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트위터 스페이스] 다혜리의 작업실: 산문집 ‘문학이 필요한 시간’ 정여울 작가와의 대화
2023-01-27
진행 : 이다혜
정리 : 배동미
심리학을 통해 문학을 깊이 읽다

※ 스페이스는 트위터의 실시간 음성 대화 기능입니다. ‘다혜리의 작업실’은 다양한 분야에서 글을 쓰는 작가들을 초대해 그들의 작품 세계와 글쓰기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듣는 코너입니다. 스페이스는 실시간 방송이 끝난 뒤에도 다시 듣기가 가능합니다. (https://twitter.com/cine21_editor/status/1614983416025579520)

이다혜 @d_alicante ‘다혜리의 작업실’ 열여덟 번째 시간을 시작하겠습니다. 게스트는 에세이 <문학이 필요한 시간>을 쓰신 정여울 작가님입니다. 이 책은 고전문학부터 최근 몇년 동안 출간된 소설, 에세이, 그리고 문학의 경계에 있는 듯하지만 문학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는 작품들까지 아우르고 있습니다. 정여울 작가님, 이번 책은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정여울 @singingbird1871 문학으로 돌아오고 싶었어요. 문학평론을 할 때도 에세이적으로 자유로운 일상 속 대화라든지, 평론가답지 않은 뭔가를 쓰려 노력했거든요. 그런데 예전보다 문학작품을 사람들이 안읽으니까 문학을 읽게 만드는 게 너무 어려운 거예요. 시나 소설이나 문학적인 에세이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하려면 문학에 대한 글을 더 많이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다혜 @d_alicante 이번 책에 소개된 작품들이 정여울 작가가 오랫동안 읽어오고 아껴온 책일까 궁금했어요.

정여울 @singingbird1871 반은 제가 반복해서 읽는 책이고, 반은 독자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책들이에요. 책뿐만 아니라 영화나 여행에 대한 이야기나 일상 속 대화나 평소에 제가 아는 사람들과 대화 나누는 장면들도 일부러 넣었어요. 문학이 책 속에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어떤 순간 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왠지 문학작품 속 인물들과 대화하는 것 같을 때가 있어요. 그런 일상이나 영화나 이소라의 음악처럼,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순간에도 문학적인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 그리고 문학이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이다혜 @d_alicante 정여울 작가님의 최근 책들을 보면 문학과 심리학이 떨어지지 않고 단단히 묶여 있는 것 같은데요. 심리학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문학에 대한 이해로 확장되는지 궁금했습니다.

정여울 @singingbird1871 제 전공은 문학이고 따로 심리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심리학은 제게 제2의 전공 같아요. 심리학은 독학을 했어요. 책을 통해서 배운 게 다죠. 새로운 분야의 공부를 시작할 때마다 뭔가 배울 수 있어 너무 행복해요. 심리학의 프리즘을 통해 문학을 보면 훨씬 더 많은 걸 볼 수 있더라고요. 문학작품과 심리학은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 같기도 하고, 야누스의 얼굴 같기도 하고, 제 안의 이중인격 같기도 해요.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나 많은 말을 걸어주는 대화적 관계가 된 것 같습니다.

이다혜 @d_alicante 정여울 작가님은 헤르만 헤세 전문가인데요. 프롤로그 역시도 <데미안>의 한 대목을 인용하면서 시작하셨어요. “우리 마음속에는 모든 것을 다 알고 모든 것을 원하고 우리 자신보다 모든 것을 더 잘해내는 누군가가 살고 있어”라는 문장입니다. 정여울 작가님께 헤세가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여울 @singingbird1871 헤세는 원래도 좋아했지만 심리학을 공부하며 더 많이 보게된 것 같아요. 헤세가 40대 이후에 우울증이 굉장히 심해 융 심리학 테라피를 60회 이상 받았대요. 헤세가 <데미안>을 쓸 수 있었던 것도 융 심리학이 결정적인 것 같아요. <데미안> 이전 헤세의 작품을 보면, 캐릭터들이 고민을 많이 하긴 하지만 그 이유가 단순했고 작품 내용도 비슷했어요. 자전적이면서도 방랑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였죠. <데미안> 이후 헤세의 작품 세계는 엄청 바뀌어요. 인물의 고뇌와 그 안에서 들끓는 파도가 정말 복잡해져요. 그러면서 더 아름다워졌고 은유와 상징이 풍부해진 거죠. 융 심리학에서 ‘에고’와 ‘셀프’가 궁극적으로 하나가 되는 걸 ‘개성화’라고 해요. 사회적 자아인 에고를 연기할 필요 없이, 내가 생각하는 걸 사람들에게 표현해도 어색하지 않은 상태를 개성화된 상태라고 하는데, 헤세의 인물들은점점 개성화로 나아가요. <데미안>에서 자기 자신도 어쩌지 못했던 방황하던 청소년 싱클레어는 나중에 자살 위기의 친구를 구하죠. 자기를 치유하는 것도 모자라 남을 치유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소설 캐릭터로 보여준 거예요. 이런 점들을 알면, 작품이 더 아름답고 풍요롭게 보여요. 지금 이야기하면서도 다른 글을 써보고 싶을 정도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네요. (웃음)

이다혜 @d_alicante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에 대한 글은 <제인 에어>에서 시작합니다. 제인 에어의 모험과 투쟁에 열광하면서도 로체스터가 ‘다락방의 미친 아내’ 버사 메이슨을 방치하는 장면에서는 분노가 끓어오른다고 하셨는데요. 작가님께 독서라는 행위가 갖는 역동성이 이런 데 있지 않나 생각해요. 흔히 독서란 정적인 행위라고 생각하지만, 능동적으로 읽는 사람들에게 독서는 충분히 동적인 행위가 될 수 있거든요.

정여울 @singingbird1871 저는 문학을 살아낸다고 생각해요. 문학작품을 독서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 작품 속의 인물과 제가 정말 대화하는 느낌이고, 작품 속 인물을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그들이 제 안에 살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특히 그들을 닮고 싶고, 그들처럼 용기가 필요할 때 문학을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일상 속에서 움츠러들고 ‘내가 이런 행동을 해도 될까’ 의구심이 들 때, <작은 아씨들>의 조를 생각해요. 그럼 ‘조라면 분명 이런 순간에 나가서 뛰었을 거야, 나처럼 앉아 있는 게 아니라 뭔가를 실천했을 거야’ 생각이 들죠. 그렇게 내 안의 조가 나의 게으른 등을 떠밀곤 해요.

배동미의 책갈피

작가님에게 독서를 한다는 자의식을 처음 갖게 한 동화책은 뭔가요.

= <라푼젤>이요. <라푼젤>은 제 인생의 원형적인 트라우마, 충격이었고, 아름답고, 감동적이기도 했던 첫 번째 장면으로 남아 있어요.

읽고 있는 책이 조금 남았는데 잠이 쏟아질 때 작가님의 선택은? 1번, 자세를 고쳐 잡고 다 읽고 잔다. 2번, 다음날 맑은 정신으로 읽는다.

= 대체로 1번을 택하는 것 같아요. 책에 사로잡혀서요. 좋은 책은 졸려도, 힘들어도 계속 읽게 되더라고요.

요즘 작가님의 마음을 흔든 영화가 있다면 한편 소개해주세요.

= <양자경의 더 모든 날 모든 순간>! 세번쯤 더 보고 싶은 작품이에요.지금 양자경이 만 60살쯤 됐죠. 60대에 저런 영화를 찍다니 너무 멋지고 대단하고 아름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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