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7년 크리스마스이브, 오스트리아 황후 엘리자베트(비키 크립스)는 40살 생일을 맞는다. 아름다운 외모로 16살에 외사촌 프란츠 요제프 황제(플로리안 테히트마이스터)와 결혼해 황후가 되었지만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개방적인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그녀는 유럽에서 가장 엄격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전통에 적응하느라 숨이 막힌다. 더군다나 황실의 관습에 따라 막내딸 발레리(로자 하자즈) 외에는 그녀가 직접 자녀를 키우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고, 자녀 교육에도 관여할 수 없었다. 그녀는 19세기 후반 급변하는 유럽의 정치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남편인 요제프 황제에게 국민을 위해 본래의 역할(아름다운 미모를 갖춘 황후상)에 충실하라는 말만 듣는다.
이제 엘리자베트가 할 수 있는 것은 황후의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뿐이다. “40살부터 인간의 몸은 시들고 헐거워지며 구름처럼 음울해진다”는 영화 속 그녀의 독백처럼 초조해진 그녀는 강박적으로 외모 가꾸기에 몰두한다. 욕조에 몸을 담그고 숨을 참는가 하면 철저한 식단 조절과 끊임없는 운동으로 가는 허리를 유지하기 위해 코르셋(불어로 코르사주)을 더욱 세게 조인다. 하지만 영화는 이런 엘리자베트의 모습에 머물지 않고 운동하면서도 공부하고 정신병원을 방문하는 외부 활동을 비롯해 활동사진처럼 혁신적인 기술에도 흥미를 보이는 입체적인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그녀가 답답한 황실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여행이지만 그녀는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이런 생활을 반복하던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긴 머리를 자르고 코르셋을 벗고 자유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마리 크로이처 감독의 <코르사주>는 실존했던 오스트리아 황후 엘리자베트가 40살 생일을 맞이한 때부터 1년 동안의 이야기를 단편적인 역사적 사실을 가져와 허구적으로 재구성했다. 이 영화가 인상적인 것은 자막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지만 정작 이야기는 시간의 선후 관계와 상관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다음 이야기를 전혀 예측할 수 없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성은 엘리자베트의 심리를 보여주기 위한 감독의 의도로 읽힌다. 게다가 영화는 19세기 후반 오스트리아 황실이 배경이지만 다른 시대극처럼 궁전의 실내와 의상을 보여주는 데는 관심이 없다. 무엇보다 <코르사주>에서 중요한 것은 연극 무대처럼 단출한 실내와 소박한 의상을 통해 최대한 시각적 이미지를 자제하는 것이다. 이는 틀에 씌워진 오스트리아 황후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기를 갈망하는 엘리자베트의 내면에 오롯이 집중하기 위함일 것이다. 배우 비키 크립스는 여성으로서의 욕망과 억압된 분노에 담긴 슬픔을 지닌 엘리자베트를 완벽하게 연기함으로써 2022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내 본분은 우리 제국의 운명을 다스리는 것이고 당신은 그걸 대표하는 얼굴이 되면 되는 거요. 그래서 당신을 택했고 그게 당신의 존재 이유요.”
엘리자베트와 남편 요제프의 대화 장면에서 남편의 말.
CHECK POINT
<영국 여인과 공작> (감독 에릭 로메르, 2001)
시대극의 각색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다. <영국 여인과 공작>이 18세기 파리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화가가 캔버스에 그린 회화를 벽에 투사하는 모험을 강행한 것과 <코르사주>에서 황후의 이미지에 가려진 40대 여성 엘리자베트의 진정한 모습에 다가가기 위해 활동사진 속 그녀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에 공통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