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바빌론’, 광기를 표현해낸 광기, 그 후에 느껴지는 애잔함
2023-02-03
글 : 김철홍 (평론가)

“대단한 일을 하고 싶어요. 영원하고 의미 있는 일을.” LA의 한 파티장에서 심부름을 하고 있는 멕시코인 매니(디에고 칼바)는 영화산업 종사자가 되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 때는 할리우드 무성영화의 인기가 절정에 다다른 1926년.

한 호화 저택에서 난잡한 파티가 열리는 와중에 매니는 영화 관계자를 찾아다니며 일자리를 구하는 중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배우 지망생인 넬리(마고 로비)를 만나 서로의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경력은 없지만 자신감만큼은 이미 스타인 넬리는 그 파티에서 우연한 계기로 작은 역할에 캐스팅된 후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그 모습을 쓸쓸히 지켜보던 매니에게도 뜻밖의 기회가 생긴다. 파티를 찾은 당대 최고의 영화배우인 잭(브래드 피트)의 눈에 들어, 촬영장의 뒤치다꺼리를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세 인물은 각자의 위치에서 마법 같은 무성영화의 수혜를 누리게 되지만, 셋의 황금기는 오래가지 못한다. 1년 만인 1927년에 최초의 유성영화가 개봉함에 따라 할리우드의 제작 시스템에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5년 만의 신작인 <바빌론>은 매니와 넬리, 그리고 잭의 시점을 통해 1920년대에서 30년대로 넘어가는 시기의 할리우드를 그려낸다. 그중에서도 셔젤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토키(talkie)영화의 발전에 따른 변화들이다. <바빌론>은 영화 촬영 현장과 촬영을 마친 영화인들이 벌이는 파티가 번갈아 나오는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극이 진행됨에 따라 변화하는 촬영장 모습과 파티장의 모습을 비교해보는 것이 극의 주요 관람 포인트다. 셔젤이 특히 애정을 기울이는 것은 단연 무성영화인 것처럼 보인다. 셔젤은 무성영화 시기를 낭만적이고 마법 같은 순간들이 가득한 시절로 그린 반면, 토키 시기는 영화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무언가를 다루고 있는 것으로 그린다. 영화의 정체성에 관한 첫 번째 시험 관문이었던 이 시기를 다룬 이 영화가 애잔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바빌론>이 셔젤의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이 녹아들어 있는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감정을 189분 동안 이렇게까지 표현하는 감독의 진심에 공감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라라랜드>에서 함께 오스카를 수상한 리누스 산드그렌 촬영감독과 저스틴 허위츠 음악감독이 <퍼스트맨>에 이어 이번에도 함께한다. 이를 통해 고대 도시 바빌론처럼 화려함과 위태로움이 혼재된 1920년대 할리우드의 모습이 개성 있게 구현되었다. 브래드 피트와 마고 로비, 토비 맥과이어뿐만 아니라 오디션을 통해 발탁된 신인 디에고 칼바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세상에서 가장 마법 같은 곳이지."

할리우드의 영화 촬영 현장을 묘사하는 잭의 대사다. <바빌론>이라는 영화를 잘 표현해낸 한마디처럼 들리기도 한다.

CHECK POINT

<라라랜드> (감독 데이미언 셔젤, 2016)

<바빌론>은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전작인 <라라랜드>와 흡사한 부분이 많다. 두편 모두 ‘예술’과 ‘꿈’에 관한 이야기이며 LA에서 펼쳐지는 영화다. 무엇보다 <바빌론> 후반부에 등장하는 눈이 휘둥그레지는 특정 시퀀스는 많은 관객이 <라라랜드>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꼽는 장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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