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가 열린 지 5일째인 12월5일, 압구정역 근처의 아이러브아트센터에서 서울독립영화제2022 ‘배우프로젝트-60초 독백 페스티벌’이 진행됐다. 4년 전 배우 권해효, 조윤희의 제안으로 시작된 배우프로젝트는 신인을 발굴하고 창작자와 배우가 소통하는 장을 형성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1933명에 이르는 예심 지원자들 중 오직 24명의 참가자만이 본선에 올랐다. 심사위원으로는 행사를 주관한 권해효와 조윤희를 비롯해 <소셜포비아>와 <남매>로 제40회 서독제 독립스타상을 수상한 변요한, 이상희 배우와 <82년생 김지영>을 연출한 김도영 감독, <화차>의 변영주 감독이 참석했다. 조금 이르게 현장에 도착해 발을 들이자마자 복도와는 전혀 다른 긴장감이 와닿았다. 일찌감치 착석한 24명의 배우들은 조용히 사담을 나누며 심사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우프로젝트-60초 독백 페스티벌은 좋은 연기자들을 만나는 축제의 자리다. 물론 긴장은 되겠지만 이 시간을 마음껏 즐기길 바란다.” 권해효 배우의 사회로 본격적으로 페스티벌이 시작됐다. 행사는 배우들의 예심 영상 편집본이 짧게 상영된 뒤 곧바로 1분 자유 독백연기가 펼쳐지는 식으로 진행됐다. 긴장한 탓에 한 배우가 다음 대사를 기억해내지 못하자, 심사위원들은 준비한 연기를 마칠 수 있도록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경청해주었다.
배우프로젝트에선 1등 1명, 2등 2명, 3등 2명, 디렉터스 초이스 부문 2명 등 총 7명의 참가자에게 시상한다. 이중 디렉터스 초이스 부문은 올해 서독제에 초청된 감독들이 온라인 투표로 수상자를 미리 선정한다. 올해는 “엄마한테 심사인당이라고도 하지 말고, 보살이라고도 하지 말라”며 아빠에게 울분을 토하는 딸로 분한 원다현과 방황하는 상대를 단호히 나무라는 연기를 펼친 김서휘가 디렉터스 초이스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앞서 다부진 얼굴로 무대를 채웠던 김서휘는 이름이 불리자 결국 눈시울을 붉혔다.
2000년대생부터 1980년대생까지 본심에 오른 배우들의 나이대는 다양했다. 그중 2등에 호명된 양의진은 2001년생으로 가장 어린 참가자였다. “너 저번에 MT 갔을 때 얼굴 가운데에 점 있는 여자 좋아한다 그랬잖아. 그래서 용기내 고백했는데, 어때!”라고 외친 그에게 큰 호응이 잇따랐다. 2등에 나란히 오른 권잎새는 흡인력 강한 연기로 좌중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등장과 동시에 “어제 키스 신 잘 찍고 왔지”라며 이야기 풀어낸 김춘식과 “일주일 만에 연락해서 보험 들어달라고? 그럴 거면 삼겹살에 소주나 먹지, 이런 레스토랑엔 왜 들어왔어”라며 눈물을 보인 최가은은 이날 가장 큰 웃음을 이끌어내며 3등에 올랐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1위가 정해지지 않는다.”(권해효) 20여분간 격론을 펼친 끝에 심사위원들은 정재원에게 상을 안겼다. 의자에 편하게 다리를 걸치고 앉아 껌을 씹으며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펼쳤던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무대에 등장했다. 권해효 배우는 “이렇게 당황하는 건 처음 본다. 상 받을 줄 전혀 몰랐냐”고 말을 걸며 그의 긴장을 풀어줬다. 정재원은 “같이 준비해준 친구에게 감사하고…. 아, 남자 친구는 절대 아니다! 여튼 그 친구에게 감사하다(웃음)”라며 간결하게 소감을 전했다.
본격적인 수상이 시작되기 전, 심사위원들이 돌아가며 심사평을 전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먼저 운을 띄운 변영주 감독은 “배우페스티벌인데, 이건 연기가 아니라 글 잘 쓰는 친구가 점수를 더 잘 받는 구조가 아닌가 의심했다. 그런데 오늘 확실하게 마음이 바뀌었다. 사실 배우야말로 이야기를 구상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중요하지 않나. 그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했다”고 밝혔다. 변요한 배우는 “(마이크 잡은 손을 덜덜 떨며) 저도 이렇게 떨리는데 다들 얼마나 긴장했을까 싶다. (일동 웃음) 이야기꾼으로서 과감하게 이야기를 전하는 걸 보며 자극을 많이 받았다”고 전했다. “저도 오디션을 정말 못 보는 배우여서 여러분의 심정을 십분 이해한다. 오늘 가진 걸 다 보여주지 못했어도 다들 훌륭한 배우라는 걸 잘 알고 있다”며 격려했다. “더 자신 있게 자신을 드러냈으면 좋겠다. 고생 많았다”는 조윤희 배우의 평에 이어 배우 이상희는 배우페스티벌에 나가자는 친구의 제안을 거절했던 과거의 경험을 전했다. “그만큼 여기가 어려운 자리다. 그리고 연기라는 게 취향을 탈 수밖에 없다. 그러니 무조건 남의 말을 듣고 뜯어고치지 말고, 정말 내게 필요한 말을 잘 골라 들으며 조율해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