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인터뷰] ‘가가린’ 파니 리에타르, 제레미 투루일 감독, “건축적 유토피아에 대한 질문”
2022-12-29
글 : 조현나

붉은 벽돌이 층층이 쌓인 가가린 주택단지 내엔 길고 너른 복도와 통로가 형성돼 있다. 10대 소년인 유리(알세니 바틸리)는 이 독특한 건물을 토양 삼아 우주 비행사의 꿈을 키워왔다. 때문에 철거를 앞둔 상황에서도 건물에 남은 유일한 주민으로서 그곳을 자신만의 우주선으로 꾸며나가기에 이른다. 파니 리에타르, 제레미 투루일 감독이 연출한 <가가린>은 제73회 칸영화제 공식 선정작으로, 버려진 삶의 터전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10대 소년의 분투기를 그린다. 주인공 유리는 우주에 고립된 SF영화 속 인물들을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파리 외곽의 주거 문제를 고발하는 주체로서 기능한다. 파니 리에타르, 제레미 투루일 감독은 앞으로도 “이주와 기후 같은 사회문제를 다루되, 관점을 살짝 바꿔 희망과 인류애가 가득한 영화를 만들어내고 싶다”며 꼼꼼하게 작성한 서면 답변지를 보내왔다.

-어떻게 함께 영화 작업을 하게 됐나.

=18살 때 대학교에서 만났다. 함께 정치학부에서 공부하다 남아메리카로 교환학생을 떠났는데 그곳에서 마술적 사실주의에 매료됐다. 그곳에서의 경험이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욕망으로 이어졌고, 몇년 뒤 시나리오와 연출을 짧게 공부할 기회가 주어졌다. 이후 파리로 돌아와 2015년에 함께한 작업이 단편 <가가린>이다.

-처음엔 가가린 주택단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의뢰받았던 것으로 안다. 그 계획이 15분짜리 단편 SF <가가린>으로, 그리고 두 감독의 첫 장편인 <가가린>으로 점차 변화한 셈인데 어떤 과정을 통해 이야기가 확장됐나.

=말한 대로 처음엔 가가린 주택단지 주민들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현장을 방문했다. 막상 단지에 도착하니 엄청난 건축물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고, 단지의 주민들과 역사(가가린 주택단지는 1960년대 러시아 최초의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의 이름을 따 지어졌다.-편집자)를 알게 되면서 극영화 배경지로 적격이라 느꼈다. 계획을 바꿔 단편영화를 준비하면서 주택단지에서 6개월을 보냈는데 이때 주민들과 친구가 됐다. 그들에게서 가가린 주택단지에서의 삶과 이곳을 떠나는 심경에 관해 들었고 단편을 완성한 뒤에도 그 이야기를 관객에게 더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SF영화의 장르적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유리의 상상력과 현실적인 사회문제를 동시에 다루기엔 <가가린>을 장편화하는 것이 좋겠다고 결론내렸다.

-오프닝에서 가가린 주택단지를 미학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인상적이다. 해당 건물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영감을 받았나.

=가가린 주택단지는 350세대에 350가구가 거주함에도 모든 집이 다 똑같아 보인다는 게 특징이다. 하지만 개인의 삶과 역사에 따라 집 내부는 다양한 모습을 띤다. 그 자체가 아름답게 느껴지더라. 사람들이 남겨두고 간 벽의 그림과 음식 같은 것들이 유리의 집을 구성할 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사람들이 떠난 주택단지는 텅 빈 거대한 선박처럼 보였다. 긴 복도를 지닌 이 독특한 붉은 벽돌 건물이 유리가 꿈속의 우주선을 재현하는 데에도 큰 영감을 줬을 거라 봤다.

-혼자 남겨진 상황에서의 외로움과 우주에서 느끼는 외로움을 교집화한 점이 흥미로웠다. 이 아이디어는 어떻게 시작됐나.

=하늘의 별들을 올려다보며 이 광활한 우주 속에 있는 스스로를 정말 작은 존재라 느끼는 건 굉장히 보편적인 감정이다. 가가린 주택단지와 같은 건물에 사는 사람들의 감정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수천명의 이웃에 둘러싸여 있음에도 엄청난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유리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그가 이렇게 외로워한다는 것을 모르거나, 혹은 그의 이웃들만이 유리의 외로움을 깨달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지역적인 문제였던 가가린 주택단지의 이야기를 보편적인 이야기로 발전시키고 싶었다.

-가가린 주택단지의 주민들이 실제로 촬영에 참여했나.

