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인터뷰] ‘에어’, 에어 조던의 탄생 비화이자 결국은 사람 이야기
2023-04-06
글 : 이자연
<에어>

유명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도 업계 꼴찌던 시절이 있었다. 1984년, 브랜드 쇄신을 꾀한 나이키는 새로운 모델을 찾아나서고, 스카우터 소니 바카로(맷 데이먼)는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유망주 마이클 조던을 점찍는다. 하지만 신발 시장의 1, 2위를 앞다투는 아디다스와 컨버스까지 그를 향해 적극적인 구애를 펼치기 시작하고, 마이클 조던만이 마지막 희망이라 여긴 나이키는 그만을 위한 전략을 세운다. 영화 연출을 맡은 벤 애플렉은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로 분해 나이키의 시대정신을 보여주고, 맷 데이먼은 실화의 중심축으로 소니의 의지와 결연함을 온몸으로 체화한다. 또 소니의 친구이자 1984년 당시 올림픽 농구팀 코치였던 조지 라벨링은 말론 웨이언스의 힘을 받아 코믹함과 놀라운 비밀을 전한다.

벤 애플렉 감독과 배우 맷 데이먼(왼쪽부터)

- 처음 <에어>를 연출하기로 결정한 계기가 궁금하다.

벤 애플렉 마이클 조던은 내 삶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자연스레 이끌렸다. 특히 우리 세대에게 조던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그에 대해 잘 모르는 어린 관객도 있겠지만 부침을 겪던 신발 회사를 성공으로 이끌어낸 흑인 농구 선수의 이야기는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에어>는 나이키를 공간적·서사적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신발 이야기가 아닌,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우리가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인물을 브랜드와 마케팅, 우상화의 관점으로 재정의해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기업의 페르소나와 정체성, 문화의 시작을 살피는 작품이라 꼭 연출과 배우로 참여하고 싶었다.

- 감독과 배우 각각의 자리에서 어떤 점을 강조하고자 했나.

벤 애플렉 배우로서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켜 시선을 오랫동안 붙잡고 싶었다.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생각할 외부 자극을 주는 건 배우의 중요한 임무라 생각한다. 그래서 영화에서 나이키 창업자인 필 나이트가 건넬 수 있는 질문이 뭔지를 생각했다. 감독으로서는 더 큰 그림을 봐야 했다. 기술적이지만 지루하지 않도록 영화에 접근하려 했다.

말론 웨이언스 벤 애플렉은 촬영장에서 기술적인 여건뿐만 아니라 배우의 경험까지 신경 쓰는 감독이다. 영화 속 인물들 하나하나가 생동감 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배우들이 자신의 삶을 배역에 투영할 수 있도록 벤이 도와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우 한명, 한명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무엇보다 벤은 배우로서 몰입을 높이는 환경을 잘 알기 때문에 배우들이 창의을 끌어낼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줬다.

- 소니는 영화에서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을 설득해야 하는 인물이다. 예산이 부족하다는 나이키 창업자, 나이키만큼은 모델이 되기 싫다는 마이클 조던, 사사건건 개입하는 스포츠 에이전시, 함께 난항에 직면한 신발 디자이너…. 소니의 능력을 조명하기 위해 어떤 점에 신경 썼나.

맷 데이먼 소니의 실제 모델을 만나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당시 한정된 예산 안에서 현실적인 설득력을 선보이기 위해 어떤 생각을 했는지, 또 이렇게까지 마이클 조던을 모델로 영입하고 싶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선수의 능력을 알아차릴 수 있었던 배경이 무엇인지 등을 자세히 들었다. 그게 <에어>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지나면서 하나의 게임을 플레이하는 느낌이 들었다. 소니가 어떤 신념을 가졌으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따라가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싶었다.

- 나이키의 라이벌 기업으로 등장하는 아디다스와 컨버스의 내밀한 히스토리가 나온다. 당시 두 브랜드가 직면한 한계를 노출시키는 과정에 어려움은 없었나. 예민한 사항일 수도 있을 텐데.

벤 애플렉 현재 사람들이 친숙하게 알고 있는 나이키, 아디다스, 컨버스와는 완전히 다른, 20여년 전의 이야기다. 전체 이야기 중 일부에 해당돼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지금 운동화 시장에서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당시엔 그렇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도 필요한 장치였다.

말론 웨이언스

- 마이클 조던의 어머니 돌로레스(비올라 데이비스)와 소니가 전화 통화로 마지막 협상을 나누던 장면을 이야기해보자. 예상치 못한 돌로레스의 과감한 요구에 또 다른 난항이 이어진다. 둘 사이의 이견은 좁혀지지 않지만 어느 누구도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폭발하지 않는 아슬아슬한 협상 신의 촬영 과정은 어땠나.

맷 데이먼 보통 전화 신은 따로 촬영한다. 두 인물 사이에 한달 이상의 공백이 생기는 경우도 있는데, 나중에 영화로 보면 살짝 매치되지 않는 부분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에어>는 같은 건물 다른 벤치에 앉아 실제로 전화 통화하며 촬영을 이어갔다. 수화기를 통해 돌로레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데 순간적인 몰입이 엄청나게 컸다. 마치 우리가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었다.

벤 애플렉 전화하는 장면이 생각보다 어렵다. 침묵 속에서 홀로 반응하는 연기를 펼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어려움을 보완하기 위해 이 방식을 고안했다. 무엇보다 협상 과정에서 자신이 원하는 걸 분명하게 표현하는 돌로레스의 면모를 비올라가 잘 표현해줬다. 비올라는 아프리카계 미국 여성으로서 사회적으로 과소평가받는 게 얼마나 쓰라린 일인지 잘 이해할거라 믿었다. 세상으로부터 오랫동안 부정당하고 거부당해온 돌로레스의 요구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다. 그래서 감정적인 태도보다 인내하고 참을 줄 아는 모습을 부각했다. 관객이 돌로레스의 삶을 이해하는 순간, 이 장면의 의미는 빛을 발한다.

- 사실상 모든 사람이 이 영화의 결말을 알고 있지 않나. (웃음) 유명 실화를 다루는 과정에서 고민이 컸을 것 같다.

벤 애플렉 마이클 조던이 나이키의 상징이 된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웃음)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지루하지 않게 보여주면서 사람들의 궁금증을 유지시키는 게 <에어>의 가장 큰 과제였다. 고민을 거듭하던 중 나만의 답을 찾아냈다.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배우를 캐스팅하면 관객이 그들에게 더 쉽게 이입해서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에 근거하여 응원하게 된다. 다시 말해 결말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불필요한 정보로 남겨두기보다 어려움에 빠진 인물을 지지하고 위로하는 근거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사진제공 워너브러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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