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인터뷰] ‘카지노’ 강윤성 감독, “카지노는 모든 욕망의 집합체”
2022-12-29
글 : 임수연
사진 : 최성열

<범죄도시>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의 강윤성 감독이 생애 첫 시리즈를 연출했다. <카지노>는 최민식이 연기하는 차무식의 일대기를 정직하게 따라가는 정직한 구성을 취한다. 필리핀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된 차무식의 현재를 먼저 보여준 후, 불우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그의 삶의 궤적을 꼼꼼하게 되짚는다. 고아원, 교도소, 특수부대 등을 거치며 거칠게 살아왔지만 타고난 머리로 영어 강사가 돼 새로운 인생을 살던 차무식이 필리핀 최고의 호텔 카지노를 거느리는 거물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다는 것이 강윤성 감독의 설명이다. 따로 보조 작가를 두지 않고 직접 각본을 쓰고 드라마를 연출한 강윤성 감독을 만났다. 12월21일 디즈니+에서 시즌1의 1~3화를 공개한 <카지노>의 남은 회차는 매주 1편씩 공개된다.

- <범죄도시>에 이어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 그리고 <카지노>까지 차기작 텀이 길지 않다. 이번 작품은 어떻게 시작됐나.

= 2019년 지인의 소개로 카지노에서 근무하는 분을 만났다. 카지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인간이 어떻게 도박에 빠지게 되는지 전해 들었는데 그 내용이 무척 흥미로웠다. 호기심이 생겨 카지노의 세계를 심층 취재하다 보니 영화로 풀기에는 방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17부작 포맷으로 대본을 썼는데 일반적인 한국 드라마 경향에 맞춰 16부로 분량을 줄였다.

- 2시간짜리 영화를 만들다 처음 16부작 드라마를 준비해보니 어땠나. 디벨롭 과정에서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 전체 구성을 짜는 것부터 시작해 혼자 각본 작업을 하다 보니 앞부분에 등장했던 캐릭터 이름을 혼동한다거나 종종 헷갈릴 때가 있었다. 차무식을 중심으로 여러 캐릭터를 집중력 있게 정리하면서 전체 스토리를 하나의 맥락으로 갖고 가는 데 공을 많이 들였다. 전체 줄거리가 흐트러지지 않는 선에서 다음 회를 보고 싶게 만드는 클리프행어를 만드는 것도 신경 썼다.

- 사실 제목만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작품은 마틴 스코세이지의 <카지노>였다. 실제로 영향을 받았나.

= 부끄럽지만 보지 못했던 작품이다. 왠지 이런 질문이 나올 것 같아서 후반작업 중에 봤다. (웃음)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흡인력 있게 만들어진 대가의 작품이었다. 특정 작품을 벤치마킹하진 않았지만 평소 <나르코스> <브레이킹 배드> 같은 드라마를 좋아해서 그런 취향이 영향을 줬을 수도 있다. <카지노>를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목표는 리얼리티였다. 시청자들이 이런 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게끔 만들기 위해 가능한 한 필리핀에서 많이 촬영했다.

- 3개월여의 필리핀 촬영을 포함해 6개월여 만에 시즌1과 시즌2, 총 16부의 촬영을 모두 마쳤다고. 프로덕션을 굉장히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가능한 일이다.

= 시즌별로 나눠 촬영하면 시간과 비용이 더 들기 때문에 한꺼번에 찍는 방향으로 준비했다. TV드라마 경험이 있는 연출부와 제작부를 구성해 프로덕션 진행에 굉장히 큰 도움을 받았다. <인간실격>을 했던 연출부라서 드라마 PD와 영화감독의 차이에 대한 이해도도 높았다. 리얼리티 있게 장면을 뽑아내기만 한다면 굳이 더 많이 찍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으로 촬영했다. 전반적으로 하루에 찍어야 할 신이 많다는 것 외에는 영화와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 코로나19로 해외 촬영이 어려워지면서 국내 로케이션으로 대체하는 프로젝트도 많은데, 필리핀 현지 촬영을 고집한 이유는 무엇인가.

= 전부 한국에서 작업하는 방안도 생각했지만 작품 특성상 CG와 프로덕션 디자인의 힘만으로는 필리핀인 척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실제 로케이션이 배우에게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 어찌됐든 무조건 필리핀에서 촬영해야 했는데 다행히 필리핀 촬영을 시작한 3월부터 현지 상황이 잘 받쳐줬다. 총 124회차 만에 촬영을 끝냈다.

