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잊었으니까>
디즈니+
추리소설 작가 M(아베 히로시)은 거의 모든 일상을바 ‘등대’에서 소모한다. 그러니 <모두 잊었으니까> 의 주 배경 역시 바 등대가 된다. 등대에 모이는 M 과 직원, 손님들의 작은 이야기가 촘촘하게 엮이면서 묘한 서사의 리듬이 일렁이는 식이다. 메인 플롯은 분명 M의 여자 친구인 F의 실종인데 이야기는 자꾸 중심에서 벗어나 주변 인물들의 서브플롯을 파편적으로 진행한다. 또 매회 마지막을 실제 뮤지 션들의 라이브 공연으로 꾸리면서 이야기의 막간에 의도적으로 강세를 두기도 한다. 꼭 무위의 미스 터리물이라고 부르고 싶어지는 독특한 작법이 매력적이다. 16mm 필름으로 촬영한 화면의 아날로그 질감도 시리즈의 기묘함을 더하는 데 착실히 일조한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공동 각본가인 오에 다카마사가 연출과 각본에 참여했다.
<영상연에는 손대지 마!>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외
최근 <견왕: 이누오>로 한국을 찾았던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의 TV애니메이션 연출작이다.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삼았으며, 3명의 여고생이 영상 동아리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세계관 설정과 연출을 맡은 아사쿠사, 애니메이터 역할의 미즈사키가 열혈물에 가까운 열정으로 애니메이션 제작에 몸을 불사른다. 반면 다른 한명의 동아리원 카나모리의 성격은 무척 상이하다. 냉철한 판단력과 명민한 수지타산으로 아사쿠사와 미즈사키의 창작욕을 현실적인 수준에 타협해가는 인물로서 애니메이션 제작자의 위치를 도맡는다. 다양한 그림체를 혼합해 애니메이션 속 애니메이션을 환상적인 작화로 구현하고 매회 아니메 업계에 관한 전문 지식이 분출된다. 애니메이션 팬이라면 환영할 만한 작품이다.
<페일 블루 아이>
넷플릭스
작가 에드거 앨런 포의 생애를 바탕으로 그려낸 팩션 소설을 각색했다. 골자는 그가 미국 육군사관학교에 다녔다는 실제 역사다. 여기에 기괴한 수법의 연쇄 살인이 발생했다는 허구를 가미한다. 크리스천 베일이 과거에 명성을 떨쳤던 전직 형사 랜도를 연기한다. 랜도와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생도 E. A. 포는 <해리 포터>의 악동 더들리 더즐리로 데뷔한 이래 최근 <카우보이의 노래> 등에서 연기력을 입증한 해리 멜링이 맡았다. 사건을 추리해가는 과정 군데군데에 헐거운 지점이나 편의적인 전개가 드러난다. 대신 촬영, 조명 프로덕션이 안정적이고 탁월하다. 와이드스크린을 가득 메우는 설원의 정경, 화면비를 적절히 활용한 인물들의 대화 장면이 그렇다. 또 시대 배경에 알맞게 촛불이나 등불, 자연광으로 빛을 통제하는 방식도 유려하다.
<잠적: 김민하>
왓챠, 웨이브, 티빙
한명의 연예인을 필두로 여행지의 구석구석을 탐방하는 시리즈 콘텐츠다. 배우 김영철이 출연했던 다큐멘터리 방송이 떠오르는 형식이다. 여기에 디스커버리 채널 코리아가 제작한 콘텐츠답게 풍성하고 아름다운 영상미가 더해진다. 콘텐츠의 신선함이나 재미를 챙기기보다는 배우의 본연적인 이미지, 즉 화면 가득 담기는 배우들의 얼굴이 시청자의 심상을 자극하는 쪽이다. 그렇기에 지금껏 등장한 김다미, 한지민, 김희애 등 굴지의 배우 중에서도 단연 이목을 끄는 회차는 김민하 편이다. 그의 수수하고 티 없는 일상에 자연스럽게 <파친코>의 선자가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마치 현대에 환생한 듯한 선자가 하동의 관광지를 돌아다니고 숙소에서 닭볶음탕을 만들어 먹는 모습이 신비로운 감각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