=영화 속 거의 모든 곳에 등장한다. 건물 계단에 앉아 있거나 지붕 위에서 춤추던 사람들, 개기일식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등장한 수많은 이들이 실제 주민들이다. 그들이 영화에 등장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겐 중요한 문제였다. <가가린>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동네의 커뮤니티 하우스(공용 공간)에서 시나리오 및 연출 워크숍을 몇 차례 진행했는데, 그때 참여한 사람들이 영화 제작팀에도 참여했다.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주택단지를 방문하거나 실제로 로켓을 쏘아올리는 등의 푸티지를 활용한 이유가 있다면.

=우리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방식으로 극영화를 만들어갔다. 이러한 아카이브 영상들이 <가가린>에 현실적인 측면을 부여해주었다. 그중 유리 가가린이 주택단지를 방문하는 푸티지는 무척 중요했다. 왜냐하면 그 아카이브 영상은 1960년대 공동 주택단지들이 상징했던 모든 유토피아, 가령 연대하는 삶, 주민들의 열기와 소셜 믹스(아파트 내 일반 분양 아파트와 공공임대 아파트를 함께 조성하는 것.-편집자) 등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영상은 과연 오늘날의 사회적 그리고 건축적인 유토피아는 무엇인지 우리에게 질문을 건넨다.

-알세니 바틸리를 두고 ‘상상했던 유리와 완전히 반대되는 모습’이라고 말했던데, 그럼에도 그를 유리 역에 캐스팅했다.

=우리는 유리가 10대 소년이라고 상상하며 시나리오를 썼지만, 알세니 바틸리는 17살임에도 10대 소년보다는 슈퍼히어로 같은 성인의 이미지였다. 하지만 눈과 미소만 놓고 보자면 영락없는 소년이었다. 그런 알세니 바틸리의 특성이 유리라는 캐릭터에 반영됐다. 그가 지닌 순수함이 유리의 꿈에 영향을 주고, 그가 가진 에너지가 유리의 모험에 힘을 실어주는 식으로 말이다.

-유리는 “네 꿈은 뭐야, 너 여기서 평생 살 거야?”라고 묻는 다이아나(리나 쿠드리)의 물음에 끝내 대답하지 않는다. 그 장면을 보면서 유리의 속마음이 궁금해졌다.

=유리는 그 질문을 받은 순간에 그렇다고 대답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 관객은 그게 유리의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의 진짜 꿈은 우주로 여행을 가는 것이니까. 어쩌면 유리는 솔직하게 답하기엔 자신의 꿈이 너무 크고 비현실적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유리가 주택단지 내부를 우주선과 유사하게 꾸미고 그 안에 혼자 남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의 꿈을 따르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우주에 매료됐지만 실제 세상은 당연하게도 우주와 전혀 다르다. 그래서 자신이 건물에 남은 유일한 주민이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주택단지를 그만의 놀이터로 만든 것이다. 건물 내의 긴 복도를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채우며, 유리는 가가린 주택단지를 자신만의 우주선으로 만들어나갔다.

-건물 안을 마치 우주선 속 무중력 상태처럼 구현해냈다. 촬영 과정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

=촬영하는 동안 가장 어려우면서도 즐거웠던 장면이다. 우리는 그린 스크린이 아닌 실제 건물에서 촬영하기로 결정했고 무중력 상태의 신들을 일일이 스토리보드로 그렸다. 이 장면이 최대한 실제처럼 보이길 원했기 때문에 어떤 공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구체적으로 정할 필요가 있었다. 알세니 바틸리는 무중력이 신체와 몸의 움직임,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수업을 수강했고 특수효과팀은 유리가 복도와 계단을 날아다니듯 연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리고 태양빛이 우주선을 한 바퀴 돌아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을 주택단지 내에서 연출하기 위해 모든 팀이 조명에 공을 들였다.

-전반적으로 빛 사용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중 조명에 가장 신경을 쓴 건 역시 영화 후반부에 주택단지에서 빛이 뿜어져나오는 장면일 테다.

=유리의 꿈꾸는 우주의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선 조명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했다. 이는 유리가 자신과 건물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일종의 SOS 신호였기 때문이다. 이 SOS 신호는 어둠을 밝히며 “가가린 주택단지와 같은 건물들, 그 속에 사는 주민들, 특히 ‘청소년들을 보호해줘, 우리를 버리지 말고 지켜줘’”라고 외친다. 이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200여명의 주민들이 다시 주택단지를 찾았고 이들의 얼굴이 건물의 불빛으로 인해 반짝였다. 주민들이 거의 처음으로 자신의 옛 터전 앞에서 다시 만난 날이었는데 이 모든 에너지들이 마지막 장면을 만들어내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가가린>을 통해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나.

=공동 주택단지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관해 다른 시각과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유리가 대표하는 젊은 세대의 꿈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지길 바란다.

-예정된 차기작이 있나.

=두편의 새로운 장편을 함께 작업 중이다. 하나는 어린이들이 주인공인 프랑스 배경의 영화고, 다른 하나는 미국 배경의 SF영화다.

사진제공 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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