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나미(천우희)는 사건에 휘말린다.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이하 <스마트폰>)의 후반부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범죄자 준영(임시완)을 대면한 나미는 준영에게 묻는다. “나한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내가 뭘 잘못했는데?” 억울하게 피해자가 된 나미의 입장에선 생략할 수 없는 질문일 테지만, 이를 들은 준영은 코웃음을 치며 싱거운 대답을 들려줄 뿐이다.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거기엔 대단한 이유가 없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때 준영과 함께 코웃음을 치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그건 바로 화면 밖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다. 이미 오프닝에서 모든 이야기의 시작을 목격한 우리는, 나미의 질문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안다. 이유를 아는 것이 나미의 상황에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을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으며, 심지어 자신의 억울함에 이유가 없다는 걸 깨달은 주인공이 오히려 더 위태로워지는 것을 다른 영화에서 본 적도 있다. 이를테면 데이미언 셔젤의 <바빌론>에서 잭(브래드 피트)이 평론가로부터 자신의 몰락엔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고 머지않아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는 것처럼, 나미 역시 곧 평정심을 잃게 될 것을 예감한다.
사실 <스마트폰>의 클라이맥스 부분에 위치한 나미와 준영의 이 질의응답은, 그 의미를 따져볼 필요 없이 텍스트 자체로 웃음을 유발하기는 한다. SNS에서 가끔 유명 인플루언서들이 ‘장르영화에 자주 나오는 장면’들을 흉내 내는 영상을 보게 되는데, 둘의 대화는 그 영상의 스릴러 버전이 있다면 반드시 포함될 정도의 단골 멘트이기 때문이다. 물론 <스마트폰>이 전체적으로 실소를 유발하는 수준의 영화인 것은 아니다. 동명의 일본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이기는 하지만, 자신만이 갖고 있는 나름의 독창적 아이디어를 적절한 방식으로 표현해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원작과는 확연히 다른 무언가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는 극중 인물들에 의해 ‘셀카 각도’로 촬영된 화면들이다.
촬영감독이 존재하지 않는 영화
<스마트폰>은 준영이 나미의 스마트폰을 해킹한 ‘덕분에’, 나미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일명 ‘셀카 각도’의 화면을 확보하게 된다. 이를 범죄자 준영의 공이라고 말하는 건 윤리적으로는 부적절하겠지만, 이 영화의 장르가 필요로 하는 분위기를 연출한 데에는 확실히 기여했다고 보는 게 옳다. 자신의 얼굴이 이렇게 간단한 수법으로 적나라하게 노출될 수 있다는 것, 한마디로 이 영화가 정말 무서운 영화라는 것을 <스마트폰>은 단 하나의 카메라 각도로 설득해낸다.
그다음은 일사천리다. 영화에서 나미의 무방비한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관객은 주머니에 스마트폰이 잘 있는지를 확인하며 ‘절대로 스마트폰을 떨어뜨리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혹은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내장 카메라를 포스트잇 등으로 가린 채 사용하고 있는 각자의 노트북을 떠올린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바로 지금 넷플릭스를 통해 보고 있는 이 영화의 프레임 바깥에 있는 카메라를 발견하고, 나미를 비웃었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만약 나 자신이 이미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의 타깃이 된 것이라면, <스마트폰>의 그 어떤 장면보다 더 우스운 것은 타깃이 된지도 모른 채 나미를 비웃고 있는 자신의 정면 얼굴일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스마트폰>의 셀카 각도는 스마트폰 시대의 한축을 차지하고 있는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의 성격과도 어우러져 상당히 현실적인 공포를 자아낸다.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의 셀카숏은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측면이 있는데, 이는 최근(2월22일) 개봉한 또 한편의 ‘셀프카메라 영화’인 <서치2>와도 연관이 있다. 우선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서치2> 역시 <스마트폰>의 사례처럼 사실상 <서치>를 딸의 시점으로 리메이크한 버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심지어 <서치2>의 경우, 영화 제목을 1편의 영어 원제인 ‘Searching’과 다른 의미를 가진 ‘Missing’으로 정해 뭔가 핵심적인 것이 바뀐 듯한 인상을 풍기지만, 막상 영화를 보면 두 영화가 주인공만 다를 뿐 거의 동일하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말하자면 <서치2>는 한국영화 <스마트폰>과 달리 전작에 없는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조차 하지 않은 영화다.
그렇다고 <서치2>의 이런 태도에 불만을 제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모든 속편이 새로운 시도를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리즈의 첫편이 이루어낸 인상적인 성과가 있기에, 더이상의 실험이 필수적이지 않은 측면 또한 존재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서치2>가 전작을 그대로 답습한 건, 그래도 되기 때문이다. 모니터 화면 안에서만 진행되는 영화가, 마치 다른 장르영화들처럼 특출난 변주 없이 대량 생산되어도 괜찮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일정 부분 이루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서치2>의 동어반복이 시사하는 것은, 앞으로 <서치> 시리즈처럼 서로 분절된 푸티지 영상들로 이루어진 영화가 계속해서 등장할 것이라는 점이다.
<스마트폰>을 보며 <서치>를 떠올린 이유는 <서치>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한순간 때문이다. 이는 데이빗(존 조)이 동생의 집에 잠입해 몰래카메라를 설치하는 장면이다. 이 순간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때가 이 영화의 최대 위기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주인공 부녀의 위기이자, 모니터의 경계를 사수해야 하는 영화의 위기. 동생의 자백을 받기 위해 카메라 앞을 벗어나야 하는 데이빗을 이젠 더이상 모니터 안에 가둬둘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 영화는 뻔뻔하게 데이빗으로 하여금 직접 카메라를 설치하게 한다. 그리고 거기에 ‘동생이 의심스럽다’는 명분이 있기에, 이야기와 형식이 완벽히 조응한다. 그렇게 데이빗이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덕분에’, 형식상으로 촬영감독이 존재하지 않는 영화가 완성된다. 물론 특정 푸티지 영상들의 촬영을 맡은 감독이 따로 존재하기는 하겠지만, 영화 내적으론 감독의 의도가 들어가지 않은 척 연기하고 있는 영상들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카메라를 맡겼을 뿐인데
다시 한번, 이 실험이 완성되는 순간은 영화의 감독이 아닌 연기자가 직접 자신을 찍을 카메라를 설치하는 때다. 그리고 배우 존 조가 카메라가 잘 설치되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순간 구현되는 ‘셀카숏’은, <스마트폰>에서 천우희, 임시완 배우가 직접 카메라를 손에 들고 스마트폰을 쳐다보듯 찍은 숏들과 본질적으론 다르지 않다. <스마트폰>의 제목을 빗대어서 표현하면, ‘카메라를 맡겼을 뿐인데’ 만들어진 영화들. <서치>는 이미 그런 방식으로 두편의 짜임새 있는 스릴러영화를 만들었고, <스마트폰>은 원작과는 다른 시도를 하며 한층 더 깊은 공포를 이끌어냈다. 그 두 영화의 셀카숏들을 보며, 진정한 의미의 촬영감독 없는 영화의 가능성을 상상해본다. 진정 더 무서운 것은, 그것이 실현된 미래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