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관객을 취하게 하고 싶어요” <챔피언>의 채민서
2002-06-05
글 : 이영진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채민서, 가명이죠?” 첫 질문치곤 너무 짓궂었나. 몇 십분이 흘렀는데도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무슨 면접시험 보는 학생 같다. 처음 앉았던 자세, 그대로다. 뻔한 질문인데도 꽤 고민하다, 짤막하게 답하는 게 고작이다. 침묵이 여러 차례 끼어들고, 이러다간 안 되겠다, 싶어 ‘타임’을 불렀더니, 그제야 “인터뷰를 한 게 몇번 안 돼서 너무 긴장했다”며 “손에서 땀이 다 난다”고 배시시 웃는다.

<챔피언>의 경미 역을 맡은 채민서(21)는 지금껏 어디에도 얼굴을 내민 적 없는, 그야말로 신인이다. 같은 동네에서 알고 지내던 언니 소개로 매니지먼트사를 찾았고, 처음 치른 오디션에서 김득구의 연인 경미 역을 따내는 행운을 차지했다. 본인은 “오성이 아저씨 곁에 섰을 때 얼굴이 튀지 않는 외모를 갖고 있어서”라지만, 곽경택 감독이 어디 그리 허술한 사람인가. 시나리오상의 대사와 우는 연기를 급작스럽게 시켰는데도 “닭똥 같은 눈물을 쏟아대는 집중력”이 아니었다면, 언감생심이었을 것이다.

“삼촌뻘이죠. 저희 아빠 연세가 마흔셋이니까.” 현장에서 그녀는 줄곧 ‘오성이 아저씨’라고 불렀다. 열네살, 나이 차이 때문만은 아니다. “회식 같은 거 하면, 오성이 아저씨 되게 무서워요. 예의범절, 많이 따지시거든요.” 그 덕에 촬영을 마치고 나선, 덤벙거리는 성격도 꽤 차분해졌다. “얄미울 때도 많았어요. 아들 근탁이와 노느라 시나리오도 제대로 못 봤다고 해놓고서, 현장에서 입이 벌어질 정도로 연기하시거든요. 밤새 잤다고 해놓고서 만날 1등하는 친구처럼.”

정상에 선 배우 옆에서, 그녀의 욕심은 저절로 커져갔다. 김득구의 죽음 소식을 접하고서 약혼녀 경미가 오열하는 장면은 OK 사인과 함께 스탭과 시민들로부터 덤으로 박수까지 받았지만, 정작 그녀는 만족스런 표정으로 답례하지 못했다. “제 분량을 좀더 타이트하게 찍을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첫 촬영한 장면이랑 나중에 찍은 거랑 비교해보면 제 연기가 달라보이거든요.” 크랭크업하던 날, 다시 한번 찍었으면 좋겠다고 했다가 스탭들에게 ‘미운 털’ 박혔다는 그녀다.

촬영이 끝나자마자, 사자갈기 모양의 복고풍 파마머리를 쳐낸 탓에, 그동안 숨겨왔던 앳된 티가 그대로 드러난다. 막내딸로 귀하게 자랐을 것 같은 외모지만, 유년 시절 그녀는 합기도장에 다니면서 컸다. “발레 같은 걸 하고 싶었는데, 아빠가 여자도 강해야 한다며 도장에 보내셨어요. 그래도 재능이 있었는지, 중학교 때는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는 수준이 됐고, 여자는 따기 힘들다는 공인 3단증도 땄죠.”

연기를 해봐야겠다고 그녀가 맘먹은 것은 고3 때. “화려해 보여서 좋았다”는 당시의 연기지망생은, 지난 1년 동안 “오염되지 않은 바다 같은 여자” 경미를 만나면서, “배우는 캐릭터를 놓고 요리조리 실험을 행하는 과학자”라고 말할 정도로 ‘철’이 들었지만, “아직은 부족한 것투성이”라고 털어놓는다. “캐릭터를 놓고서 쥐어짜야 하는데, 아직 그런 능력을 갖기엔 멀었어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발랄하고 까불대는 성격의 ‘엽기걸’ 역을 맡고 싶고, 언제나 “이미연 선배처럼 관객을 취하게 하는 매력적인 배우로 남고 싶다”는 그녀, 도전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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