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같으면 드라마나 영화의 메인 주인공은 탐욕스러운 권력에 회사를 빼앗기고 자살로 위장된 어머니의 복수를 준비하며 검사에서 군 법무관을 거쳐 변호사로 변신하는 박준경(문채원)이었을 것이다. 연줄이 없는 형사부 말석 검사로 정의와 출세 사이에서 갈등하며 성장하는 장태춘(강유석)도 준경만큼 주인공으로 세우기에 충분하다. SBS <법쩐>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준경과 태춘의 조력자가 되는 은용(이선균)이 중심에 선다는 점이다. 명동 사채시장에서 성장해 국제금융시장에서 활약하며 자신을 ‘돈 장사꾼’으로 소개하는 조력자를 주인공으로 삼으니 억울함은 혈육을 잃은 준경에 미치지 못하고, 조카 태춘이 가진 상승 욕구와 혈기는 중년의 은용에겐 이미 겪고 지나온 후일담으로만 기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쩐>이 신선한 점은 은용을 주인공으로 세우는 명분이 ‘사람의 도리’였기 때문이다.
소년원 출신인 은용이 싸움에 휘말려 유치장에 갇혔을 때, 준경의 어머니 윤혜린(김미숙)은 자신의 딸과 한편이 되어 싸웠으니 신원보증을 하겠다 나섰고, 은용은 자신을 믿어준 단 하나의 어른이자 존경하는 기업가 혜린이 사망하자, 준경의 복수에 동참한다. 은용의 파트너 홍한나(김혜화)가 “복수는 예상되는 리스크에 비해 기대수익이 형편없는 싸움”이라고 만류하자 은용은 답한다. “빚진 게 있으면 갚아줘야지. 손익 따지지 말고 사람의 도리로. 아줌마는 나한테 그래주셨으니까.” 조 단위의 돈을 움직여 사람의 도리로 빚을 갚는 이가 주인공인 세계관에서 메인 빌런은 어떤 약속도 지킨 바 없는, 거래의 신의가 가장 낮은 명동 사채왕 명인주(김홍파) 회장이 된다. 돈을 벌어들이는 쾌락을 제공하나 그 돈을 어떻게 쓰는가에 관해선 빈곤하기 짝이 없는 드라마와 비교하면, 적어도 <법쩐>은 돈을 운용하는 캐릭터의 윤리에 관해서 짚어볼 만한 드라마였다.
CHECK POINT
출입기록을 남기지 않고 검찰청에 드나들 수 있는 기자 출입증을 돈으로 산 은용은 “로고에 있는 작대기 하나가 빌딩 하나 값”이 들었다고 하고, 준경은 로고의 의미를 설명하며 “직선은 대나무야. 각각은 공정, 진실, 정의, 인권, 청렴을 상징”하며 그런 건 돈으로 살 수 없다고 한다. 방금 들은 말을 잊어버리고 “공정, 정의 신속, 정확, 배달”이라고 넉살을 부리는 은용 역의 이선균이 그 대나무 작대기 안에 쏙 들어간 적이 있다. JTBC <검사내전>의 오프닝 타이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