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비평] ‘영웅’, 영화적 상상력의 부재
2023-01-11
글 : 홍은애 (영화평론가)

영화란 무엇인가. 새삼스럽게 원론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은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의 마지막 1년을 담은 동명의 뮤지컬을 각색한 뮤지컬영화 <영웅> 덕분이다. 영상 예술인 영화는 소설, 연극, 만화, 웹툰, 뮤지컬에 이르기까지 다른 많은 장르의 원작을 영화화한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 뮤지컬영화가 별로 제작되지 못하는 것은 뮤지컬(현장성)과 영화(스크린을 통해 전달)의 관람 형태 때문일 것이다. 이는 그만큼 영화에서 대사를 노래로 전달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본격적인 뮤지컬영화가 시도된 것은 2006년 뮤지컬과 호러를 접목한 <삼거리 극장>(감독 전계수)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참신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호응을 얻지 못했다. 이후 한동안 침체기를 겪다 올해 이례적으로 ‘국내 최초’를 표방한 두편의 뮤지컬영화가 등장했다. ‘주크박스’ 뮤지컬영화인 <인생은 아름다워>(감독 최국희, 2022)와 ‘오리지널 원작’ 뮤지컬영화인 윤제균 감독의 <영웅>(2022)이다. <영웅>이 가진 ‘국내 최초 오리지널 원작 뮤지컬영화’의 인장은 뜻깊다. 여기에 한국영화 최초 현장 라이브 녹음, 영화에 맞춰 재편곡된 넘버까지 추가된다. 과연 이 영화는 척박한 한국 뮤지컬영화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까. 지금부터 이 영화의 아쉬운 점을 몇 가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오프닝 시퀀스에서 장소가 더 부각됐더라면…

영화는 서곡인 <장부가>의 웅장한 멜로디와 함께 눈덮인 광활한 시베리아 벌판과 그곳을 힘겹게 걸어가는 안중근(정성화)의 모습을 부감숏(하이앵글)으로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영화가 시작되는 장소는 러시아 연추 자작나무 숲이다. 그렇다면 안중근은 왜 이 장소를 선택했을까. 안중근 의사는 이미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인물이라고 할지라도 그를 포함한 12명의 동지가 단지동맹을 맺는 이 장소는 관객의 입장에서 단순히 넘버 <단지동맹>을 듣게 되는 장소가 아니라 이 장소여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영화의 스토리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됐어야 했다. <쉘부르의 우산>(감독 자크 드미, 1964)의 오프닝 시퀀스를 살펴보자. 영화는 배경이 되는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지방의 작은 항구도시 쉘부르의 모습을 보여주는 전경에서 시작해 비가 내리고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한동안 부감숏으로 보여준다. 또 다른 영화인 1961년 버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감독 로버트 와이즈, 제롬 로빈스)에서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뉴욕 시내를 따라 카메라가 천천히 이동(부감숏)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러한 오프닝은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한 2021년 버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도 거의 비슷하게 등장한다. 이처럼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바로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관객이 뮤지컬영화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한 장치가 아닐까. <영웅>의 오프닝에서도 관객이 안중근의 넘버를 듣기 전에 어느 정도 시간이 확보되고 자작나무 숲이 갖는 상징성이 부각됐다면 관객은 그가 부르는 넘버에 자연스럽게 동화됐을 것이다.

두 번째, 전투 장면이나 도주 장면이 없었다면…

안중근은 독립군 대장으로서 2개의 전투를 지휘한다. 첫 전투에서 일본군 포로를 석방해주는 바람에 대규모 일본군의 기습 공격을 받고 두 번째 회령 전투에서 안중근의 부대는 참패한다. 영화는 이 두 전투 장면을 ‘스펙터클’하게 재현한다. 특히 회령 전투에서 안중근이 진지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슬로모션으로 보여준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그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간다. 이곳에서 동지들을 만나고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할 계획을 세운다. 이때 일본인 형사가 이들을 발견해 추격하고 안중근과 동지들은 필사적으로 도주한다. 영화는 이 장면에서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 ‘속도감’에 ‘코믹함’까지 더한다. 하지만 두 장면에서 관객이 기대한 것은 단순한 볼거리가 아닐 것이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안중근은 무엇을 했는가. 단순히 일본군에게 총을 쏘고, 안 잡히게 도망가면 되는 것이었을까. 뮤지컬영화는 아니지만 프랑스혁명이 배경인 <영국 여인과 공작>(감독 에릭 로메르, 2001)의 경우를 보자. <프랑스혁명 중 나의 일기>를 각색한 이 작품은 모든 장면에 주인공 그레이스를 등장시켜 마치 그의 일기를 보고 있는 것처럼 연출한다. 게다가 군주제를 옹호한 귀족들이 처형당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카메라가 단두대의 역할을 한다. 귀족들이 한 사람씩 카메라를 향해 앞으로 걸어나오고 인물의 목이 보이는 장면에서 멈춘다. 만약 이 장면에서 단두대가 등장하고 귀족들의 목이 하나씩 잘려나가는, 피가 낭자한 처형 장면을 그대로 보여줬다면 이 장면에서 서늘한 공포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을까. 이 장면이야말로 영화의 상상력이 발휘되는 순간일 것이다.

세 번째, 안중근과 설희가 아는 사이였다면…

궁녀였던 설희(김고은)는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현장의 참상을 목격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독립군에 정보를 제공하는 첩보원 역할을 하게 되고 영화에서 3곡의 넘버를 부른다. 명성황후를 향한 그녀의 애절한 노래가 관객의 마음에 와닿으려면 명성황후뿐만 아니라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감정이 추가됐어야 했다. <쉘부르의 우산>처럼 대부분의 뮤지컬영화가 로맨스 장르이거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처럼 로맨스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더라도 사랑의 간절함이 영화의 기조에 깔려 있기 때문에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쉬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안중근과 설희의 로맨스가 있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두 사람이 아는 사이고 설희가 안중근을 존경하고, 안중근이 설희에게 고마워하는 등 두 사람의 마음을 보여줬다면 영화에서 설희의 장면이 등장했을 때 관객은 더 공감했을 것이다.

영화에서 안중근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고 그의 외침에 공감할 수 있는 장면은 어떤 장면인가. 이 질문에 선뜻 답변할 수 없는 것은 영화가 충분히 그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화려한 볼거리에, 생동감 넘치는 현장 녹음의 노래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장소 또한 안중근의 이야기와 얼마나 잘 조화를 이루는가도 중요하다. 여기서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기 위해 사전에 하얼빈역을 방문하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이 역에서 안중근은 무엇을 했는가. 역 안으로 들어가는 그의 모습을 본 것이 전부다. 마진주(박진주)가 일본인 형사를 발견하고 안중근을 구하기 위해 대신 형사의 총에 맞고 독립군 막내 유동하(이현우)가 그런 마진주를 보고 형사에게 총을 쏴 그를 살해한 뒤에야 안중근이 등장해서 이들을 발견한다. 왜 영화는 이런 안중근의 모습만 보여주는가. 결국 영화에서 관객이 만나게 되는 안중근은 말(노래)과 행동이 불일치한 인물이 되고 말았다. 언제쯤 나는 감응을 느낄 수 있는 한국 뮤지컬영화를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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