- 시리즈물은 초반에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야 한다는 흥행 법칙이 있는데, 첫주 공개되는 3화까지 차무식의 젊은 시절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이런 구성을 밀어붙인 이유가 있나.

= 차무식이 어떻게 살아온 인물인지 설명되지 않으면 그 뒤의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주인공의 백그라운드가 들어가야 그가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왜 도박을 하게 됐는지, 필리핀까지 간 이유가 무엇인지 납득할 수 있다.

- 동시에 명백한 범죄를 저지른 주인공으로부터 적당한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고민이 있었겠다.

= 차무식은 평범한 사람들을 카지노에 빠지게 한 뒤 돈을 탕진하게 하는 나쁜 사람이다. 그런데 주인공이 꼭 정의로울 필요는 없다. 어떤 인물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보여주면서도 충분히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 차무식은 단순한 악역이 아니다. 어떤 이에게는 믿고 따르고 싶게 만드는 형일 수도 있다. 그리고 에피소드마다 차무식을 중심으로 그에게 도전하려는 이들이 생겨난다. 카지노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에 대처하는 차무식의 지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첫회에 언급되는 차무식의 살인 역시 변곡점일 뿐이지 이야기 전체를 끌고 가는 사건은 아니다.

- 그렇다면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도 선악 구도와는 거리가 멀겠다.

= <카지노>는 모든 욕망의 집합체라 할 수 있는, 카지노라는 램프에 몰려드는 불나방들의 이야기다. 다양한 인간 군상의 욕망을 담아 그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에피소드마다 다양한 인물들이 나온다. 대본을 쓰면서 이름 있는 캐릭터가 몇명인지 세어보니 170명이었다. 그들은 극중 짧게 혹은 길게 등장한다. 차무식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따라가면 중간중간 놓치는 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궤적을 쫓아가는 데는 무리가 없다.

- 최민식은 드라마 <사랑과 이별> 이후 무려 25년 만에 드라마에 출연한다. 어떻게 성사된 캐스팅인가.

= 원래 최민식 선배님과 준비하던 영화가 있었는데 외부적인 요인 때문에 중단됐다. 선배님이 “이렇게 헤어질 수는 없다. 다른 작품은 없느냐”고 물었다. 그때 써놨던 <카지노> 대본을 드렸다. 며칠도 안돼 바로 하겠다고 하셨다. 아무래도 차무식이 여러 풍파를 겪으며 다양한 감정선을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라 매력을 느끼신 게 아닌가 싶다. 촬영 스케줄이 빡빡했음에도 불구하고 묵묵하게 촬영에 임하는 모습을 보며 정말 대단한 프로라고 느꼈다.

- 첫주 공개되는 회차에는 손석구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가 맡은 파견 경찰 코리안 데스크 오승훈은 어떤 인물인가.

= 실제 필리핀에서 한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많이 발생하면서 이를 담당할 코리안 데스크가 만들어졌다. 코리안 데스크로 필리핀에 파견나갔던 실제 인물을 취재한 후 픽션을 가미해 완성한 캐릭터다. 차무식과 오승훈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엮이기 시작하면서 불편한 관계가 된다. 그들의 갈등은 후반으로 갈수록 더욱더 극으로 치닫게 된다.

- 최민식, 손석구, 이동휘 등 배우들과의 작업은 어땠나.

= 필리핀에서 3개월가량 같은 호텔에서 합숙하다시피하면서 촬영했다. 작품과 캐릭터를 연구하고 서로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면서 극중 인물들이 더욱 사실적으로 구현되는 놀라운 과정을 경험했다. 오승훈은 정말 코리안 데스크 같은 형사가, 정팔(이동휘)은 진짜로 카지노에서 일할 법한 에이전트가 된 것이다. 감독으로서도 굉장히 뿌듯하고 앞으로 또 경험해보지 못할 소중한 시간이었다.

- <카지노> 이후 준비 중인 작품이 있나.

= OTT 시리즈는 표현 수위에 제약이 없어서 영화와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영화와 드라마는 서로 다른 매력을 갖고 있다. 전자는 이야기를 축약하다 보니 익숙한 것이 반복되는 경우도 생기고 흥행 로직도 따라야 하는데, 시리즈는 인물을 깊이 있게 구축하고 원하는 것을 다양하게 해볼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시리즈물을 한편 더 하면 긴 호흡에 더 익숙해질 수 있지 않을까. 차기작도 시리즈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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