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1967년 <청춘극장>으로 데뷔 2010년 이창동 감독 <시>로 주목 말년 알츠하이머로 투병
배우 윤정희가 19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별세했다. 향년 78. 1960~70년대 은막의 스타로 크게 사랑받았던 고인은 알츠하이머병을 앓으며 투병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활동을 중단한 지 16년 만인 지난 2010년에 스크린 복귀작인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로 칸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으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윤정희는 1944년 부산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성장했다. 대학에 재학 중이던 1966년 합동영화사 주최의 신인배우 공모전에 참가해 1200 대 1의 경쟁을 뚫고 배우로 선발됐다. 김래성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 <청춘극장>(1967)로 데뷔해 그해 대종상과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하며 단숨에 스타의 자리에 올랐다. 그후 해마다 30여편이 넘는 영화를 찍으며 문희, 남정임과 함께 1960년대 ‘트로이카’로 불렸다.
<강명화>(1967), <아빠 안녕>(1968), <물망초>(1969) 등의 멜로드라마, <안개>(1967), <까치소리>(1967), <장군의 수염>(1968) 등의 문예영화(예술영화), <그 여자를 쫓아라>(1970), <황금70 홍콩작전>(1970) 등의 액션물, <내시>(1968), <이조 여인잔혹사>(1969) 등 사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 출연하며 한국영화계를 이끌었다. 고인은 영화배우로 바쁘게 지내면서도 대학 졸업 후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대학원에 진학해 한국 여배우들의 변천사와 영화적 의미를 분석하는 논문을 써, 여성 배우 가운데 국내에서 처음으로 석사 학위를 딴 학구적인 배우이기도 했다. 1973년에는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 방학 때 귀국해 영화를 촬영하면서 학업과 영화 이력을 병행해 쌓아갔다.
고인은 1976년 프랑스에서 만난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결혼해 잠정 은퇴하고 파리3대학에서 영화 공부를 이어나갔다. 이후 <자유부인>(1981), <위기의 여자>(1987) 등 몇 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1994년 엄종선 감독의 <만무방>에 출연하며 두번째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탔다. 이후 16년 동안 영화 활동을 중단했다가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시>에서 시를 쓰고 싶어하는 가난한 노년의 여성으로 출연해 관객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 이 작품으로 세번째 대종상을 수상했으며 칸국제영화제에서 레드카펫을 밟았다.
2019년 백건우씨의 인터뷰를 통해 10여년째 알츠하이머 투병 중이라는 사실이 공개됐으며 2022년에는 한국에 있는 형제들이 백건우씨와 딸에게 후견인 지위 이의 신청 소송을 하고 백씨는 형제들이 연주비를 횡령했다고 고소하는 등 가족 간의 오랜 갈등이 알려지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남편 백씨와 딸 진희씨가 있다.
한겨레 김은형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