한 대사들이 웃음을 유발한다. 인상적인 여백과 독특한 프레임을 가진 장면들은 영화를 보는 시각적 재미도 유발한다. 이 모든 것이 감독이 의도한 바가 아닐지라도 오세현 감독이 제시한 <우수>라는 여정의 발견은 관객의 재미이고 몫이다.
-<우수>는 어떤 질문으로 시작된 이야기인가.
=10년 전에 친구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장례식장에 가면 죽음이 확인되는 거 아닌가. 영화에서처럼 세명이 장례식장을 향해 가는데 목적지에 가까이 갈수록 기분이 묘했다. 또 한번은 삽교천에 칼국수를 먹으러 가는데 내비게이션을 잘못 작동해 그냥 돌아온 적이 있다. 이 각각의 이야기를 따로 찍어보고 싶었는데 어느 날 윤제문 선배가 ‘너 영화 찍으면 나 한다’라기에 주인공을 중년 남자로 바꾸고 그동안 모아놓은 이야기를 엮었다.
-프로듀서로 참여했던 장률 감독의 <후쿠오카> 현장에서 윤제문 배우를 처음 만났을 텐데 어떻게 그런 신뢰를 얻었나.
=<후쿠오카> 때도 친하진 않았다. 콜 타임이 6시면, 5시 반에 가서 배우를 깨우고 그 앞에서 기다렸다가 같이 현장에 걸어오는 일을 맡았다. 내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는데 나중에 듣기로 그때 고마웠다고 하시더라. 이후에 제문 선배가 작업실을 구한다고 내 옆방으로 이사를 오기도 했다. 이후 2년 동안 시간을 같이 보냈다. 시나리오 쓰는 데 익숙지 않아 윤제문 배우와 김태훈 배우의 실제 모습을 떠올리면서 썼다. 은주(김지성) 역은 친척 누나를 생각하면서 썼다.
-영화 속 카메라의 위치와 시선이 흥미로웠다. 주인공이 술 마시는 첫 장면이나 차 안에서 촬영한 장면, 인쇄소 장면 등 카메라가 대상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계속해서 프레임 안에 프레임을 만드는 효과도 생긴다.
=촬영감독님과 콘티를 짰는데 막상 현장에 가니 그렇게 되지 않더라. 어떤 의도라기보다 현장에서 어떤 게 제일 맞을까 찾아가며 촬영해나갔다. 인쇄소 장면도 인물을 더 가까이 찍은 컷도 있지만 영화에 담긴 그 컷에 해가 한번 들었다 나는데 그 느낌이 좋아 선택했다. 의도를 가지고 촬영한 장면이 딱 하나 있다. 장례식장에 도착해 차 안의 윤제문 배우에게 카메라가 다가갈 때. 그건 철수나 제문 누구일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의 시선이라고 염두에 두고 촬영한 앵글이다.
-주인공이 철수가 죽은 날 아파트 아래를 내려다보는 장면, 사진관에 영정 사진처럼 보이는 주인공의 사진 등 철수와 주인공 사이에 연결성 있는 환상 장면들이 제시된다.
=제문은 철수의 부고를 듣고 ‘결혼도 못하고 죽고 싶은 건 난데 왜 네가 죽어’ 싶은 감정이 들지 않았을까. 첫 장면에서 누군가 계단을 오르는 장면도 철수 혹은 제문이 아파트를 올라가는 모습인데, 철수는 거기서 백 퍼센트의 선택을 한 거잖나. 제문은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선택하지 못한 거라 민망하기도 할 거다. 철수가 제문이고 제문이 철수고 이런 냄새가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작 <일시>에 이어 <우수>도 로드무비다. 뭔가를 찾아나서고 길 위에서 발견해가는 로드무비의 형식 자체가 이야기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다음 작품에서도 또 어딘가로 자꾸 찾아가려고 하더라. 영화에 증명사진을 찍는 여학생이 나온다. 그 학생이 오래되고 별거 아닌 안경을 잃어버려서 멀리서 되돌아오는 장면이 있다.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뭔가 찾으며 살아간다는 맥락에서 로드무비가 매력 있다고 느낀다. 내가 좋아하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들도 다 어딘가를 찾아간다. 첫 번째 영화 <우수>는 <체리향기>를 따라 만들었다. 아무도 그렇게 봐주지 않아서 아쉽지만. (웃음) 그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로드무비에 계속 끌린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후쿠오카>의 프로듀서로 장률 감독과 일했다.
=장률 감독님 현장밖에 경험해보지 못해 그게 전부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다. 게다가 프로듀서는 기획부터 개봉이 끝날 때까지 감독과 함께 경험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것을 장률 감독님에게 배웠다.
-이번엔 <후쿠오카> 때와 반대로 장률 감독이 <우수>의 프로듀서를 맡았다. 어떤 도움을 주었나.
=중국에 계시면서도 시나리오부터 편집까지 계속 봐주셨다. 감독님이 주인공의 후배(김태훈)와 은주 사이에 복잡한 사연이 있으면 어떻겠냐고 하셨지만 그건 내키지 않았다. 은주가 주인공에게 ‘네 것보다 커’라고 말한 것도 장률 감독님 아이디어다. 그건 괜찮겠다 싶어 넣었다. 연인 관계의 복잡한 사연이 묻어나는 농담 같은 걸 나는 잘 떠올리지 못하는데 감독님은 그런 대사를 잘 떠올리시더라.
-다음 영화의 시나리오를 준비 중이라고.
=시골 가서 일하는 얘기를 쓰고 있다. 아직 핵심을 못 찾아 내용 주변부를 정리하는 단계다. <우수> 끝나고 경험하지 않은 이야기를 소재로 몇번 써보기도 했는데 재미가 없어서 못하겠더라. (웃음) 이왕에 거짓말을 할 거면 경험을 바탕으로 해야 나부터가 재밌더라. <우수> 이후에 차곡차곡 모은 것들을 반영해서 시나리오를 완성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