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의 의상
조희란 의상감독은 현지인의 의상을 제작하기 위해 다양하게 자료조사를 했다. “아프가니스탄 사진 작가들의 사진집을 주로 참고해 패턴, 자수 등 디테일을 추가했다. 팬데믹이라 원단과 소품 등은 주로 직구했고, 이태원의 이슬람 매장을 통해 구매대행을 했다. 카심은 페르한(긴 셔츠 형태에 바지와 세트로 입는 아프가니스탄 전통복)을 입히되 캐릭터 티셔츠 같은 것들을 믹스매치했다. 캐릭터가 밝아서 너무 가벼워 보일까봐 옷의 컬러엔 무게감을 줬다. 아프가니스탄은 계급별로 의상이 다르다. 가령 상층 계급은 주로 흰색의 옷을 입고 터번도 은사, 금사가 섞인 실크를 쓴다. 탈레반도 마찬가지라 지도자들은 흰색 옷을, 군인과 같은 낮은 계급은 어두운 색 옷을 입어 그에 맞춰 의상을 제작했다.”(조희란 의상감독)
자살 폭탄 테러 신
아프가니스탄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교섭단은 시장에서 자살 테러범과 마주한다. “특수효과팀, 무술팀, CG팀, 촬영팀, 미술팀이 전부 참여해 수많은 회의를 거쳤다. 스탭들, 배우들을 포함해 600~700명이 모인 큰 규모의 액션 신이었다.”(문영화 프로듀서) “현지의 느낌이 제대로 나지 않으면 국내 거리를 속여 찍는 느낌밖에 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시장의 음식도 아프가니스탄의 주식들로 갖추고 미군 차량과 구급차 등 30~40여대의 차량을 구해 당시 고증을 따라 하나하나 다 도색하고 배치했다.”(김병한 미술감독) “폭탄이 터지고 재호가 쓰러진 뒤, 그리고 다시 일어나 현장을 바라볼 때 세팅에 변화를 줘야 했다. 촬영과 미술팀의 세팅이 번갈아 진행됐기에 상황이 정신없이 흘러갔다.”(이승훈 촬영감독)
재호와 대식의 의상
“재호의 주된 의상은 정장이었고 인텔리하고 댄디한 외교관의 느낌을 주려 했다. 현지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기 때문에 의상을 자주 갈아입지 않는다는 설정도 있었다. 다만 폭탄 테러를 겪은 후 신발을 운동화로 갈아 신는 등의 변화가 생긴다. 대식은 의상을 준비하기 쉽지 않았다. 거칠고 정해진 룰이 없는 캐릭터인 데다 국정원 요원이기 때문에 주로 어두운 컬러의 가벼운 의상을 입히고, 건조하고 빛이 강한 현지 기후를 고려해 의상의 원단에 워싱을 많이 가미했다.”(조희란 의상감독)
대식의 오토바이 추격 신
“압둘라와 재호가 협상하는 장면부터 대식의 오토바이 추격 신까지 5일 정도를 촬영했다. 특히 대식의 오토바이 액션 신은 무술감독님, 촬영감독님이 카메라 포인트를 전부 잡아두고 동선도 정확히 짠 뒤에 회차별로 통제구역을 나눠 순차적으로 진행했다.”(문영화 프로듀서) “촬영 때 드론과 스콜피오암차가 필요했는데, 현지에 스콜피오암이 없어서 대신 한국에서 그와 비슷한 모토크레인을 준비해갔다. 비포장도로에 흙바닥이라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는데 현빈씨가 오토바이를 너무 잘 탔다. 직접 타는 장면을 찍을 수 있어서 크로마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살렸다. 모래바람이 불고 먼지가 날리는 거친 질감이 카메라에 담기길 원했는데 워낙 건조해서 차가 조금만 달려도 그런 느낌을 어렵지 않게 낼 수 있었다.”(이승훈 촬영감독)
‘교섭’이 진행된 동굴
“원래 후반부의 교섭 장면을 현지의 케락성에서 찍으려고 했는데 유명 관광지라 미술 세팅도 어렵고 촬영에 제한도 있었다. 그래서 탈레반과 교섭단이 성의 지하로 들어가 동굴로 향하는 장면은 실제 케락성에서 찍되, 동굴은 세트로 구현해야 했다.”(문영화 프로듀서) “혹시 몰라서 헌팅 때 동굴 사진을 최대한 많이 찍고 실측도 해오긴 했었다. 실제 동굴의 느낌을 잘 살리는 게 관건이었다. 때문에 한국에서 공수한 돌들을 깎아 현지 돌의 질감을 표현하려고 했다.”(김병한 미술감독) “교섭 도중 시간이 흐르는 걸 보여주는 것 또한 중요했다. 그래서 케락성의 지붕쪽 깨진 돌틈 사이로 빛이 들어오는 것으로 시작해 재호의 얼굴로 노을이 비치는 등 빛의 변화로 시간 경과를 드러냈다.”(이승훈 촬영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